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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이 자명한 사실.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완강한 사실. 평화는 아이들이 앓지 않는 것이다. '강정 평화마음 동화'는 구럼비라는 우주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손바닥 동화이다. 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자주 잊은 일을 용서받기 바라는 글쓰기이다. - 기자 말

강정 평화마음 동화
 강정 평화마음 동화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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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 상아는 그림을 잘 그린다. 나는 그림 그리려면 스케치북 펼쳐놓고 한참 고민하는데 상아는 슥슥 그리기부터 한다. 나는 가끔 신기하고 살짝 샘도 나서 물어본다.

"야, 너는 무사 생각도 안핸 그렴시니(안 하고 그리냐)?"
"생각해. 생각이 그냥 머리에서 막 떠오르는데 어떵 생각을 안 해져(하겠어)?"

맞는 말이다. 상아가 그린 그림을 보면 생각 없이 그리는 건 아니다. 게다가 상아 그림은 생생하고 스케치북에 꽉 차 보인다. 상아가 미술학원에서 가져온 스케치북을 열어보았다. 어제 날짜가 적힌 맨 마지막 장에 박물관 갔던 일이 그려져 있었다.

추석에 제주국립박물관에 가는 건 우리 가족의 정해진 나들이다. 그날 나는 아빠와 '떡메치기'를 했다. 내 앞에서 한 아이가 커다란 떡메를 들고 비틀거렸다. 나는 배꼽 아래 힘을 딱 주고 서라는 아빠 말씀을 따라 비틀거리지 않고 다섯 번이나 칠 수 있었다. 그래봐야 상아 그림에서 나는 오른편 구석 쪽에 조그맣게 그려져 있다.

내 속마음은 빨리 전시장에 들어가고 싶었다. 박물관 유물들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급했다. 하지만 전시장부터 들어가면 상아가 안달을 한다. 휙휙 보고 지나가서는 자꾸 나를 부른다.

"느림보 오라방 뭐해, 빨리 봐~."

상아가 이러면 차분히 볼 수가 없다. 내가 꾹 참고 먼저 놀아주면 관람하는 데 방해가 안 된다. 결국 상아는 유물 전시관보다 '전통 탈 만들기' 체험장에 들어가고 싶어 해서 아빠와 나는 얼른 전시장으로 갔다. 나는 속으로 '아, 잘 됐다'  생각했다. 아빠는 고등학생 때 처음 박물관에 가보셨다고 한다. 

"아빠도 어릴 때 박물관에 가고 싶었어. 아방, 어멍이 쉬는 날 어시 밭으로 바당으로 일 나가시는 형편에 어림없는 꿈이라. 게다가 그때 제주에는 변변한 박물관도 없었어,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도시 아이들 보면 부러웠주. 아빠는 상규랑 박물관 올 수 있어서 참 좋다."

우리 마을의 청동기시대는 어디로 갔을까?

유물전시관에 들어가면 갈색 곰의 뼈가 우리를 맞아준다. 그 옆에는 제주해안 여러 지역 모래가 유리 비커에 담겨 있다. 삼양에서 가져온 모래는 알갱이가 곱고 검은색이다. 화순, 협재, 곽지, 우도에서 온 모래는 희다. 강정과 가까운 중문 모래는 누른빛이다.

나는 화순에서 가져온 모래를 바라보았다. 부러웠다. 화순은 원래 해군기지 부지로 선정되었는데 주민들이 모두 반대해서 짓지 않게 되었다. 공사를 하지 않으니까 저 모래들이 잘 보존되고 있겠지. 부서진 구럼비가 불쌍했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유물을 지나면 커다란 동굴 생활 모형이 있다. '동굴 그늘에 사는 석기시대 제주 사람들' 모형이다. '동굴 그늘'이라는 말이 나는 좋다.

'안녕, 괴기 하영 말련(생선 많이 말렸니)?'

나는 동굴에 사는 여자아이에게 인사했다. 그 아이는 늘 바위 틈으로 새어드는 햇빛에 자리돔을 널어 말리고 있다. 그 옆에는 내가 가장 관심이 많은 청동기 유물이 있다. 내가 왜 여기에 관심이 많은가 하면, 주둥이에 빙 둘러서 구멍을 송송 내놓은 항아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 항아리를 만든 사람이 누굴까. 나는 그 사람이 좋다. 게다가 우리 마을에서는 청동기 유물이 발견된 적도 있다.
   
