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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며느라기] 기획은 시댁과의 관계, 가부장제 구조 하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며느리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명절의 사회적 의미는 '즐기거나 기념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혼 여성들은 명절 때마다 즐기기는커녕 막대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명절후 증후군'에 걸리기 일쑤입니다. '남편의 친척'들이 모이는 '가부장제의 끝판왕' 행사에서 며느리는 그저 '일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을 뿐, 목소리를 내어 부당함을 지적하기도 힘듭니다. 이렇듯 여성에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명절의 악습을 없애지 못하면 '성 평등'한 가족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명절도 달라져야 합니다 [편집자말]
바나나껍질 명절이 다가오자 남편이 먹고 아무데나 버린 바나나 껍질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 바나나껍질 명절이 다가오자 남편이 먹고 아무데나 버린 바나나 껍질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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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부터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꿈의 내용은 다르지만 꿈의 결론은 같았다. 남편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남편의 사소한 버릇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바나나 먹고 껍질을 왜 소파 위에 놨어요? 내가 아까 애기 보행기 위에 있는 바나나 껍질도 치웠는데?"
"아기 자요, 텔레비전 보지 마요. 아기 깨요."
"책을 봤으면 정리를 해야지 이거 누가 치우라고 또 여기다 널브러트려 놨어요?"

평소에도 잔소리를 했지만 이번 잔소리에는 한껏 짜증이 묻어난다. 어젯밤엔 남편이 자려고 침대에 눕자 나도 모르게 몸을 휙 돌려 버렸다. "화났어?"라는 남편 말에 내가 왜 화가 났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맞다. 나는 화가 났다. 명절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맏며느리 엄마의 명절 수난기

 염장식품은 짜야 정상이다. 싱거운 게 말이 되나.
 염장식품은 짜야 정상이다. 싱거운 게 말이 되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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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 내게 명절은 엄마 눈치를 보는 날이었다. 막내 며느리였던 엄마는 친아버지 사후 재혼으로 인해 갑자기 맏며느리가 됐다. 맏며느리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엄마에게 다가온 대형 악재가 있었으니... 시댁 김장이었다.

맏며느리가 돼 인사한 그날, 이번 겨울 김장 이야기부터 했다는 시어머니 말에 엄마의 스트레스는 1차로 폭발했다. 김장만 하면 끝날 줄 알았던 엄마의 스트레스는 김장을 하고 나서 대폭발했다. 시댁에 가서 김장을 했더니 너무 짜다는 불평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그 다음해 김장은 싱겁게 했더니 이번엔 김장이 망했다. 그날 밤, 엄마와 함께 망한 김장 김치에 보쌈고기를 싸먹으며 한풀이했던 기억이 난다.

"아니 염장식품이 그러면 짜야지! 싱거운 게 말이 돼?"   

1차 김장의 여운이 가시기 전, 엄마의 스트레스는 지구를 진동시킬 정도로 폭발했다. 설날이 왔기 때문이었다. 발단은 잡채였다. 명절이라서 손님들 오면 대접할 요량으로 엄마는 잡채를 해서 시댁으로 향했다. 그리곤 평소처럼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잡채를 따뜻하게 데웠다. 여기까지 평소의 우리 집의 모습이어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눈에는 문제가 있었다.

 내게 잡채란, '시월드'의 상징이다.
 내게 잡채란, '시월드'의 상징이다.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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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너 식용유로 잡채 볶았니?"

잡채를 식용유에 볶아서 식용유맛이 나서 못 먹겠다면서 뱉어내는 시어머니를 보며 엄마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그뒤 시어머니의 결정적인 한 마디가 엄마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얘, 너 나물 무칠 때도 식용유 넣니?"
"아니, 어머니, 나물 무칠 때 식용유 넣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해 설날이 끝나고 나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버릇처럼 물어봤다. "너희 집은 잡채 데울 때 식용유 넣어, 안 넣어?" 그 후로 내 머리에 잡채라는 음식은 시월드의 상징처럼 남게 됐다.

설날이 끝나고 잠잠해질 줄 알았던 엄마의 감정은 10일 뒤 있을 시아버지의 제사 준비로 인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나도 아침 일찍부터 거들었다. 새로 들어온 며느리와 손녀가 얼굴도 보지 못한 시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의 제사를 위해 손에 밀가루와 계란이 범벅이 되며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얼굴을 내민 시누이이자 고모가 나타났고 얼굴만 비춘 뒤 가버렸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바쁜 일이 있다던 시누이이자 고모는 바쁜 일이 없었다. 그냥 도와주기 싫어서 가버린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엄마는 무척이나 서럽게 울었다. 그렇게 우리 엄마는 3년이라는 시간동안 명절 차례상과 각종 제사, 김장 등을 보이콧했다.

시누는 나를 '비둘기'로 생각했다, 그리고 시작된 간섭

엄마의 보이콧이 끝나고 4년 후, 나는 결혼했다. 걱정과는 달리, 남편은 아주 소박한 차례상을 원했다. "차례는 '차(茶)'를 올리기 위한 상차림이지 음식을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에 내가 명절에 해야 하는 음식은 삼색나물, 동태전 한 접시로 끝났다.

