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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해 창간 1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2000년 2월 22일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창간한 뒤, 보수일변도의 언론지형에서 '열린 진보'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습니다. 여기 <오마이뉴스>와 나이가 같은 닮은꼴이 있습니다. 바로 혁신학교입니다. 2000년 남한산초등학교에서 시작된 학교 개혁 운동은 2009년 혁신학교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된 뒤, 전국으로 확산됐습니다. 혁신학교는 무너진 공교육을 되살리는 행복한 학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여러분들을 행복한 학교에 초대합니다. [편집자말]
학교 폭력 행위로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전북동화중학교 오준수(가명) 학생이 31일 오후 전라북도 정읍 전주지방법원 인근에 위치한 한 상담센터에서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
 학교 폭력 행위로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전북동화중학교 오준수(가명) 학생이 31일 오후 전라북도 정읍 전주지방법원 인근에 위치한 한 상담센터에서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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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전라북도 정읍시 전북동화중학교(아래 동화중)에서 학교폭력자치위원회(아래 학폭위)가 열렸다. 오준수(가명·17)군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준수군은 3월 한 달 동안 다섯 차례 반 친구들을 때렸다. 3년 전 학교폭력으로 두 차례나 강제전학을 당한 뒤 이 학교에 왔고, 이 학교에서도 폭력 행위로 2년간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이쯤 되면, 어떤 학교도 준수군을 감당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준수군의 담임교사인 신익호 교무부장은 "준수군이 동화중학교에서 나가면 다시는 학교 안으로 돌아오기 힘들다, 그 다음엔 어떻게 되겠느냐"면서 "학폭위에 '저와 관계 형성을 하면서 마음의 변화를 가져올 기회를 달라, 폭력 행위가 재발하면 5일간 출석정지를 해달라'는 제안을 했는데, 다행히 받아들여졌다"고 밝혔다.

준수군은 학폭위가 열리기 전부터 학교 상담교사의 추천으로 정읍시내의 한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지난달 31일에는 신 부장이 준수군을 차에 태워 상담센터로 향했다. 이곳에서 기자와 만난 준수군은 "친구가 부모님 욕을 해서 때렸다, 선생님은 (다른 학교와 달리) 제가 왜 친구들을 때렸는지 관심을 갖고 귀 기울이셨다"고 말했다.

준수군은 "선생님께 감사하다, 계속 상담을 받겠다"고 말했다. 신 부장은 "마음에 상처가 있는 아이들은 눈이 뒤집힐 때가 있다, 아이들에게 '믿을 만한 어른이 한 명은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아이들과의 좋은 관계를 만들면 마음의 문이 열릴 것"이라면서 "이런 학생들이 학교를 계속 다니는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동화중은 특별한 학교다. 돌봄과 치유가 필요한 학생을 품기 위해 2010년 기숙학교로 설립됐다. 전교생 72명 중에서 23명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가정환경이 불우한 학생들,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등으로 강제전학을 왔다. 전국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동화중은 이후 혁신학교로 지정됐다. 일반학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이곳을 찾는 만큼, 웬만한 열정과 의지만으로는 교사들이 버티기 힘들다.

학생이 교사에게 욕하고 대드는 학교였지만...

31일 오후 전라북도 정읍 전북동화중학교 현관 앞에서 이우철 3학년 학생과 이강민 2학년 학생이 권투시합을 벌이고 있다.
이날 권투시합은 학교에서 3학년 선배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2학년 학생이 도전장을 내밀어 선생님 입회하에 진행됐다.   
권투시합을 승인한 김범주 선생은 "혈기왕성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고 시합을 통해 교우관계도 개선된다"고 말했다.
 31일 오후 전라북도 정읍 전북동화중학교 현관 앞에서 이우철 3학년 학생과 이강민 2학년 학생이 권투시합을 벌이고 있다. 이날 권투시합은 학교에서 3학년 선배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2학년 학생이 도전장을 내밀어 선생님 입회하에 진행됐다. 권투시합을 승인한 김범주 선생은 "혈기왕성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고 시합을 통해 교우관계도 개선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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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전라북도 정읍 전북동화중학교 학생들이 <오마이뉴스> 기자를 향해 사진을 찍어달라며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31일 오후 전라북도 정읍 전북동화중학교 학생들이 <오마이뉴스> 기자를 향해 사진을 찍어달라며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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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부장은 "뼈가 녹을 정도"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 학교를 떠나지 않는 걸까. 1999년 정읍의 한 농공고에서 대안교실을 꾸렸고 이후 대안학교에 큰 관심을 쏟은 이 학교 황화용 전문상담교사는 동화중이 개교할 때부터 근무하고 있다. 동화중 설립을 주도한 박병훈 초대 교장은 여전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다.

