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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며느라기] 기획은 시댁과의 관계, 가부장제 구조 하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며느리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명절의 사회적 의미는 '즐기거나 기념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혼 여성들은 명절 때마다 즐기기는커녕 막대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명절후 증후군'에 걸리기 일쑤입니다. '남편의 친척'들이 모이는 '가부장제의 끝판왕' 행사에서 며느리는 그저 '일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을 뿐, 목소리를 내어 부당함을 지적하기도 힘듭니다. 이렇듯 여성에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명절의 악습을 없애지 못하면 '성 평등'한 가족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명절도 달라져야 합니다. [편집자말]
명절이면 으레 마음이 복잡해진다. 명절을 지내기 위한 대부분의 노동을 여성들이 담당하는 것, 며느리는 시댁 음식을 돕고서도 시댁 차례를 먼저 지낸 다음에야 친정에 갈 수 있는 것, 별로 친하지 않고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낯선 먼 친척들에게 "아이는 언제 낳아?" 같은 피곤한 질문을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 것 등, 말하면 입 아픈 상황에 집중적으로 노출되는 기간이다.

오랜만에 양가 식구들을 만나는 반가움도 물론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더욱 한두 단어로 감정을 정리하기 어렵다. 그런데 만일 내게 며느리로서 첫 명절을 보내고 느꼈던 감정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곧바로 대답할 수 있다. '무력감'이다.

 웹툰 <며느라기> 6_4.제사의 한 컷 (작가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웹툰 <며느라기> 6_4.제사의 한 컷 (작가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 며느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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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를 없애나가는 과정

친정에선 명절음식을 따로 하지 않는다. 차례도 아예 없앴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친가 쪽 친척들과 왕래가 끊겨 직계가족끼리 합의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인 줄 알았다)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명절을 보내기 위해선 누군가의 막중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수용하기까지 1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나와 언니는 진작부터 차례를 없애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대체 누구를 위해서 힘들고 돈도 많이 드는 차례를 지내느냐는 것이다. 의외로 복병은 남동생이었다. 동생은 "차례는 남들 다 하는 기본적인 것"이라고 했다. 이전까지 반색을 보이던 엄마도 '기본은 하자'는 동생의 반격에 잠시 불온한 꿈을 꿨다는 듯 정색을 하며 "아직 기운이 있으니 하는 데까지 해 보겠다"라고 말을 바꿨다.

처음부터 차례를 없애자는 게 너무 급진적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상에 오르는 음식 가짓수를 줄여나가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먼저 황태포와 산자를 놓지 말자고 했다. 없애더라도 엄마의 죄책감이나 거부감이 덜할 것 같았다. 엄마의 노동이 거의 필요 없는 음식이니까. 갸우뚱하셨지만 일단 수용하셨다.

다음 아빠 제사에선 깐 밤과 대추, 약과를 없앴다. 처음에 비해 두 번째는 한결 수월했다. 그다음엔 손이 제일 많이 가는 잡채를 하지 않았고, 그다음엔 세 종류의 전을 한 가지로 줄였다. 조기구이, 두부부침, 삼색나물도 차례로 사라졌다. 마지막 차례상엔 불고기와 갈치조림, 김치와 밑반찬이 올라왔다. 형식적인 음식이 사라지고 식구들이 좋아하는 먹을 것만 남았다. 차례에서 벗어난 엄마는 아주 홀가분하다고 했다.

물론 차례상을 차리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사람이 모이면 먹을 것이 있어야 한다. 차례 음식은 사라졌지만 그것을 대신할 먹을거리가 필요했다. 그것은 누가 마련해야 하는 걸까. 엄마 집에 모인다고 해서, 10명이 2~3일 동안 먹을 음식을 모두 엄마가 장만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엄마를 포함해 식구들과 논의한 끝에 엄마는 하루 치 정도의 음식만 준비를 하고 나머지는 외식을 하거나 상황에 맞게 해결하기로 했다. 밥을 집에서 차려 먹지 않으니 시간이 많이 남았고 즐길 것이 많아졌다.

명절에 가족들과 극장에서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은 엄마의 노동이 가장 많이 들어간다. '다 함께 행복한' 명절을 위해 계속 대안을 마련하고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남동생도 엄마의 노동이 무척 고된 것임을 머리로나마 이해한 듯하다. 어쨌든 다행이다.