밥과 국은 남편이 했기 때문에 차례상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명절 준비를 하고 있노라면 나의 장바구니는 가벼웠는데 엄마의 장바구니는 손수레를 끌고 시장을 두세 번 왕복해야 할 정도였다. 음식 준비에 스트레스가 없어서 앞으로도 별일 없을 것 같았던 내 생활은 어느 날부터 시누이 때문에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시누이는 결혼 전부터 밤낮주말을 가리지 않고 남편과 연락이 되지 않을 때 내게 문자 또는 전화를 해서 남편한테 당장 전화하라 말하라고 시켰다. 몇 번 생각 없이 그 요구에 응해줬는데 어느 날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 일에 화를 내는지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친구가 말했다.

"니가 비둘기야?" 

아기 속싸개 속싸개를 해줘야하는 시기 등은 정해져있지 않다.
▲ 아기 속싸개 속싸개를 해줘야하는 시기 등은 정해져있지 않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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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나서 시누는 더더욱 우리 집 일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시누는 남편에게 아기 사진을 보내라고 했고 아기 사진을 보냈더니 불같이 화내기 시작했다. 아기 속싸개를 100일까지 싸줘야 하는데 풀어놨다는 것이다.

한여름 출산한 나는 아기 속싸개를 조리원에서부터 팔 한쪽씩 풀어줬는데 왜 그러느냐고 했다. 그렇게 사건을 일단락되는 줄 알았으나 시누는 끊임없이 문자로 속싸개 이야기를 했다. "누나가 계속 얘기하는데 한 번 싸주자." 그날 밤 우리는 같이 살지도 않은 시누이의 요구에 아이에게 속싸개를 꽁꽁 싸매줬고 한여름에 태어난 아이의 온몸에 땀띠가 났다. 그 뒤로 남편은 다신 속싸개 얘기를 하지 않는다.

매번 남편과 연락이 안 된다고 빨리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시키던 시누이가 이번엔 웬일로 잘 지내냐는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와 함께 아이를 보던 나는 시누이와 메시지를 하면 할수록 얼굴이 일그러졌다. 엄마가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시누에게서 온 메시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아이가 핑크색 옷을 입고 있던데요. 우리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남자아기가 여자 옷 입으면 출세 못한다고 해서 안 입혔을 거예요. 앞으론 입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 말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설빔 아빠가 아들에게 사준 분홍색 설빔
▲ 설빔 아빠가 아들에게 사준 분홍색 설빔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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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없는 그들의 몽니... 그래도 나는 나를 응원한다

남편이 설빔으로 아이에게 사줬다는 말에도 시누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후에도 시누의 무례함은 계속됐다. 남편에게 연락해 "어디 가서 부인 자랑하지 말아라, 팔불출 같다"고 하는 건 약과였다. 첫째 아이의 돌잔치에 오고도 자신의 남동생에게는 인사를 하고 갔는데, 내게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사라졌다.

그렇게 시누의 무례함을 참고 참다가 드디어 폭발하는 날이 왔다. 시어머니 제사 때문이었다. 남편은 네 차례의 차례상과 두 차례의 시어머니 제사상을 새로 들어온 식구가 차리는 동안 연락 한 번 안한 시누에게 그건 무례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시누가 그에 대한 답변을 문자로 보낸 것이다.

"걔, 엄마 제사 진심으로 지내는 거 아니야. 엄청 교활한 애니까 조심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제사를 진심으로 지내는 것은 무엇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누의 문자에 의해 교활한 사람이 된 것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꾹 참고 있었는데 "산후우울증도 정신병이야! 내 문자 지워, 내 문자보면 또 난리칠라"라는 시누의 문자가 남편에게 도착했다. 그날, 남편과 나는 상의 끝에 당분간 시누와 왕래를 하거나 이야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2017)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저자 김승섭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직장과 학교와 가정에서 맺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존재하지요. 그 관계들은 종종 인간의 몸에 상처를 남깁니다. …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그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시누는 자신의 분풀이를 위해 생각 없이 쏟아낸 말이었겠지만 며칠 전부터 장을 봐 놓고 당일 날 새벽부터 음식을 하는 나의 노력을 '진심으로 지내는 것이 아니다'라는, 확인되지 않은 거짓말로 매도했다. 이것이 나도 모르게 몸 속에 상처로 남아버린 것 같다.

시누와 연락을 잠시 끊기로 했음에도 명절이 다가오자 계속해서 시누가 남편에게 보낸 문자가 떠올랐다. 문자가 떠오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분노가 차 올라왔다. 이런 대접 받으면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시어머니의 차례상을 차려야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결혼 전부터 시누의 무례함을 참고 견뎌야 했는지 나름 고민을 했다. 이것은 혹시, 권력이 없는데 권력이 있다고 착각한 시누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닐까.

이런 수모를 참고도 나는 추석 차례상을 차릴 것이다. 그리고 추석이 끝난 일주일 후, 갑자기 진심이 아니게 돼 버린 시어머니의 제사상도 차리게 될 것이다. 이번 명절, 그래서 나는 나를 응원한다. 손수레를 끌고 시장을 두세 번 왕복할 우리 엄마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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