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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며느라기] 기획은 시댁과의 관계, 가부장제 구조 하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며느리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명절의 사회적 의미는 '즐기거나 기념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혼 여성들은 명절 때마다 즐기기는커녕 막대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명절후 증후군'에 걸리기 일쑤입니다. '남편의 친척'들이 모이는 '가부장제의 끝판왕' 행사에서 며느리는 그저 '일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을 뿐, 목소리를 내어 부당함을 지적하기도 힘듭니다. 이렇듯 여성에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명절의 악습을 없애지 못하면 '성 평등'한 가족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명절도 달라져야 합니다. [편집자말]
4년 전, 시어머니(아래 어머니)와 좀 먼 곳에 가게 됐다. 서두르지 않으면 늦을 상황이었다. 짐까지 무겁게 들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걸음이 바빠졌다. 어느 순간 옆이 허전했다. 돌아보니 어머니가 한참 뒤에서 바삐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철렁했다. 앞서 가 버리는 며느리를 보며 당신이 늙었음을 더욱 실감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많이 왜소해져 있었다.

그날 이후 어머니가, '늙음'이 참 측은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한동안 그날이 떠올라 울적해지곤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산 정상을 거뜬히 오르내리시던 어머니였던지라 더욱 그랬다. 어머니 또한 그러실 것이다. 어머니도 아마 나처럼 나의 어떤 상황이나 처지를 측은해 하기도 할 것이다, 생각하기도 한다.

고부간의 문제는 생각 차이 또는 생활 방식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늙어가는 어머니를 측은해 하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섭섭함이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쉽게 털어내지도, 덮지도 못하고 시시콜콜 끄집어내며 다시 이야기한다. 나나 어머니나 좀 편해지고, 그리하여 좀 바람직한 관계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1년에 두 번이니까 참아? 결혼에 대한 회의까지 들어

 웹툰<며느라기>, 7_5.편중 한 컷 (작가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웹툰<며느라기>, 7_5.편중 한 컷 (작가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무구영도 언젠가는 '반기'를 들 수 있을까?
ⓒ 며느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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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코앞이다. 올해로 3년째 차례를 지내지 않고 있다. 홀가분하기도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차례음식이나 제사음식을 거들며 자랐기에 서운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명절 때마다 친정에는 아예 갈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몇 날 며칠 몸도 마음도 고생하곤 했던 것이 떠오르면 추석 차례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 그런 것들이 싹 가시곤 한다.

차례를 지내지 않는데도 추석이 가까워져 오고, 성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지난날 명절에 있었던 일들이 나도 모르게 떠오르곤 한다. 저녁 준비를 하다가는 한 말이나 되는 송편 반죽을 준비해 하루 온종일 쥐가 나도록 빚게 한 것이나, 한 대야나 되는 녹두전 반죽을 비롯해 가지가지의 전을 쪼그려 앉아 몇 채반씩 부쳐야만 했던 것들이 떠올라 욱! 화가 치밀기도 한다. 제발 좀 줄이자 하면 어머니는 "그러마!" 해 놓곤 다시 되풀이되곤 했다.

무엇보다 짜증스럽고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은 명절 2~3일 전부터 명절 다다음 날까지 몇 날 며칠씩 함께 자며 보내길 원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어렸던 결혼 10년 차 조금 넘을 때까지 "언제 올 거냐?"며 명절 며칠 전부터 볶아대곤 했다.

그렇다고 우리나 다른 자식들이 멀리 떨어져 살아 '자식이라고 어쩌다 한번 얼굴 볼 수 있을까'도 아니었다. 차로 5~10분 남짓 거리에 살다 보니 걸핏하면 먹을 것을 나누거나 오가곤 했다. 그런데도 명절이면 볶아대곤 했다. 특히 큰며느리인 내게는 더 그랬다. "큰 며느리가 명절날 어딜 간다고? 옛날이면 쫓겨날 일"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강요하곤 했다.