신 부장은 2013년 이 학교에 처음 왔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학생들을 돕고 싶어 지원해서 왔다"면서 "당시 학생이 교사에게 욕하고 대들었다"고 말했다. 전북 교사 사회에서 동화중은 근무하기 어려운 학교로 소문났다. 이 학교로 발령나, 울음을 터트리는 교사도 있었다. 한 원어민 교사는 이 학교로 발령받은 후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박병훈 전 교장은 "당시 사건·사고가 자주 일어났고, 우리 힘으로 통제가 안 돼 경찰의 도움을 자주 받았다"고 말했다. 황화용 교사는 "아이들 상처의 원인은 모두 달랐지만, 교사들은 치유·상담에 대한 전문성이 없었다"면서 "의지와 열정으로만 학교를 이끌어간 탓에 학생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 같다"고 전했다.

교사들은 이후 교육·상담전문가 등으로부터 조언을 듣고, 학교 운영에 변화를 줬다. 복수담임제 등을 운영하며 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또한 보통학교에 1명이 있는 상담교사나 상담사가 동화중에는 모두 3명이다. 황 교사도 당초 국어교사였다.

박병훈 전 교장은 "상처받은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설움을 받고 설 자리가 없다, 동화중은 이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보살폈다"면서 "이 아이들이 3년 동안 사랑받은 마음을 간직한다면 당장은 어렵더라도 언젠가는 변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랬더니 조금씩 변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4년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민지양, 다시 학교로

황화용 교사가 31일 오후 전라북도 정읍 전북동화중학교 상담실에서 교우관계로 고민 중인 학생의 내면심리를 알아보기 위해 피큐어라는 인형을 가지고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황화용 교사가 31일 오후 전라북도 정읍 전북동화중학교 상담실에서 교우관계로 고민 중인 학생의 내면심리를 알아보기 위해 피큐어라는 인형을 가지고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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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동화중학교 황화용 교사가 교우관계로 상담실을 찾은 학생을 안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전북동화중학교 황화용 교사가 교우관계로 상담실을 찾은 학생을 안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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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생 서민지(가명)양의 나이는 만 열아홉이다. 또래 친구들은 대학 새내기다. 민지양에겐 어떤 사연이 있을까. 민지양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이 컸다. 아버지한테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두들겨 맞은 뒤로는 마음의 문을 닫았다. 민지양은 그 뒤 4년 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민지양의 동생도 학교에 가지 않다가 친구의 소개로 동화중에 다녔다. 동생이 교사·학생들과 여행갔을 때, 민지양을 초대했다. 민지양은 그곳에서 교사들과 대화를 나눈 뒤, 동화중에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민지양은 "다른 학교는 교무실에 갈 일이 없는데, 이곳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럼없이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들과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지양은 다시 학교를 그만뒀다. 학교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교사들이 민지양의 손을 잡았다. 민지양은 "선생님이 여러 번 찾아오셨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마음이 풀어지면 언제든 돌아오라'고 했다"면서 "결국 마음을 다시 돌렸고, 그 뒤로는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민지양에게 학교를 다니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민지양의 답이다.

"선생님이요."

이날 오후 7시 학교에는 갖가지 관악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부분의 재학생이 관악부 연습실에 모였다. 유연수 전주대 겸임교수의 지휘에 따라 플루트, 호른, 클라리넷, 트럼본 소리 등이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동화중 학생들은 필수로 관악기를 배우고, 매년 12월 콘서트를 연다.

