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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이 자명한 사실.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완강한 사실. 평화는 아이들이 앓지 않는 것이다. '강정 평화마음 동화'는 구럼비라는 우주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손바닥 동화이다. 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자주 잊은 일을 용서받기 바라는 글쓰기이다. - 기자 말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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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핸?"
"보다시피. 거울한테 메뚜기 보여준다."
"무사(왜)?"
"내 거울은 본 것들을 기억하거든."
"거울이 사람이냐? 여태 뭘 보여줬는데?"
"나뭇가지 잡고 밭으로 다이빙하는 바람, 새가 낮달 위로 날아가는 거, 개미가 망초 꽃에 오르는 거. 밭담에 붙은 호박 줄기."

"날씨가 더워서 돌았나? 고유정!"
"너 같은 바보는 그렇게 생각하겠지."
"바보? 니가 바보고 비정상이지, 거울이 사람이냐, 카메라냐?"
"얍! "
"야! 거울을 왜 코앞에 들이대!"
"거울아! 이 납작한 콧등을 기억해랏!"

유정이가 가진 거울은 왼쪽이 볼록, 오른쪽이 오목으로 나뉘었다. 양쪽에서 딱 접어 닫을 수 있다. 닫으면 바깥 한쪽이 보통 거울이다. 유정이는 강아지에게 냄새를 기억시키는 것처럼 거울을 훈련시키는 중이라고 했다. 웃기는 일이다.

"봐라. 내가 거울로 공사장 정문을 비추면 거울이 생각을 한단 말이지."
"뭘 생각해?"
"신기하지 않냐? 해군 기지 만드는 사람들도 평화를 위해, 반대하는 사람들도 평화를 위해."
"마을을 뺏기는 게 평화겠냐?"
"나는 거울에게 누구 말이 맞는지 묻는 거야. 오목은 찬성, 볼록은 반대지."
"거울이 뭐라고 대답핸?"
"내 거울은 대답이 좀 늦다. 기다려 봐."
"그래, 대답이 영원히 없을 테니까 영원히 기다려볼게."

길에 앉아 거울 훈련시키기에 빠진 유정이. 특이한 애지만 좋은 친구다. 유정이 부모님은 부산에 계시고 유정이와 동생 세정이는 할머니와 산다. 하마터면 사이가 나빠질 뻔했던 유정이네. 그때 생각만 하면 끔찍하다. 그러니 나는 유정이가 좀 이상하게 굴어도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유정이 할머니가 해군기지를 찬성하셨다. 마을 소식을 들은 유정이 아빠가 급히 오셔서 할머니 마음을 바꾸었다. 만약 마음을 바꾸지 않으셨으면…. 아, 생각만 해도 머리가 '띵'하다.

"유정아, 너희 할망 계속 찬성 측이면 호꼼(조금) 머리 아플 뻔 했지?"
"옆에서 자꾸 찬성해야 좋다고 하니까 할망이 몰라서 그런 거. 이제 그 말 하지 마라."
"우리 할망 동생은 지금도 찬성 측이야. 우리 아방이 인사해도 안 받고이 식게(제사) 에도 안 오신다. 완전히 거을어졌어(사이가 나빠졌어). 나는 그런 거 보면 가슴이 막 답답해."

"우리 아빠가 할망한테 막 이야기하셨어. '해군기지 그게 미군기지라마씸. 미군들 들어오면 유정이하고 세정이 여기서 못 키웁주. 애들 못 키우는 동네면 돌아와 살 수가 없다마씸.' 그 말에 우리 할머니가 마음 바꾸셨댄."

"코사마트 안 가고 거기 갔수꽈?"

우리는 서부민박 앞 그늘로 가서 혜선 쌤(선생님)을 기다렸다. 혜선 쌤은 평화 지킴이다. 쌤은 우리의 모듬 숙제를 도와주기로 하셨다. 검색해보니 마을에서 구럼비 다음으로 유명한 곳은 강정천과 냇길이소였다. 셋이서 강정천 맨 위에서 냇깍(냇물 끝)까지 '놀멍 걸으멍' 가다가 사진도 찍고 글도 쓰기로 했다.  

"애들아 달렷!"

멀리서 혜선 쌤이 소리치며 달려오는 서슬에 우리는 벌떡 일어났다. 우리는 멋도 모르고 냅다 달렸다. 얼굴이 싯뻘겅해진(시뻘개진) 채 주유소 앞에 멈춰서 물었다.

"아, 숨차. 이 아이스크림부터 받아. 왜 그랬냐면이, 옛날에 물 맑은 마을에 나들이 가게랑 코사이 가게가 있었어요. 두 가게는 거울 보듯 서로 마주보고 섰어요. 어느 날 어여쁜 비바리(처녀)가 나들이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사다가 복남 삼촌에게 들켠! 하하"
"헐~ 자기가 자기보고 어여쁜 비바리래!"

