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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이 자명한 사실.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완강한 사실. 평화는 아이들이 앓지 않는 것이다. '강정 평화마음 동화'는 구럼비라는 우주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손바닥 동화이다. 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자주 잊은 일을 용서받기 바라는 글쓰기이다. - 기자 말

강정 평화마음 동화
 강정 평화마음 동화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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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감귤 밭이 시끌시끌하다. 집에 어린이가 있는 가족들을 초대해 감귤 따기 체험을 하는 날이다. 감귤나무에는 초록빛이 반쯤 섞인 노란 감귤들이 방실방실 웃고 있다. 가을에 수확하는 극조생 감귤은 샛노랗지 않아도 다 익은 것이다.     

"할망 저 왔수다."
"배 안 고픈가? 뭐 좀 먹었나?"
"배고파요. 먹을 거 있어요?"
"있고말고. 이리 와라. 우리 강생이가 배고프면 되나."

할머니는 귤 따던 가위를 손에 드신 채 컨테이너 쪽으로 가셨다. 나는 배고플 때 할머니를 생각하면 안심이 된다. 할머니는 내 얼굴만 보면 "배 안 고픈가?" 물으시고는 금세 먹을 걸 주신다. 언제나, 늘, 안심이다. 

김밥과 삶은 고구마 두 개를 먹고 물을 마시고 나도 감귤나무 사이로 들어갔다. 가위를 챙겨드는 건 기본이다. 수확하는 귤은 절대 손으로 비틀어 따서는 안 된다. 자기 아빠나 엄마 곁에서 귤을 따는 아이들도 귤 꼭지를 짧게 자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귤 꼭지가 길면 다른 귤에 상처가 나고 금방 상하기 때문이다.

밭담 쪽 가장자리 나무에서 여자아이 하나가 혼자 귤을 따고 있었다. 우리 상아만 한 아이였다. 한참 있다가 보아도 가족들이 안 보였다. 다른 가족 따라 혼자 왔나? 나는 그 아이에게 갔다. 그 애가 따놓은 귤 중에 꼭지가 긴 것들을 골라 손질해주었다.

"오늘은 여기 귤 실컷 따먹어도 되는데 많이 먹었니?"
"응, 아까 두 개 먹었어. 원래는 실컷 먹을 생각이었는데 따는 게 더 재밌어."
"너 몇 학년이야?"

"응, 이 학년. 오빠는 몇 학년이야?"
"오 학년. 너 제주 시내에 사니?"
"아니, 우리는 서울 살아. 우리 아빠 친구 집으로 귤 따러 온 거야."
"네 아빠가 우리 아빠 친구야?"

한 상자를 다 채우고 새 상자에 귤을 채워가고 있을 때 아빠가 오셨다. 함께 걸어오시는 분이 은서 아빠였다. 두 분은 포구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이 녀석들 용케 알아보고 같이 귤을 따네."

아빠가 은서 아빠와 나를 소개해주셨다. 아빠가 '믿음직한 우리 아들 상규'라고 나를 소개하셔서 속으로 깜짝 놀랐다. 어쩌면 얼굴이 빨개졌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빠와 고등학교 동창인 은서 아빠는 해양생태를 연구하는 곳에서 일하는 박사님이셨다. 오늘 감귤 따기 체험은 은서 아빠랑 친한 분들이 오신 것이다.

문화재도 산호도 보호되어야 하는데

귤 따기를 마친 후에 모두들 포구로 갔다. 나는 삼거리 식당 갈림길 쪽 펜스 앞에서 아빠에게 여쭤보았다.

"아빠, 저 안쪽이 문화재 발굴됐던 곳이죠?"
"맞아, 저기야."

손님들이 삼거리 식당에서 차를 한 잔 마시는 동안 나는 펜스 너머로 공사장을 넘어다보았다. 아빠가 테이블에 의자를 놓고 올라가 잠깐 목마를 태워주셨다. 어마어마하게 큰 삼발이들이 로봇 군단처럼 서있는 게 보였다. 중덕 들판은 사라지고 살벌한 공사장이 있었다.

이상했다. 거기에는 우리 밭도 있었고 진섭이네 밭도 있었다. 퐁낭집 하르방네 채소밭은 큰 용설란 두 그루가 지키고 있었다. 이젠 아무 것도 없다. 긴 꽃대에 상아색 꽃을 달고 서있는 용설란 앞까지 오면 바다가 보였었는데! 이제 검은 흙들이 하나도 없고 회색 시멘트 길만 보였다.

