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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며느라기] 기획은 시댁과의 관계, 가부장제 구조 하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며느리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명절의 사회적 의미는 '즐기거나 기념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혼 여성들은 명절 때마다 즐기기는커녕 막대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명절후 증후군'에 걸리기 일쑤입니다. '남편의 친척'들이 모이는 '가부장제의 끝판왕' 행사에서 며느리는 그저 '일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을 뿐, 목소리를 내어 부당함을 지적하기도 힘듭니다. 이렇듯 여성에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명절의 악습을 없애지 못하면 '성 평등'한 가족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명절도 달라져야 합니다. [편집자말]
 "당직 할 사람?" "저요"
 "당직 할 사람?" "저요"
ⓒ 사진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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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 연휴에 급한 일 없어요? 급한 일 있으면 당직 설게요. 하하" 

추석을 앞두고 회사들과 아침 미팅에서 농담으로 주고받는 말이었다. 주로 결혼한 유부녀들 사이에서 이런 농담이 오간다. 과거에 명절 전 시스템 오픈을 앞두고 모두 출근하라는 이야기에 유부녀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도 그러고 싶으니까. 연휴에 출근하면 특근수당이라도 받지, 명절에 하는 일은 아무도 그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며느리라면 누구나 하는 당연한 일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유례없이 기나긴 추석 연휴에 미혼들은 여행 계획 세우기에 바쁘고, 일부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들도 이참에 가족 여행이라도 가자고 계획을 잡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휴의 한가운데 추석이 자리잡고 있으므로 시댁을 간다. 

이번 추석은 나에게는 결혼하고서 맞는 11번째 추석이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으면 익숙할 법도 한데, 나는 여전히 추석이 스트레스고 익숙해지질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난 것이 잘못은 아닌데, 왜 명절만 되면 부엌에서 노예처럼 헤어 나오질 못하지 불만이다.

불만이지만, 하는 수 없다. 관습이라는 거대한 산을 맞서기엔 내가 너무 작기 때문에... 그래서 명절 전부터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아마도 나는 여전히 추석 때 전을 부치고, 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있을 것이다. 마음 다스리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명절,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 

 명절엔 관습이라는 탈을 쓰고 '내 핏줄'과 '타인'이 차별당했다
 명절엔 관습이라는 탈을 쓰고 '내 핏줄'과 '타인'이 차별당했다
ⓒ 사진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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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다.

"이번 명절엔 당신이 좀 설거지라도 도와주면 좋겠어." 
"그래 그렇게 할게." 

남편은 맞벌이 10년이란 시간 동안 내게 많이 익숙해졌다. 나의 요구에 왜냐고 묻지 않고 응해주는 편이다. 남편도 안다. 내가 직장인으로서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얼마나 피곤한지, 그리고 명절에 얼마나 가기 싫어하는지, 시댁이 얼마나 불편한지 잘 안다. 그래서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그 과정은 험난했다.

여느 때처럼 하루 종일 형님과 나는 전을 부치고, 고기를 재고, 나물을 무치고 등등... 차례를 지낼 음식을 마치고 나서, 늘 그렇듯이 대식구들 먹을 저녁 준비를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상을 치웠다. 나는 거실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고, 남편은 약속대로 설거지를 시작했다. 나는 그냥 보고 있었다. 약속했으니까. 조금 불편해도 참았다. 작은 변화를 바랐다고나 할까. 사실 저녁 먹은 설거지 한 번인데 뭐 어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때 어머님이 설거지를 시작하려는 남편에게서 고무장갑과 수세미를 빼앗았다.

"이리 내놔라. 내가 하마." 
"아니에요. 어머니 제가 할게요." 

어머님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이리 내놓으라니까!" 

분위기가 엄청 안 좋아졌고, 결국 형님이 일어섰다.

"제가 할게요. 어머니." 