"무사 코사마트 안 가고 거기 갔수꽈?"
"길 건너로 가면 약속시간 늦을까봐서. 그걸 복남 삼촌이 보고 '혜선 이리 와 봣!' 그래서 막 도망쳤지, 히힛."

나들 가게는 해군기지 찬성이라 우리는 가지 않는다. 하지만 혜선 쌤은 평화 지킴이니까 누구하고나 잘 지내려고 갔을 것이다.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유정이가 쌤에게 거울을 내밀었다.

"쌤. 이 거울 좀 봐요."
"어? 내 얼굴에 뭐 묻언?"
"거울에게 쌤 얼굴도 기억시키려고요."
"쌤, 유정이 거울이요, 누가 평화 편인지 알려 준대요."
"올 굉장한 거울이심! 나는 물론 평화 쪽이지만 으허~불안한 걸?"

쌤은 거울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이리저리 각도를 잡았다. 유정이는 깔깔 웃었다. 나는 왠지 가라앉은 기분이 들어서 아이스크림 막대를 풀숲에 휙 던졌다. 

"쌤, 우리 마을 깨져도 우리나라 전체가 평화로워지면 그게 더 좋아요?"

쌤보다 유정이가 먼저 툭 쏘아붙였다.

"야, 우리나라 안에 우리도 들언. 우리가 깨지면 나라 전체가 평화로운 게 아니지."
"인터넷 가봐.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 강정 사람들만 가만있으면 제주도에도 좋고, 나라에도 이익이라 헌다."

사람이영 나무영 물이영 내쫓기지 않아야 평화

우리 이야기를 듣고 쌤은 입술을 오므렸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았다. 쌤은 심각해지면 입술을 조그맣게 오므리면서 눈을 동그랗게 뜬다. 

"쌤이 아까 마을회관에서 안 좋은 소식을 들었어."
"뭔데요? 누가 또 잡혀갔어요?"
"아니 다른 일이야. 해군기지 들어오면 군인들 살 아파트를 원래 냇길이소 위에 짓기로 했거든."

"냇길이소는 먹는 물인데 그 위에 아파트 지어도 되꽈?"
"안 되지. 마을회에서 안 된다고 했어. 그쪽 밭주인들도 돈 암만 많이 줘도 안 판다고 하셨대. 그래서 해군이 다시 남쪽 밭에 짓겠다고 했나봐."
"게메(그래요)? 짓기로 했수꽈?"
"남쪽 밭에 관사 짓겠다고 해군이 오늘 신문에 냈어. 마을 투표에서 98%가 관사 유치 반대했는데 자꾸 그런다."

"쌤, 기지만 짓는 것 아니고 다른 것도 지어요?"
"군인아파트 같은 군부대에 필요한 시설을 여기저기 짓겠지. 숙박시설, 식당, 상점 같은 것들도 들어오고. 지금 있는 집이나 밭들이 많이 사라지게 돼. 이사 가는 집도 꽤 많아질 거야. 군사시설 주변은 자기 땅이라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없으니까. 게다가 기지나 특정 시설은 밤새 전등을 밝혀놓기 때문에 그 주변은 농작물이 자라지 못해." 

무섭다. 마을이 시내처럼 되고 농작물이 자라지 못 하면 어떻게 하지. 우리는 아무말 없이 걸었다. 좋은 일은 의도도 좋아야 한다고 논리적 글쓰기를 할 때 배웠다. 자연이나 사람을 괴롭히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쌤, 엄마가 세정이영 나영(세정이랑 나랑) 이번 저슬에(겨울에) 부산으로 데려 간대요."
"기(그래)? 무사?"
"해군기지 싸움 이길 것 같지 않다고예, 중학교 가기 전에 부산에서 6학년 다니라고마씸. 원래는 나 중학교 갈 때 엄마아빠가 제주 오기로 했는데…."
"야! 왜 못 이겨? 너 간 다음에 우리가 이기면 어쩔래? 고라보라!(말해봐라)"

나는 유정이한테 꽥 소리를 지르고 앞서서 막 달려갔다.

화를 내는 길. 고함을 치는 길, 주먹을 그러쥐는 길. 누군가 나를 막 누르는 기분이 들어서 있는 힘을 다해 달리는 길. 안 좋다. 내가 휙 스쳐온 저 녹나무는 나이 많은 나무다. 저 나무도 머지않아 잘릴지 모른다. 사람들이 우리 마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거울에게 물을 필요도 없어. 사람이영 나무영 물이영 몬딱 내쫓기는 게 평화야? 그런 건 그냥 나쁜 거라고!'


태그:#강정, #해군기지, #녹나무, #거울, #냇길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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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2000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이발소그림처럼> 공동저서 <그대, 강정>.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2011 거창평화인권문학상

** 월간 작은책에 이동슈의 삼삼한 삶 연재중.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터넷신문 '마인드포스트'에 만평 연재중. 레알로망캐리커처(찐멋인물풍자화),현장크로키. 캐릭터,만화만평,만화교육 중. *문화노동경제에 관심. 또한 현장속 살아있는 창작활동을 위해 '부르면 달려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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