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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해 창간 1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2000년 2월 22일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창간한 뒤, 보수일변도의 언론지형에서 '열린 진보'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습니다. 여기 <오마이뉴스>와 나이가 같은 닮은꼴이 있습니다. 바로 혁신학교입니다. 2000년 남한산초등학교에서 시작된 학교 개혁 운동은 2009년 혁신학교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된 뒤, 전국으로 확산됐습니다. 혁신학교는 무너진 공교육을 되살리는 행복한 학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여러분들을 행복한 학교에 초대합니다. [편집자말]
삼각산고등학교 사회적협동조합 '먹고가게' 매점을 만든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매점의 번창을 기원하며 기념촬영하고 있다.
학생·교사·학부모·지역주민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설립된 '먹고가게' 매점은 바른 먹거리 제공과 운영과정에서 나온 수익을 학교 장학사업에 돌려주자는 목표로 운영된다.
 삼각산고등학교 사회적협동조합 '먹고가게' 매점을 만든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매점의 번창을 기원하며 기념촬영하고 있다. 학생·교사·학부모·지역주민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설립된 '먹고가게' 매점은 바른 먹거리 제공과 운영과정에서 나온 수익을 학교 장학사업에 돌려주자는 목표로 운영된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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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등학교 '먹고가게' 사회적협동조합 매점에서 학생들이 쉬는시간을 이용해 빵과 음료를 사고 있다.
 1일 오전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등학교 '먹고가게' 사회적협동조합 매점에서 학생들이 쉬는시간을 이용해 빵과 음료를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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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9시 20분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에 2교시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늦게 한 학생이 매점으로 들어왔다. 이 학생이 "빵 하나만 주세요"라고 하자, 매니저 심수진(46)씨는 "안 돼, 얼른 수업에 들어가야지"라고 답했다. 학생의 통사정에도 심씨는 단호했다.

이 학교 학부모이기도 한 심씨는 "학생들은 '매점이 왜 안 팔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하더라"면서 "하지만 매점을 이용하기 위해 수업에 늦으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매점 한 쪽에는 과자도 비치해놓았지만, 학생들은 살 수 없다. 김씨는 "오전에는 과자를 팔지 않는다, 엄마 입장에서 배고픈 아이들이 아침에 과자로 배를 채우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각산고에는 '먹고가게'라는 이름이 붙은 특별한 매점이 있다. 먹거리를 무조건 많이 팔려고 하지 않는다. 질이 낮지만 싸면서도 자극적인 맛으로 학생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빵이나 과자도 없다. 누가 학교 매점을 이렇게 운영하는 걸까. 바로 학생들이 주축이 된 삼각산고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11명의 조합 이사 중 5명이 학생이다. 매점 이름도, 인테리어도 학생들의 머리에서 나왔다. 매점에 들이는 먹거리를 정할 때도 학생들이 참여한다.

모든 수업이 끝난 오후 3시 10분. 한 교실에 출자금 1만 원(1계좌당)을 내고 조합에 가입한 신입생 30여 명이 모였다. 학생 대표이자 이사인 3학년 민하정(18)양이 신입생들에게 "1학년 학생 이사 3명을 추가로 뽑으려고 한다"고 하자, 8명이 교실 앞으로 나왔다. 조합 이사인 정미숙 진로진학상담교사가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라며 책임감을 강조했지만, 학생들은 "열심히 하겠다"고 외쳤다.

이사 후보가 된 김은서(16)양은 "질 좋은 먹거리를 파는 매점이 맘에 든다, 앞으로 학생들의 의견이 잘 반영되는 매점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싶다"면서 "조합 활동 시간과 학원에 가야 할 시간이 겹치면 학원을 그만두겠다, 공부만 하는 것보다 이러한 활동이 훨씬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특별한 매점이 더욱 궁금해졌다.

