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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공립고등학교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로 상징되는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정책과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도입한 고교선택제는 고교서열화를 강화했다. 학생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일반고는 '똥통학교'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런 가운데, 일반고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혁신학교로 탈바꿈한 고교에서는 행복한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혁신고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다섯 차례에 걸쳐 일반고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 대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편집자말]
김정안 삼각산고 혁신부장.
 김정안 삼각산고 혁신부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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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혁신학교를 신청하는 고등학교는 거의 없을 거예요. '혁신고'에 가겠다는 고등학교 교사도 많지 않을 거예요."

김정안(62) 삼각산고 혁신기획부장의 말이다. 삼각산고는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고등학교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서울에서 혁신고에 대해 가장 잘 안다는 평가를 받는 김정안 부장의 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김정안 부장은 "학업에 뜻이 없는 학생들이 몰리는 일반고에서 학교 혁신과 대학 입시를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일은 쉽지 않다"면서 "교사 입장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욕먹기도 쉽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내년 100개의 혁신학교 운영을 목표로 지난달 27일 혁신학교 공모계획을 내놓았다. 2010년 말 서울시교육청이 처음 혁신학교를 공모한 결과, 신청한 27개 학교 중에서 고등학교는 단 3곳이었다. 현재의 대학입시 체제에서 '혁신고'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인식 탓이다. 최근 일반고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혁신학교를 신청하는 고교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김정안 부장의 설명이다.

삼각산고가 보여준 '소리 없는 혁명', 하지만...

서울 강북구 삼각산동에 위치한 삼각산고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데에는 교사들의 헌신이 있었다. 삼각산고는 2011년 설립될 때부터 혁신학교로 지정됐다. 교사 26명 가운데 김정안 부장을 비롯한 13명이 학교를 바꾸기 위해 이곳에 온 교사였다. 교사들은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할 정도로 열심히 준비했다.

당시 삼각산고는 환영받지 못한 학교였다. 삼각산고 첫 입학생을 살펴보면, 중학교 내신 성적 하위 20% 학생이 전체의 1/3을 차지했다. 다른 학교에 지원했다 떨어진 뒤 이 학교에 온 학생들이 많았다. '특목고·자사고 벨트'로 불리는 이 지역에서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특목고·자사고나 인근 학교로 갔다. 김정안 부장은 "무기력한 학생들 때문에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교사들은 단순한 문제 풀이가 아닌 학생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 등 미래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성과로 이어졌다.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꿈과 연계해 소논문을 쓰는 '1인 1프로젝트' 수업, 창의적 글쓰기, 학생들의 참여와 협력을 강조하는 수업 등은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이 학교는 교사·학생·학부모의 협의로 학생생활 규정(학칙)을 만들거나 바꾸도록 하면서, 학내 민주화도 확산됐다.

올해 2월 첫 졸업생 306명 중에서 171명이 대학에 진학했다. 김정안 부장은 "입학성적을 감안했을 때, 학교 효과만으로 이런 성과를 낸 것은 '소리 없는 혁명'"이라고 말했다. "첫째 아이가 삼각산고에 배정받았다고 울었던 학부모들이 이제는 둘째 아이도 이 학교로 보낸다"고 덧붙였다. 대입 성적 위주의 고교 평가, 정치적인 혁신학교 흔들기에도 삼각산고는 제 길을 갔다.

교사들의 헌신만으로는 일반고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김정안 부장의 설명이다. 그는 "교사들이 수업에 들이는 노력에 비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하는 데 따른 심리적 좌절감을 느낀다"면서 "수업혁신을 위해서는 교사들의 노력과 더불어 자사고 폐지 등을 통해 일반고 교실의 조건을 개선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안 부장은 "고교체제를 개편해 고교서열화를 해소해야 한다, 단순한 수능 문제 풀이가 아닌 미래역량을 평가하는 대학입시로 바뀌지 않으면 지속적인 혁신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1975년 교단에 선 김 부장은 내년 1학기를 마친 뒤 40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한다. "혁신학교가 확산되고 교육이 바뀐다면, 큰 보람을 느끼고 정년퇴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안 부장 인터뷰는 4일 오전 삼각산고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자사고 생기면서, 학습 의지 없는 학생들 대거 일반고로"

김정안 삼각산고 혁신부장.
 김정안 삼각산고 혁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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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 교단에 처음 섰다. 언제부터 학교 붕괴에 대한 우려가 나왔나.
"1990년대 들어 학교 붕괴가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교사가 학생들을 때리고 억압했지만, 그런 분위기가 얕아졌다. 또한 특수목적고가 설립되면서 고교서열화 조짐이 나타났다. 수업 시간에 자고,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아니라고 느꼈다. 하지만 획일적인 교육과 같은 교육 시스템에서는 탐구수업을 할 수 없다. 수업과 생활지도를 바꾸면서 학생들과 교감하려고 노력했지만, 개인이 학교를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다."