"아빠, 재작년에 중덕 삼거리 밭에서 청동기 유물 발견됐다고 막 좋아했지예?"
"그랬지."
"우리 마을에서 나온 청동기 유물은 무사 여기 어수과 (왜 여기 없어요)?"
"상규야, 우리 마을에서 발굴된 건 청동기 시대 집터하고 불에 탄 흙이 쌓여있는 자리였어. 제주도는 청동기 시대 지나서 탐라국이 세워졌댄."
"집터가 나오면 그릇도 나오는 거 아니꽈?"
"기(그래)… 집터 주변을 발굴허민 청동기 유물도 나오고 탐라국 초기에 사람 살던 모습도 알아져실 건디."
"그래서 뭐가 나와수과? 저 항아리나 칼 같은 거 마씸(거였어요)?"
"아니 아무 것도 발굴하지 않았어. 청동기에서 조선시대까지 집터만 발굴됐어. 원칙적으로는 그런 유적 나오면 해군기지 공사 중단하고 유물을 더 발굴해야 허는디…." 

내 머릿속에 재작년 일이 떠올랐다. 아빠랑 육지에서 오신 신문기자 삼촌이 이제는 해군기지 공사 중단할 수 있겠다고 싱글벙글했다. 그때 아빠는 며칠 동안 무척 기분이 좋으셨다.

"아빠, 그 집터는 어디로 옮겨 둬수과?"
"집터는 땅이기 때문에 옮길 수 없지. 사진으로 찍힌 건 많지만…."
"중덕 삼거리 어디쯤이에요?"
"응, 삼거리 식당 펜스 너머에서 포구 가는 쪽까지 아주 넓은 지역이주."
"지금도 거기 남아 이실건가예?"
"아니."

아빠가 짧게 대답하실 때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나는 입을 다물고 청동기 시대를 설명하는 글을 읽었다.

제주도의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해안일대 구릉지에 마을을 형성하면서(딱 우리 마을이네) 네모꼴, 혹은 긴네모꼴 구덩이를 파고 기둥을 올린 움집을 지었으며(이런 게 거기 많았단 말이지…), 구멍무늬토기와 같은 민무늬토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아, 아깝다. 더 발굴해보지). 요령식동검과 긴돌칼 등은 한반도와 교류를 통해 소유하였다.

나는 제주 삼화지구, 제주 세무서 부지, 서귀포시 상모리 유적이 청동기 유적이라는 내용도 관찰 수첩에 적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저 설명에 서귀포시 강정마을도 들어갈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빠, 속상허꽈?"
"그래, 아빠는 마음이 좁아서 자주 속이 상햄쪄. 미안허다 상규야."

아빠는 내 어깨를 감싸 안고 옆에 철기시대 코너 쪽으로 가셨다.

"아빠,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뭐가?"
"그럼 중덕에 있던 집터들은 지금 어떵 돼수과? 중덕 쪽을 펜스로 다 가려서 알 수가 없지 않으꽈."
"다 어서졌져(없어졌어)."
"어서져서마씸(없어졌어요)? 제주도 청동기 유물이 여기 전시된 게 36점밖에 안 되는데… 다 없애불민 어떵헙니까? 기자 삼촌도 청동기 유물은 엄청 중요한 거라 해수게(했어요)."

아빠는 입을 꾹 다무시더니 잠깐 서 계셨다. 혹시 화가 나신 건가? 그래도 할 수 없다. 나는 정말 궁금하고 깜짝 놀라서 한 말이니까. 하지만 마음이 좀 조들아졍(조마조마해서) 나도 아빠 양복 소맷부리만 가만 보고 서있었다.

아빠와 나의 약속

"상규야, 우리 나가자. 옆 건물에서 한라산에 대한 특별 전시헌댄. 그거부터 보게."
"……."
"상설 전시장은 다음에 와서 봐도 되잖아. 특별 전시는 곧 끝나. 금세 박물관에 오기 힘드니까 끝나기 전에 그거부터 보는 게 낫겠다."

빨리빨리 걸어서 출구 쪽으로 나왔다. 내 옆으로 철기시대가 지나가고 탐라국 시대도 지나갔다. 옥으로 만든 팔찌가 유리 안에서 쓸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탐라순력도 전시실을 스쳐서 밖으로 나왔다.

'순력도? 순력?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네?'