어머니는 말없이 고무장갑과 수세미를 형님께 건넸다. 결국 설거지는 형님이 했고, 어머님과 나 사이에는 휑한 바람이 일었다. 느낌은 이랬다. 며느리가 둘이나 있는데, 아들이 명절날 설거지하는 것이 어머니 눈에는 못마땅했던 것이다. 며느리는 왜 명절날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해야 하는지, 어머님도 여자인데, 여자들이 일하는 동안 남자들은 늘어지게 낮잠을 자거나 술을 마시거나 노닥거리는데, 왜 저녁 설거지 한 번에 기분이 나빠지셨는지 여러 물음이 일어났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갑자기 이해가 됐다. 어머님은 여자이기 이전에 남편의 엄마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아들은 안 된다는 생각, 그 생각에 관습이 더해져 며느리에겐 감정적인 폭력이 된다.

명절날 며느리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내 핏줄과 타인의 차별. 관습이라는 탈을 쓴 차별. 여자니까 당연히 해야 한다는 시선들. 그런 것들이 며느리들을 힘들게 한다. 얼굴도 보지 못한 남의 조상 때문에 음식 하고 뭐, 이런 거 다 참을 수도 있다. 남편과 결혼했으니까 당연히 도울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다만, 같이하면 안 되는 건가? 서로 나누어서 하면 안 되는 거냔 말이다. 

내가 시어머니가 된다면 

 시어머니가 된다면 명절을 좀 다르게 보내고 싶다
 시어머니가 된다면 명절을 좀 다르게 보내고 싶다
ⓒ 사진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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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상상을 해본다. 내가 시어머니가 된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하고 말이다. 어머님처럼 며느리는 놀고 내 아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날까? 이전에 며느리가 얼마의 노동을 했건 상관없이 말이다.

참고로 우리 시부모님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쁜 분들이 아니다. 다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 관습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며느리 입장에서는 차별이요. 관습의 폭력이라고 느낄 뿐이다. 

내가 시어머니가 된다면 명절을 좀 다르게 보내고 싶다. 가족 모임은 근사하게 외식을 할 수도 있고, 예약은 시어머니인 내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 안식년처럼 쿨하게 용돈을 주며 여행을 다녀오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 세대 며느리의 역할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적어도 내 다음 세대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그것은 나부터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아들 둘의 엄마가 된 것은 다행일지도 모른다.

관습을 넘어서는 작은 시도는 계속돼야 한다
 차례 지내고 나서 이혼 위기를 겪게 되면 안 되지 않을까?
 차례 지내고 나서 이혼 위기를 겪게 되면 안 되지 않을까?
ⓒ 사진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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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장강명은 <5년 만에 신혼여행>에서 이렇게 말했다.

"명절에 싫다는 아내를 자기 부모님 댁으로 굳이 데리고 가는 남자들은 왜 그러는 걸까. 보기 싫은 친지들을 만나러 큰집에 가는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해마다 명절이 지나면 이혼상담이 급증하고 형제간 폭행으로 누군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다들 그런 위험을 각오하고 친지들을 만나는 걸까." 

차례를 지내고 조상을 기리는 것. 가끔 조상과 대화가 된다면 묻고 싶다. 최고의 효도가 무엇이냐고. 그것은 내 후손들이 오손도손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그것이 효도이고 조상을 잘 섬기는 길 아닐까? 조상 차례 지내고 이혼 위기를 겪는다면 좋아할 조상이 어디 있을까? 

이후에도 나는 종종 김장 때나 생일잔치 등과 같이 행사가 있을때 마다 남편에게 무언가를 꼭 부탁한다. 그러면 어머님께서 웃으면서 말씀하신다 "왜 내 아들 부려먹냐"라고... 웃음 끝에서 그리 편하지 않다는 게 느껴지지만, 나는 모른 척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애 아빠가 더 잘해서 그래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최고의 효도는 명절에 죽도록 일하고 나서 남편과 싸워 이혼의 위기를 겪는 것보다 서로 조금 양보하고 이해하면서 웃으면서 집에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올해도 관습을 넘어서는 작은 시도는 계속할 것이다.

[며느라기] 기획 지난 기사

⑤ 고부갈등 해결책은 당신 남편이 쥐고 있다
④ 친정 차례 없애고, '시댁'은 추석에만... 나의 명절 대처법
③ 시할머니댁 '손주 며느리', 이 말은 꼭 해야겠다
②'며느리'로의 첫 명절, 나는 '시댁 소속'이 아닙니다
① "올케 엄청 교활한 애니까 조심해" 시누이의 문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을 담아내다> (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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