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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이 자명한 사실.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완강한 사실. 평화는 아이들이 앓지 않는 것이다. '강정 평화마음 동화'는 구럼비라는 우주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손바닥 동화이다. 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자주 잊은 일을 용서받기 바라는 글쓰기이다. - 기자 말

강정 평화마음 동화
 강정 평화마음 동화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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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텅 비었다. 방과 후 교실에서 상아를 데리고 나와 미술학원 버스에 태워주고 온 길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한라봉 밭에 계실 테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도 안 계시니 이상하다. 우리가 학교에서 올 시간에 집에 아무도 안 계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집이 비어 있으면 배까지 고프다. 책가방을 내려놓고 냉동실에서 별떡을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윽, 차다.'

한 입 물었던 걸 작은 접시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따끈따끈 말랑말랑한 별떡. 엄마가 추석에 많이 만들어 두신 것이다. 별떡을 기름에 지지는 냄새가 집에 가득 차는 게 바로 추석 냄새다. 별떡 모양을 찍어내는 건 재미있다. 가장자리가 톱니바퀴처럼 생긴 둥근 판을 납작한 찹쌀반죽에 꾹꾹 찍으면 떡이 쏙쏙 찍혀 나온다. 나는 특히 반죽을 적당한 두께로 잘 민다. 

"아이고 우리 상규가 만든 별떡 올리민 하르방들이 좋앙허시켜." 
"아이고 솜씨도 얌전허다. 상규 각시는 누게가 올겅고 참 좋켜(누가 올까, 참 좋겠네)."

할머니랑 엄마가 함박웃음을 웃으며 나를 놀리시지만 난 그게 좋다. 마음이 가볍고 따뜻하다. 차례 때는 접시 가득 수북하게 담은 떡 위에 별떡을 올려놓는다. 내가 일 학년 때 차례 상을 보면서 아빠에게 여쭤보았다.

"아빠, 왜 별떡을 맨 위에 놓아요?"
"게매, 무사 경헐건고(글세, 왜 그럴까)? 너 생각에는 무사 경헐 거 닮으냐(왜 그럴 것 같니)?"
"음… 제일 맛있으니까, 그리고… 별은 아주 빛나니까 이걸 보고 조상님들이 잘 찾아오시라고요."
"하하 그래 너 말이 맞다. 별 보고 뱃길 잡던 하르방들이라 별 보는 눈이 밝주게. 저 별이 우리 상규가 만든 별이구나 하고 제기제기(빨리빨리) 오실 거라."

힘세지 않은, 퐁낭집 하르방과 은주 누나

엄마가 오셔서 쌀 씻으실 때 할아버지가 오셨다. 퐁낭집 할아버지가 오늘 교도소에 갇히셨다는 말씀에 진짜 놀랐다. 그 할아버지는 큰 퐁낭(팽나무)이 서 있는 올레(골목) 안에 사신다. 할머니는 중한 병에 걸려 늘 누워 계신다. 정말 큰 일이 난 것이다. 

'할아버지가 무슨 죄를 지으셨을까. 할머니는 누가 돌봐 드리지?'

오늘은 우리 할머니가 퐁낭집 할머니 저녁도 드리고 함께 주무신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답답하고 궁금해서 얼른 집에서 나왔다. 진섭이네로 갔다. 평화센터에 가서 삼촌이나 이모들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이었다. 진섭이도 내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 무사 퐁낭집 하르방이 잡혀간? 어저께도 농협 앞에서 만났는데?"
"나도 몰라. 할아버지는 밖거리로 들어가시고 엄마도 저녁밥 준비하셔서 못 물어봤어. 그리고 너, 은주 누나 알지?"
"당연히 알지."
"그 누나도 잡혀간. 오늘 교도소에 들어갔대."
"뭐라고! 말도 안 돼. 그 누나 얼마나 착한데. 와, 멘붕이다!"
"나도 뭐가 뭔지 몰라. 이해가 안 가."
"두릿두릿 현상규는 몰라도 나는 알아야 되는 거. 근데 내 머리로도 모르겠다."   

평화센터로 길을 건너려고 하는데 계속 자동차들이 지나갔다. 경찰차가 불빛을 번쩍번쩍하며 지나갔다. 그 불빛에 쏘인 듯 마음이 아팠다. 진섭이도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앞만 보고 있었다. 건너편 편의점 앞 평상에는 해군기지 공사장에서 일을 마치고 나온 아저씨들이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나도 저 평상에 앉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해군기지 반대 측이기 때문에 거기 앉으면 안 된다. 편의점 아저씨는 해군기지 찬성 측이다. 삼거리 식당에 사는 개 중덕이가 저 편의점의 흰 개와 싸운 적이 있다. 흰 개가 다리를 물렸다고 편의점 아저씨가 중덕이와 함께 가던 삼촌을 고소한 일은 신문에도 났다. 개싸움도 고소를 하나? 그때도 난 두릿두릿했다.  

찬호 삼촌은 평화센터 바닥에 돗자리를 까는 중이었다. 저녁 촛불집회 준비다. 경애 이모와 국이 삼촌, 민호 삼촌은 평화상단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평화상단에서는 감귤, 한라봉, 옥돔, 조기, 톳, 과일잼 같은 것들을 판다. 우리 마을에 대해 쓴 책이나 우리 마을 앞바다의 남방큰돌고래 모양 목걸이도 판다.