"잡빵 말고 몸에 좋은 빵을 팔았으면..." 학생의 생각이 현실로

삼각산고등학교 '먹고가게' 사회적협동조합 매점은 학생들의 바른 먹거리를 위해 고열량 저영양 불량 식품은 판매하지 않는다.
 삼각산고등학교 '먹고가게' 사회적협동조합 매점은 학생들의 바른 먹거리를 위해 고열량 저영양 불량 식품은 판매하지 않는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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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등학교 '먹고가게' 사회적협동조합 매점 앞에서 학생들이 구입한 빵과 음료를 나눠 먹고 있다.
 1일 오전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등학교 '먹고가게' 사회적협동조합 매점 앞에서 학생들이 구입한 빵과 음료를 나눠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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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인 삼각산고의 방과 후 수업은 단순히 국·영·수 등 교과목에 국한되지 않는다. 앙트십이라는 이름이 붙은 기업가정신 교육도 학생들의 관심을 받았다. 조합의 2학년 학생 대표인 홍주영(17)양은 1학년이던 지난해 2학기 때 이 교육을 받았다.

홍주영양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우리 학교 매점도 몸에 안 좋은 '잡빵' 말고 몸에 좋은 빵이나 과일을 팔면 좋겠다는 고민을 했다"라고 말했다. 잡빵은 잡스러운 빵을 일컫는다. 신뢰하기 힘든 제조업체가 만들었지만, 가격이 싸고 맛이 자극적인 탓에 학생들이 좋아한다.

지난해 입찰금 2600만 원을 내고 25㎡ 크기의 매점 1년 운영권을 따낸 사업자는 수익을 내기 위해 잡빵을 많이 팔았다. 학부모와 교사들이 우려했지만, 사업자에게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웠다. 그해 10월 사업자가 수익 악화 때문에 학교에서 일찍 철수하겠다고 통보하면서, 매점 운영이 학교 구성원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미숙 교사가 학교에 협동조합을 만들어 매점을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경제·환경·먹거리·진로교육이 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일부 교사들은 업무량이 많아진다며 걱정했다. 정 교사는 뜻이 맞는 동료교사·학부모·지역 주민과 학교 협동조합 설립 교육을 받았다. 또한 앙트십 교육을 받은 1학년 학생들에게도 매점 협동조합을 제안했다. 당시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협동조합이 뭐예요?"

"매점을 학생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협동조합 만든다"

1일 오후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등학교에서  '먹고가게' 사회적협동조합 매점 조합원 학생들이 분과위원으로 활동하고 싶은 1학년 학생들에게 학교매점운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일 오후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등학교에서 '먹고가게' 사회적협동조합 매점 조합원 학생들이 분과위원으로 활동하고 싶은 1학년 학생들에게 학교매점운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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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등학교 '먹고가게' 사회적협동조합 매점에서 조합원인 학생이 교복 물려주기 사업으로 모은 교복을 정리하고 있다.
 1일 오후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등학교 '먹고가게' 사회적협동조합 매점에서 조합원인 학생이 교복 물려주기 사업으로 모은 교복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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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협동조합을 공부한 뒤, 조합을 꾸리기 위한 학생 발기인을 모집했다. 30여 명의 학생이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삼각산고만의 '나도 선생님' 프로젝트 수업을 활용해, 1~2학년 모든 반에서 1시간씩 협동조합을 소개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민하정양은 "협동조합의 1인 1표제, 일반 협동조합과 달리 이익을 현금으로는 배당하지 않고 공적인 일에 써야 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의 특징 등을 알렸고, 특히 매점을 누구의 소유가 아닌 학생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관심이 없는 남학생들을 위해 축구선수 메시가 있는 FC 바르셀로나도 협동조합이라고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매점 사업자가 11월 말 철수하자, 학부모 10여 명이 임시 운영에 나섰다. 유통망을 잘 알지 못해 동네 빵집이나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빵을 사와서 팔았다. 매니저 심수진씨는 "통신사 할인카드를 유용하게 이용했다"며 웃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크게 반발했다. 부모이자 조합 이사장인 장이수(48)씨는 "학생들이 빵을 먹다가 맛이 없다고 던졌고, 매점 앞 복도에서 '매점 돌려놓아라', '(잡)빵을 가져다놓아라'면서 소리치는 학생도 있었다"고 말했다. 학생 조합원들은 친구들의 불만을 무마하느라 진땀을 뺐다. 학생 이사인 김양겸(17)군은 "친구들을 붙잡고 '지금까지 질 낮은 빵을 먹었는데, 좋은 빵을 들이면서 가격이 올랐다'고 했고, 많은 친구들이 납득했다"고 전했다.