"아빠, 순력이 뭐꽈?"
"순력이라는 건 조선시대에 제주목사들이 도민들 사는 걸 살펴보러 다니던 행사주게."
"아, 맞다. 위미 하르방이 목사가 순력 돌고 시 읊었던 이야기해주셔수다."
"경했지(그랬지). 하르방이 그날 좋은 이야기 해주셨지?"
"아빠, 순력도는 순력하러 가는 그림이에요?"
"조선 숙종 때 이형상이라는 제주목사가 계셨져. 그분이 제주도 각 고을을 순력할 때, 고을마다 행사를 거행했댄. 그 행사 풍경을 그림으로 남겨놓은 거주. 아주 소중한 자료야."
"아빠…."
"왜?"
"들어가서 순력도만 얼른 보고 가면 안 되카마씸?"
"하하 그래. 봥 가게(보고 가자)."
"아빠, 저 천장 좀 봅써."
"무사?"
"천장에 푸른 유리그림 보면 엄청 신비스러운 느낌 들어마씸. 꼭 백록담 속에 앉아 바깥을 보는 것 닮아마씸(같아요)."
"우리 상규가 이리 궁금한 것도 많고 다정한 마음도 많아서 아빠는 좋기도 하고 걱정도 됨쪄."
"왜 걱정이 돼요?"
"아빠가 상규를 잘 돕고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언."
"걱정 마십서. 스스로 알앙 잘 허쿠다."

아빠는 갑자기 내 겨드랑에 손을 넣고 나를 번쩍 안더니 순력도 전시실 안에 내려 놓으셨다. 우리는 붓으로 그린 옛날 지도 속에서 '강정포'라고 적힌 우리 마을을 찾아냈다. 전시관을 나와서 '어린이올레' 체험관 쪽으로 갔다. 엄마랑 상아를 불러 특별전시실로 갈 예정이었다.

"상규야, 여기 잠깐 앉아봐."
"아빠, 다리 아프꽈?"
"아니, 너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져."
"네."
"너 우리 마을 유물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아빠도 궁금해. 처음 유물이 발굴되고 서울에서 문화재청 사람들이 올 때만 해도 일이 잘 될 줄 알았지. 그런데 갑자기 강정마을에서 발굴된 유물은 별 가치가 없다고 발표가 나부렀져."
"집터가 있으면 그 주변에서 다른 유물이 나올 수 있는데, 찾아보지도 안행마씸?"
"응. 더 이상 발굴하지도 않고 그 자리를 굴착기로 짓뭉개버렸어. 공사하는 사람들 말을 들으니까 거기 이제 집터도 유물도 없댄."
"말도 안 돼. 어떵 경헐 수 이수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상규야, 아빠는 공연히 화가 날 때가 있어. 우리 마을을 잘 지켜내지 못 해서 말이야."
"아빠들도 열심히 마을 지키고 있잖아요…. 경찰이 훨씬 수가 많으니까 그렇죠."
"상규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면 많은 사람이 괴롭게 돼. 우리 마을처럼, 조상들이 남긴 유물이나 땅이 소중하게 대접받지 못 하는 일도 생견(생겨). 조상들이 살아온 흔적은 앞으로 우리 후손이 살아갈 일만큼 소중한 거라."

아빠는 우리 담임선생님처럼 나에게 조용조용 말씀하셨다. 나는 좀 슬프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아빠에게 어른으로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우리 밭과 바다를 꼭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빠 말씀을 새겨들었다. 

"상규야, 중덕 밭이나 유물들은 사라졌어도 우리가 기억하면 돼. 아빠는 컴퓨터에 아빠가 아는 것들을 계속 기록햄쪄. 마을을 지키기 위해 누가 어떻게 애썼는지도 다 적어두고 있어. 우리 마음은 절대 사라질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아빠도 너도 강정마을의 '기억 박물관'이 되잔 말이주."


태그:#강정마을, #제주국립박물관, #청동기유물, #청동기 시대 집터, #탐라순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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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2000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이발소그림처럼> 공동저서 <그대, 강정>.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2011 거창평화인권문학상

** 월간 작은책에 이동슈의 삼삼한 삶 연재중.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터넷신문 '마인드포스트'에 만평 연재중. 레알로망캐리커처(찐멋인물풍자화),현장크로키. 캐릭터,만화만평,만화교육 중. *문화노동경제에 관심. 또한 현장속 살아있는 창작활동을 위해 '부르면 달려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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