얼굴 붉히며 시끄러운 것이 싫어서 '1년에 두 번. 그래 참아보자!', 몇 번 따라주니 명절마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명절 다음날까지 지지고 볶다 보면 남편 사촌들이나 시부모님 손님들이 오곤 했다. '설거지 끝내고 좀 쉬어야지' 하는 순간 상 차릴 일이 생기곤 했다. 친정에 못가는 것도 속상한데 며칠 잠을 설쳐가며 볶이고 나면 맥이 탁탁 풀렸다. 남편이고 애들이고 다 귀찮았다. 그냥 쉬고 싶을 뿐이었다.

물론 모든 명절에 그러진 않았다. 명절 이틀 전에 가 열심히 기분 맞춰준 대가로 명절 오후에 나서서 친정에 간 적도 있으니 말이다. 솔직히 자식들이나 손자들하고 가급적 오래 지내고 싶은 것은 이해한다. 결혼 전처럼 부모님이나 형제들과 한 집에서 지내고 싶고, 부모님 뜻을 가급적 따르려는 남편 입장도 이해한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맞춰주고 싶어서 코 앞인 시댁에 명절 이틀 전에 짐 싸 들고 가기도 했고, 명절 다다음 날 늦은 아침까지 먹고 온 적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며느리에게도 함께 보내고 싶은 가족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며느리도 어떤 부모가 보고 싶어 하는 딸이라는 것, 그 당연하고 쉬운 생각을 못 하시는 건지, 안 하고 싶은 건지 번번이 외면하는 이기심이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정말 야속했다. 결혼이 다 이런 것인가. 대체 결혼이 뭔가. 쓰디쓰기만 했다.

"집사람이 명절 때 처가에 가지 못한 만큼 이제부턴 명절에 가지 않겠어요!"

이와 같은 시댁의 명절 풍속도를 바꾼 것은 2003년 친정아버지 생신 이후다. 생신을 앞두고 친정 형제에게 좋지 못한 일이 터져 생신날 모여 의논을 하기로 했던 터라, 꼭 친정에 가야만 했다. 어머니에게 정황을 말씀드렸는데도 "꼭 가야 하니?"로 시작해 "왜 갔다 왔냐!"로 옥신각신 전쟁을 치르면서, 내가  "도무지 답이 없다"며 한숨 뱉은 후의 선언이었다.

"내가 결혼을 했음에도 여전히 어머니 아들일 뿐이란 생각에 당신한테 참 미안하네. 애들까지 있는데... 시끄러운 것이 싫어서 그동안 어지간하면 맞춰드리려고 했는데, 해도 해도 좀 너무하시는 것 같아. 그렇게 욕했으면서 어떻게 할머니가 했던 것 그대로 하는 것 같아. 어머니나 아버님(친정 부모님) 뵐 면목이 있어야지. 처남들에게도 부끄럽고. 이제라도 바꾸지 않으면 계속 끌려다녀야... 이제부터 어머니 전화는 무조건 받지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해 여름, 남편은 어머니의 어떤 전화에도, 어머니 댁에 가지 않았다. 추석까지 안 갔다. 어떻게 감당할까, 내심 불안해 하는 내게 위와 비슷한 내용으로 몇 차례 말하곤 했다. 추석에는 물론 얼마 후의 시할아버지 제사에도, 그 이듬해 설이나 아버님 생신에도 가지 않았다.

  
 남편은 미안해하면서 한동안 어머니 댁에 가지 않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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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집이 이웃의 화재로 전소한(2004년) 것을 계기로 어머니 댁에 다시 가게 됐는데, 남편이 보여준 그간의 태도 덕분인지 어머니의 태도도 좀 많이 바뀌었다. 명절 전날 오전에 가 음식 장만만 한 후 늦게라도 집으로 와 자고, 새벽에 다시 가서 차례를 지냈다. 차례 후 시댁 손님들과 상관없이 설거지가 끝난 후 집으로 와도 섭섭해 하지 않으셨다. 빈말이 되곤 했지만 "친정에도 가야 하는데"와 같은 말도 해마다 하셨다.