12월 서울시의회에서 사회적 협동조합이 학교 매점을 운영할 때 최고가 입찰제가 아닌 수의계약이 가능하도록 관련 조례가 바뀌면서 협동조합 설립은 급물살을 탔다. 같은 달 29일 조합원 63명이 참여한 가운데, 조합이 꾸려졌다.

학생 조합원들은 매점 운영을 두고 머리를 맞댔다. 졸업생을 대상으로 교복 물려주기 사업을 진행해, 30벌의 교복을 모으는 등 분위기를 띄웠다. 학부모·교사 조합원들은 행정적인 지원에 나섰다. 조합은 3월부터 임시 운영에 들어갔다. 조합에서는 잡빵을 없애고, 생활협동조합의 유기농 빵·과자·음료 등을 들였다. 학생 부담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 빵과 우유를 2000원에 살 수 있도록 가격을 조정했다.

학생은 매점을 변화시켰고, 매점은 학생을 변화시켰다

1일 오전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등학교 '먹고가게' 사회적협동조합 매점에서 조합 2학년 대표인 홍주영(오른쪽) 양이 조합원 가입 신청서를 받고 있다.
 1일 오전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등학교 '먹고가게' 사회적협동조합 매점에서 조합 2학년 대표인 홍주영(오른쪽) 양이 조합원 가입 신청서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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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이 매점을 운영한 지 한 달, 매점은 시나브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조합원은 200여 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학생만 150여 명이다. 많은 학생들이 쉬는 시간마다 매점을 찾는다. 장이수씨는 "오전 쉬는 시간에 100개 이상의 빵이 팔린다, 학생들이 매점 앞에 줄을 길게 서는 탓에 매점을 '롯데월드'라고 부른다"라고 말했다.

조합은 매니저와 아르바이트를 하는 2명의 학부모 인건비를 제하고, 매달 50만~100만 원의 이익을 내는 게 목표다. 매점 임대료 276만 원을 뺀 나머지 이익금은 학생 장학·복지 사업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매점은 단순히 먹거리를 파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이 창업이나 다양한 사업을 하는 데에도 사용될 예정이다.

학생들이 매점을 변화시켰고, 매점은 다시 학생을 변화시켰다. 민하정양은 "친구들 사이에 먹거리에 대한 인식 변화가 생겼고, 매점을 이용하면서 단순히 배만 채우는 게 아니라 건강을 생각하는 친구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홍주영양은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협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위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은서양은 "삼각산고가 복장이나 두발이 자유로워 날라리 학교라는 소문이 났다, 입학 전까지만 해도 절망했다"면서 "하지만 이곳에서는 학생들의 참여가 독려되는 분위기다, 중학교 때만 해도 조용히 공부만 하던 내가 삼각산고에 와서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됐다, 중학생들에게 우리 학교를 추천하고 싶다"고 전했다.

매점 '먹고가게'는 3일 오후 조합원들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학교 협동조합을 꾸렸거나 준비하고 있는 학교의 교사 등이 참여하는 가운데 공식적으로 문을 연다.

* 오마이뉴스 창간 15주년 기획 : 행복한 학교
[①-1 남한산초] "대학 안 가고 하고 싶은 일 하니 행복해요"
[①-2 남한산초] 무허가 사설 강습소, 혁신학교의 시작이었다
[② 선사고] 졸업식장에 조폭이...학교가 '완전' 뒤집어졌다
[③ 조현초] 산만한 학생에게 "약 먹이세요"... 서울과 양평은 달랐다

[④ 부명초] 위장전입까지 하며 기피하던 학교, 그 놀라운 변신
[⑥ 동화중] 욕하며 대들어 뼈가 녹을 정도.. 이런 학교가 변했다, 행복하게
[⑦ 오산혁신교육지구] 일진 학생들에게 토론을 가르쳤더니...

* 삼각산고 관련 기사
[김정안 혁신기획부장] "첫째 보내고 울던 학부모 이제는 둘째 보내려고 한다"
[삼각산고 졸업생] 복도에서 오토바이 타는 학교로 소문 났지만...

* 학교 협동조합 매점 관련 기사
[서울 독산고] 매점 아줌마를 "엄마"라 부르는 학생들


태그:#창간기획 : 행복한 학교, #삼각산고, #사회적 협동조합, #먹고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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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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