연습실 한쪽 화이트보드에는 '힘들어요', '하기 싫어요', '아파요', '집에 가고 싶어요'라는 글이 써 있다. 동화중 개교 때부터 관악부를 이끌고 있는 유연수 교수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무기력했고 자극에도 반응이 없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면서 "학생들은 음악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지금은 '힘들어요'와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신입생 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던 한 학생은 지난해 콘서트 때 트럼본 솔로 연주를 할 정도로 깨어났다, 관악 쪽으로 전공을 살리고 싶다는 학생도 있다"면서 "음악이 아이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모습에 뿌듯함과 큰 보람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이곳은 학생을 포기하지 않아... 학교가 자랑스럽다"

전북동화중학교 관악부 연습실 한 쪽 화이트보드에는 '힘들어요', '하기 싫어요', '아파요', '집에 가고 싶어요'라는 글이 적혀 있다.
관악부를 이끌고 있는 유연수 교수는 "예전에는 학생들이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는 부정적인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음악을 하면서 지금은 '힘들어요'와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북동화중학교 관악부 연습실 한 쪽 화이트보드에는 '힘들어요', '하기 싫어요', '아파요', '집에 가고 싶어요'라는 글이 적혀 있다. 관악부를 이끌고 있는 유연수 교수는 "예전에는 학생들이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는 부정적인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음악을 하면서 지금은 '힘들어요'와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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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전라북도 정읍 전북동화중학교 관악부 학생들이 연습실에서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31일 오후 전라북도 정읍 전북동화중학교 관악부 학생들이 연습실에서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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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전라북도 정읍 전북동화중학교 3학년 1반 오성 학생이 자신의 생일을 맞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선물과 편지를 자랑하고 있다.
 31일 오후 전라북도 정읍 전북동화중학교 3학년 1반 오성 학생이 자신의 생일을 맞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선물과 편지를 자랑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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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전라북도 정읍 전북동화중학교 3학년 1반 학생들이 교실에서 월례행사인 생일파티를 열어 생일을 맞은 친구를 축하해 주고 있다.
 31일 오후 전라북도 정읍 전북동화중학교 3학년 1반 학생들이 교실에서 월례행사인 생일파티를 열어 생일을 맞은 친구를 축하해 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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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중에서는 관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특성화교육을 받을 수 있다. 교육과정의 30%가 체육활동, 목공예, 사진, 연극 등 특성화 교과로 구성됐다. 3학년생 이서준(가명·15)군은 2학년 때 목공예를 배웠다. 집중력·기억력이 떨어지는 서준군은 특수교육을 받아야 하는 학생이다. 낯가림이 심해 공동체 생활이 어려웠다.

서준군은 목공예 교육을 받으면서 달라졌다. 서준군은 "재미있다"면서 전동 드라이버로 의자에 못을 박았다. 기자는 서준군과 대화하면서 특수교육을 받아야 하는 학생인지 알지 못했다. 목공예를 가르치는 김범주 교사는 "서준군은 성취감을 얻으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게 됐다"면서 "일반학교였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온영두 교장은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서 성장통을 사랑으로 껴안으며 같이 고민을 나누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동화중 교사들은 지금껏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동화중 교사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고 있다. 전국 곳곳에 공립 대안학교가 설립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지지부진했던 전북의 공립 대안 고등학교는 2017년 설립될 예정이다.

3학년생 주현군은 "학교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곳 선생님들은 공부를 못하거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을 포기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주입식 교육이 아닌 다양한 프로젝트 수업·체험학습을 통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다"면서 "전국의 많은 학교가 동화중처럼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편집|최규화 기자

전북동화중학교 학생들이 목공실에서 특성화 교과로 구성된 목공예 수업을 받고 있다.
 전북동화중학교 학생들이 목공실에서 특성화 교과로 구성된 목공예 수업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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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창간 15주년 기획 : 행복한 학교
[①-1 남한산초] "대학 안 가고 하고 싶은 일 하니 행복해요"
[①-2 남한산초] 무허가 사설 강습소, 혁신학교의 시작이었다
[② 선사고] 졸업식장에 조폭이...학교가 '완전' 뒤집어졌다
[③ 조현초] 산만한 학생에게 "약 먹이세요"... 서울과 양평은 달랐다
[④ 부명초] 위장전입까지 하며 기피하던 학교, 그 놀라운 변신
[⑤ 삼각산고] '잡스런 빵' 없앴더니, 학교에 '롯데월드' 생겼다
[⑦ 오산혁신교육지구] 일진 학생들에게 토론을 가르쳤더니...


태그:#창간기획 : 행복한 학교, #전북동화중, #동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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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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