거리가 멀어서 자주 올 수는 없지만, 우리 마을을 돕고 싶은 분들이 육지에 아주 많다고 한다. 그분들이 물건을 주문한다. 그래서 감귤이나 한라봉이 나는 계절에는 평화센터에 감귤 박스가 항상 쌓여 있다. 경애 이모는 평화상단 책임자다. 이모는 늘 물건을 포장하고 부치고 장부에 무엇인가 적는다. 돗자리를 모두 깔고 삼촌이 우리에게 올라와 앉으라고 했다.

"너희들 벌써 저녁 먹고 나온 거야? 촛불집회 두 시간이나 남안."
"안 먹었어요. 삼촌, 궁금한 거 하나 물어봐도 돼요?"
"헉… 이 진지함, 뭐냐 애들아, 내가 모르는 거 물어보면 안 돼!"

찬호 삼촌은 이래서 좋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금세 친구처럼 생각된다.

우리 마을을 인도하는 별은 어디에?

"퐁낭집 하르방하고 은주 누나가 무사 교도소 갔수꽈?"        
"호, 그게 궁금하다는 거지."
"네, 하르방은 70살도 넘으신 분인데…. 은주 누나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글쎄 말이다. 삼촌도 그걸 잘 모르겠다. 뭐가 죄가 된다는 건지 말이야."     

일을 마친 국이 삼촌이 우리 쪽으로 와 앉으며 말했다.

"퐁낭집 할망은 혼자 어떻게 계시나?"
"우리 할망이 거기서 주무신대요. 마을 할망들이 번갈아 돌봐 드리기로 했대요."
"다행이구나. 연세가 일흔여섯이나 되신 분을 어떻게 교도소에 넣을 수가 있나 그래."
"근데 왜 잡혀가셨어요?"

진섭이가 재빨리 또 물었다.

"경찰 폭행이란다."
"폭행요? 힘센 경찰이 힘도 없는 하르방이랑 누나에게 맞았다고요?"
"교도소에 갈 정도로 심하게 때렸어요?"
"본보기로 집어넣는 거지. 심지어 은주에게 맞았다는 여경은 다리뼈가 부러져서 12주 진단이 나왔다는 거야."
"어떻게 때렸길래 다리뼈가 부러져요?"
"공사장 앞에 앉아있는 은주를 여경 네 명이 사지를 붙잡아서 옮기는데 은주가 발로 차서 다리뼈가 부러졌댄."

나하고 진섭이는 정말 놀랐다.

"와아~ 은주 누나 엄청 힘센가 봐요."
"야, 누나가 무슨 힘이 세냐. 그 경찰 혹시 수수깡 다리 아니에요?"   

진섭이 말을 듣고 찬호 삼촌이 하하 웃었다.

"하하하 수수깡 다리 맞다. 삼촌은 그 경찰이 골다공증 걸린 줄 알안. 사지가 딱 붙들려 공중에 들린 자세로는 발길질 해봐야 힘이 없거든. 그리고 경찰들이 두 손으로 꽉 잡고 있는데 무슨 수로 발길질을 하나."

국이 삼촌은 금세 목소리가 떨렸다. 너무 화가 나고 분한 것 같았다.

"맞아. 이건 공정하지 못한 재판이야. 그 여경이 다리 다쳐서 기절했다는데 그날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 중에 절룩거리거나 기절한 경찰 눈 씻고 봐도 없더라. 경찰도 계속 채증했으니까 자기들 주장에 맞는 사진 있으면 내놓으라 해도 못 내놓잖아. 판사라도 옳은 판단을 해줘야 하는데 진짜 억장이 매여 말이 안 나온다."
"그런데 큰일이네. 날도 찬데 퐁낭집 하르방 견디실 수 있겠나."
"내일 신부님이 면회 가신다더라. 신부님 모시고 가서 뵙고 와야겠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천장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서는 책 샹들리에가 둥글게 반짝였다. 시인, 소설가 선생님들이 지난 봄에 만드신 것이다. 그 선생님들이 우리 마을 소식을 들으면 무어라고 하실까.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까? 왜 눈물이 나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퐁낭집 하르방은 우리 할아버지와 친구다. 우리 할아버지도 공사방해 했다고 세 번이나 재판받으러 가셨다. 만약 우리 할아버지가 교도소에 갇히셨다면 어떻게 될까. 정말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다.

"얘들아, 집에 가서 저녁 먹어야지. 이모랑 같이 나가자."

경애 이모가 우리를 불렀다. 밖은 조금 어둑어둑했다. 길을 건너는데 작은 별이 하나둘 반짝였다. 

"앗, 큰일이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이모와 진섭이가 놀라서 나를 바라봤다.

"상아가 미술 학원 버스 내리면 내가 집에 데려가야 해요. 이모, 저 가요. 진섭아 먼저 가라."

휙휙 달리니까 바람이 시원했다. 마음도 좀 시원해졌다. 버스정류장까지 순식간에 달려왔다. 휴, 시간이 조금 남았다. 희뿌옇게 저무는 하늘을 다시 올려다봤다. 정의논 쪽 하늘에 일찌감치 나와 반짝이는 저 조그만 별은 개밥바라기별이다. 우리 하르방들 뱃길을 안내해준 별은 어느 별이었을까. 지금 우리 마을이 살아날 길을 알려주는 별은 어느 별일까.


태그:#개밥바라기별, #별떡, #퐁낭, #해군기지공사장, #평화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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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2000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이발소그림처럼> 공동저서 <그대, 강정>.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2011 거창평화인권문학상

** 월간 작은책에 이동슈의 삼삼한 삶 연재중.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터넷신문 '마인드포스트'에 만평 연재중. 레알로망캐리커처(찐멋인물풍자화),현장크로키. 캐릭터,만화만평,만화교육 중. *문화노동경제에 관심. 또한 현장속 살아있는 창작활동을 위해 '부르면 달려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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