남편에 의해 바뀐 것이 또 있다. 다시 시댁에 가게 되면서 명절이나 가족들이 모여 설거지 양이 많을 때는 남자들이 설거지를 하게 된 것이다. 남편이 시댁에서 설거지를 처음 하려고 했을 때 어머니는 "남자가 어디 설거지를!" 하며 당신이 하겠다고 여러 차례 말렸다. 하지만 남편은 끝까지 고집했고, 며느리가 시켜서가 아니라 당신 아들이 원하자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 후 남편은 두 동생과 먼저 서둘러 설거지를 했고, 명절 음식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전까지 남자들이 부치게 됐다. 이는 김장 같은 큰 집안일로까지 이어져 남자들이 뒷짐 지고 구경하다가 때가 되면 밥 얻어먹는 모습이 거의 줄어들었다. 그리하여 한동안 명절이면 남자들이 음식 절반을 하거나 설거지를 했다. 그만큼 명절이 가벼워졌음은 물론이다.

얼마 전 동생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성묘를 다녀온 이후 남편은 며칠 동안 어머니가 성묘 중에 벌인 일 때문에 속상해 하더니, 엊그제부터는 털어낸 눈치다. 명절 풍경이 좀 달라지고 나니 어머니는 또 다른 모습으로 며느리인 나를 힘들게 하곤 한다. 어머니를 20년 넘게 지켜본 결과,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옛날처럼 절망스럽거나 크게 괴롭지 않은 것은 남편이 어머니와의 불협화음을 잘 차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명절이 가까워오면 가끔 생각해 보곤 한다. '그때 남편이 시댁식구들이나 어머니만의 명절에 더 이상 가지 않겠다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명절을 보내고 있을까?'를. '결혼은 했지만 한 여자의 남편이 아닌 어머니의 아들'에 불과한 부끄러운 남편임을 알아채고 그런 방법으로라도 보상해준 남편이 고마울 때가 많다. 그래서 누군가 명절 스트레스를 하소연하면 남편이 했던 방법을 조심스럽게 권하기도 한다.

글을 쓰다가 추석 안부를 나눈 30대 초반의, 아마도 결혼 3년 차인 어떤 남자 후배에게 해준 말로 글을 마무리한다.

"그게 남자들 스스로 만드는 이혼으로 가는 함정이에요. 우리 부모님은 개방적이니까, 우리 집은 음식을 많이 하지 않으니까, 평소 사이도 좋고 잘해주시니까 며느리들이 편할 것이란 자기 생각과 잣대로 나온 생각... 자기 부모니까 잘 못 보겠지. 우리 남편도 그랬지. 다행히 남편들 스스로 파는 함정이란 걸 빨리 알아챈 거지."

나도 20년 전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무조건 참는 정말 착한 며느리였거든. 20년 전과 지금은 명절이 많이 달라져 옛날에 비하면 요즘 며느리들 크게 힘들지 않을 것 같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 젊은 사람들은 또 다르거든.

그러니 잘 살펴보세요. 힘든 일 없나 물어도 보고. 자기 믿고 결혼하자 해놓고 여전히 어머니 아들로만 사는 것 아닌가, 생각도 해 보고. 시댁과의 문제나 고부갈등을 여자들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난, '남자들이 달라지지 않으면 절대 바뀌지 않는다!'거든요."

[며느라기] 기획 지난 기사

④ 친정 차례 없애고, '시댁'은 추석에만... 나의 명절 대처법
③ 시할머니댁 '손주 며느리', 이 말은 꼭 해야겠다
②'며느리'로의 첫 명절, 나는 '시댁 소속'이 아닙니다
① "올케 엄청 교활한 애니까 조심해" 시누이의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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