- 1990년대에 이어 2000년대 후반 들어, 학교 붕괴는 더욱 심화됐다. 특히 일반고는 큰 위기에 처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일반고(옛 인문계고)에는 주입식 교육이라도 지식을 받아들이려는 학생들이 많았다. 2000년대 특성화고(옛 실업계고) 살리기가 시작됐고, 이 학교에서도 좋은 대학에 학생들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이런 가운데 자율형 사립고(자사고)고 생겼다. 자사고의 파급효과가 이렇게 클지 몰랐다. 결국 일반고에는 학습에 의지가 없는 학생들이 대거 몰렸다. 수업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왔다. '일반고 황폐화'라는 말이 생겨났다."

- 학교 혁신을 위한 어떤 노력을 했나.
"2000년대 중반 서울여고에 있었다. 당시 20명의 교사가 통합교육과정을 진행했다. 역사·수학 등 다양한 교과에서 평화 관련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이 직접 평화를 주제로 발표하도록 했고, 특강과 축제도 열었다. 학부모 아카데미도 열었다. 교사들이 협력하니 학교 분위기가 바뀌었다. 2009년에는 신설학교인 은평고로 옮겼다. 이곳에서도 소규모 테마형 수학여행이나 동아리 활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 2010년부터 경기도 내 학교에서 혁신학교라는 실험이 시작됐다.
"서울에서도 혁신학교를 준비하는 교사들이 늘어났다. 2010년 말 서울시교육청에서 혁신학교 공모를 했다. 은평고도 혁신학교를 추진했다. 하지만 학교운영위원회에서 50%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 좌초됐다. 고교 학부모들은 입시 때문에 교육과정이 바뀐다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다. 당시 경기도 혁신학교도 실험단계였고, 혁신학교 자체가 아직 가지 않은 길이기에 학부모들은 불안해했다."

"입학 성적에 비해 많은 학생들 대학 진학... 소리 없는 혁명"

4일 오후 혁신학교인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에서 '공정무역'을 주제로 모둠활동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4일 오후 혁신학교인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에서 '공정무역'을 주제로 모둠활동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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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삼각산고에 오게 됐나.
"삼각산고는 2011년 개교할 때부터 혁신학교로 지정됐다. 26명의 교사 중에서 저를 포함해 13명이 혁신학교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온 교사였다. 서울여고에서 교사가 협력해서 학교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학생들의 경우, 대부분 다른 학교를 지원했다가 떨어져 삼각산고에 왔다. 나머지 학생들은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이 학교를 선택했다. 첫 입학생의 중학교 성적 분포를 보면, 하위 20% 학생이 전체의 1/3이었다. 또한 이 지역은 특목고·자사고 벨트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특목고·자사고나 다른 학교에 갔다."

- 어떤 철학으로 혁신학교를 운영하기로 했나.
"당시 교사들이 모여, 중도에 그만두는 학생들에게도 맞는 교육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책임교육과 평등교육을 강조했다. 민주적인 학교문화도 지향했다. 우리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지식주입이 아니라, 자기 삶을 준비하고 미래 역량을 기르도록 하자는 목표를 정했다. 여기에 학생들이 다른 사람, 다른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도 기르게 하고 싶었다." 

- 무엇부터 혁신을 했나.
"수업부터 바꿨다. '수업의 앞담화'가 있다. 같은 교과 교사들이 모여 1시간씩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한다. '수업의 뒷담화'를 통해 수업을 평가하기도 한다. 또한 학생들이 참여하는 토론식 수업을 지향한다. 오늘 4·19 혁명과 유신을 주제로 발표수업을 했더니, 학생들이 사이에서 '교육과 대학입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거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찬반 토론이 벌어졌다. 토론식 수업이 아니었다면, 학생들의 창발적인 생각들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 삼각산고 학생들이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으로 끌려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들을 만난 뒤 보고서를 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1인 1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이 낸 성과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진로와 연결시켜 관심 있는 주제를 정하고 탐구·체험활동을 통해 소논문을 쓰도록 하고 있다. 일부 학생이 아닌, 모든 학생들이 참여하도록 한다. 창의적 글쓰기 역시 큰 성과를 내고 있다. 학생들은 글쓰기로 소통하고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의 교감이 이뤄진다. 생활지도 혁신도 우리 학교의 핵심이다. 교사·학생·학부모가 모여 학생생활 규정(학칙)을 만들고 개정한다. 또한 학생들이 축제·문화행사·수학여행 등을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도록 하는 학생중심의 활동도 강조하고 있다."