  파평윤씨 노종파 문중인 명재 윤증고택에서 치르는 차례상. 상 크기가 작고 차림이 검소하다.
 파평윤씨 노종파 문중인 명재 윤증고택에서 치르는 차례상. 상 크기가 작고 차림이 검소하다.
ⓒ 논산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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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도 별 일 안생겨요, 어머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4년 전 결혼을 하고 시댁에 갔다. 시부모님은 남녀 성 역할에 충실한 보수적인 분들이다. 손 큰 어머님은 큼지막한 생선을 열 마리쯤 튀겨 그중 모양 좋은 것으로 세 마리 골라 차례상에 올린다. 삼색나물도 저마다 양재기 가득 무친다.

남편과 나는 어머님이 밑 손질을 해놓은 소고기와 명태포로 전 부치는 정도의 일을 거든다. 나머지는 죄다 어머님이 도맡아 하신다. 명절 당일 새벽, 어머님은 음식을 접시에 담아 나에게 건네고 나는 이것을 아버님께 전해드린다. 아버님은 이 접시로 상을 차린다. 차례는 아버님과 남편이 지낸다.

남편에게 어머님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편 역시 내 남동생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냥 하시게 두면 된다는 거였다. 어머님이 원해서 하시는 일이란 듯이. 언젠가 슬쩍 어머님께, 친정에선 차례상을 차리지 않고 외식을 하거나 여행을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과묵한 어머님이 한마디 하셨다. "안 하면 좋재. 근디 나는 안 헐 수가 없재. 내가 안 하면 누가 하겄냐." 어머님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안 해도 별일 안 생기더라고요, 어머님"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삼켰다.

친정에서 한 것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은데 참 어렵다. 며느리에게도 시댁 차례에 대해 말할 자유는 있겠지만(정말 있을까?) 왠지 도를 넘어서는 것 같다. 며느리의 목소리 곳곳에는 넘지 못할 경계가 그어져 있다. 간혹 넘더라도 큰 울림을 주지 못한다. 며느리에겐 아무런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며느리인 나는 그저 시어머님 옆에서 일을 거들고 틈만 나면 누우려는 남편의 옆구리를 찔러 움직이게 할 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머님의 고된 노동을 생각하면 한없이 답답하고 무기력해진다.

남성 어른을 중심으로 친척들이 한 동네에 모여 살던 시절엔 명절에 함께 음식을 먹고 노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지금은 식구 수도 급격히 줄은 데다 그나마 있는 식구들마저 여기저기 흩어져 살기 일쑤다. 시댁 위주의 명절 문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아주아주 많아졌다. 변화가 필요하지만 아직은 '명절'이라는 말이 가진 의미가 너무 크고 무거워 형식과 내용이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누군가의 노동에 기대어 명절을 보내는, 가부장적인 명절문화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이들 역시 굳건하다.

나는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았다. 남편과 대화 끝에 추석에만 시댁에 가기로 한 것이다. 시댁을 바꿀 순 없지만 내 선택은 내가 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우리 부부가 결정할 일이라 생각해 시부모님의 허락을 구하지는 않았다. 시아버님은 처음엔 황당하다는 내색을 하셨지만 결국 수용하셨다.

두 번의 명절 중 한 번은 시댁의 방식에 맞추고 나머지 한 번은 내 방식으로 보낼 수 있으니 스트레스가 훨씬 적다. 설날에 나는 친정에 갈 수도 있고, 집에서 책을 읽거나 한적한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별난 며느리로 미운털이 박히더라도 나를 존중하는 편이 조금 더 행복하다.

남편도 시부모님에게 명절 음식에 대한 잔소리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곧 여행을 가자는 이야기도 할 것 같다. 이왕 명절 문화가 바뀔 거라면 그 시기가 조금 더 빨라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관절염이 더 심해지기 전에 어머님도 명절에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나의 노동으로 시어머니의 노동을 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의 총량이 줄어야 한다. 아니면 명절이 사라져 버리든지.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이 적어도 며느리는 아닌 듯하다. 각자 처한 상황에서 가능한 최적의 방식을 선택할 뿐이다. 선택했으면 좋겠다. 변할지언정 세상이 무너지진 않을 테니까.

[며느라기] 기획 지난 기사

③ 시할머니댁 '손주 며느리', 이 말은 꼭 해야겠다
②'며느리'로의 첫 명절, 나는 '시댁 소속'이 아닙니다
① "올케 엄청 교활한 애니까 조심해" 시누이의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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