- 일반고에서는 대학 진학에 뜻을 두고 있지 않은 학생들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어, 큰 문제다. 삼각산고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학생들의 꿈을 키우는 것을 넘어 미래지향적인 직업을 고민하게 한다. 창업 프로그램을 많이 시도하고 있다. 또한 2학년 한 반을 직업기초반을 만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 인턴십에 나가도록 한다. 어려운 수학이 아니라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법과 같은 '창업수학'을 배우도록 한다. 강북 교육우선지구 사업을 통해 직업 교육을 받는 학생들도 있다. 직업 교육조차 받지 않으려는 학생들도 있는데, 끊임없는 상담이 답이다. 또한 '학습두레'나 '드림팀' 같은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이 서로 배움을 나눌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가 자신을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수업에 참여하게 된다."

- 결국 삼각산고는 어떻게 바뀌었나.
"첫째 아이가 삼각산고에 배정받았다고 울었던 학부모들이 이제는 둘째 아이도 이 학교로 보낸다. 자녀가 특목고나 자사고에 가지 않으면, 대안이 없는 탓도 있다. 삼각산고가 다른 일반고보다 학생을 존중하고 소통도 많이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성적으로 압박하면 아이도 불행하고 가족도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 같다. 입시 성과도 좋다. 첫 졸업생 306명 중에서 171명이 대학에 진학했다. 학생들의 입학성적을 생각하면, 소리 없는 혁명이었다. 학교 효과만으로 이런 성과는 낸 것은 노력한 대가다."

"출발선이 다른데, 수능 성적으로 고교 평가... 혁신학교 흔들기다"

- 최근 <동아일보>에서 수능성적을 중심으로 고교 평가 결과를 내놓았다. 특히, 서울의 혁신고를 두고 '대체로 지난해보다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기사를 보니, 최근 5년 동안 최상위권 학생의 수능 5년 성적과 중위권 학생의 수능 5년 성적 배점이 전체(100점)의 32점이다. 이를 포함한 학력 점수만 60점이다. 지역에 따라 학생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이 다르다. 중학교 내신 성적 하위권 학생이 몰리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는 처음부터 출발선이 다른데, 학력만 가지고 어떻게 비교가 가능하겠느냐. 또한 혁신학교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시험 문제 풀이가 중심인 학업성취도 평가에 반영되지 않는다. 노골적인 혁신학교 흔들기다."

- 혁신고등학교 교사들에게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자체 평가에 따르면, 수업만족도가 낮다. 수업에 들이는 노력에 비해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하는 데에 따른 심리적 좌절감을 느낀다. 무기력한 학생 숫자가 많다. 노력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학교에 다니는 게 의미 없는 학생들에게 생활지도를 하는 게 쉽지 않다. 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면에는 이 같은 어려움이 있다. 수업혁신을 위해서는 교사들의 노력과 더불어 일반고 교실의 조건을 개선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 일반고를 살리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자사고 폐지뿐만 아니라, 외고와 같은 특목고의 감축 등 고교체제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교육청은 교사들이 학교 민주화, 업무 감소, 필요한 인력 지원을 통해 수업과 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교육부는 교육과정의 자율권을 줘야 한다. 교사들이 신이 나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교사를 신뢰해야 한다. 단순한 수능 문제 풀이가 아닌 미래역량을 평가하는 대학입시로 바뀌지 않으면, 지속적인 혁신이 어려울 것이다."

- 혁신학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혁신학교를 공모하고 있는데, 신청하는 고등학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대학입시가 바뀌지 않는 한 혁신고등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교사들의 업무부담이 과중할뿐더러, 욕먹기 십상이다. 특히, 예산에 대한 오해가 많다.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때 간식거리를 준비한다. 이를 두고 혁신학교를 방만하게 운영했다고 비판한다. 삼각산고 교사들은 시행착오 이상의 과도한 비판에 움츠려들지 말고 우리 길을 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 정년퇴임은.
"내년 1학기를 마지막으로 정년퇴임한다. 혁신학교가 확산되고 교육이 바뀐다면, 큰 보람을 느낄 것이다."


태그:#기획 : 혁신고에 가다, #김정안 삼각산고 혁신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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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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