'문화재 나온 자리 다 뭉개버렸다는 말이 맞나봐.'
'바다도 안 보이고 구럼비도 안 보이네.'
'용설란아… 너희 하르방 교도소에 계셔.'
 
강정포구 방파제에 갔다. 해군기지 공사장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손님들은 우리 아빠에게 여러 가지를 물으셨다.

"저기가 그 유명한 구럼빕니까?"
"네, 삼발이가 놓여서 잘 안 보이지만 아직 깨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습니다. 케이슨 제작 장 너머 맷부리 쪽도 살아 있는 부분이 많고요."
"인터넷 카페에서 보니까 마을 해녀들이 물질 가기 전에 기원을 드리던 할망물이 살아 있다던데 사실인가요?"
"네. <구럼비에 바람이 분다>라는 다큐 영화 만드는 조성봉 감독님이 항공 촬영 중에 발견하신 거라 사실일 겁니다."
"저기 보이는 섬이 범섬이면 저 쪽이 유네스코 연산호 군락 보호지역이지요?"
"네, 맞습니다."
"연산호들은 괜찮은가요?"
"그 문제라면 은서 아빠 아니, 고 박사가 전문가이니 말씀해주시지요. 하하."
"아, 정말, 강정에 오니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저는 그동안 강정을 위해 아무 것도 못 했어요. 저도 이곳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지 못 해서 많이 부족하죠. 하지만 궁금하신 게 있으면 아는 대로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은서 아빠를 향해 박수를 쳐드렸다. 범섬과 구럼비도 함께 박수를 치는 것 같았다.

"최근 8월과 10월에 스쿠버다이버들이 공사장 500미터 이내에 서식하는 산호를 촬영했어요. 1년 전 사진과 비교해볼 때 47% 정도가 썩어서 죽거나 생장을 멈추었다고 합니다. 공사가 계속 진행되면 상황이 더 나빠지겠지요. 공사 현장이 점점 연산호 군락과 가까워질 테니까요."
"다른 나라에서는 연산호 관광이 훌륭한 관광자원이라고 하던데요."
"네, 산호초 군락이 워낙 신비롭잖아요. 강정 앞바다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할 정도니까 설명이 필요 없겠습니다. 그 아름다운 모습 속에서 공생하는 생명들이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는 면이 있지요."
"바다가 저렇게 넓은데, 공사를 한다고 해서 영향이 있을까요?"
"지구를 둘러싼 우주가 한없이 넓어도 오염된 공기가 우주로 사라지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물결이 오간다고 해도 시멘트 독성이나 잡석 오물, 흙탕물 등이 일정 기간 인근 해양에 머물게 됩니다. 해양 생물들이 영향을 받지요. 자유롭게 오가던 조류가 방파제로 막혀 각종 퇴적물이 쌓이기도 합니다. 방파제에 몇 군데 구멍을 뚫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고 박사님, 연산호 군락이 왜 보호돼야 하죠?"
"모든 생물은 서로의 삶이 지속되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생태를 가장 크게 해치는 인간마저도 이 규칙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이걸 생태 고리하고 하죠. 연산호 군락지는 바다목장 역할을 합니다. 산호초 사이에 30여 종 넘는 물고기가 알을 낳고 살거든요. 연산호 군락을 죽이는 건, 수십만 마리 물고기들의 집을 인간이 제멋대로 강제 철거해버리는 셈이지요."
"아, 연산호 군락지가 하나 없어지면 바다목장 하나가 없어지는 거군요."
"네, 그뿐 아니라 산호가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왜 그런가 궁금하시죠? 여러분, 식물이 광합성을 할 때 무얼 먹고 무엇을 내놓나요?"
"이산화탄소를 먹고 산소를 내놓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산호의 공생 조류들이 광합성을 하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하는 양이 대단합니다. 산호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거죠." 
 
모두들 "아… 그렇군요"라고 조금 놀랐다. 어른들은 걱정스럽게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물고기나 산호도 중요하지만 해군기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 분은 안 계셨다.

"아빠, 산호는 뭘 먹고 살아요?"
"오, 은서가 아주 좋은 질문을 했네. 은서야 산호는 손이 엄청 많잖아. 텔레비전에서 본 적 있지?"
"네."
"그 수천 개 손으로 플랑크톤이나 작은 새우, 물고기 같은 걸 먹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영양이 부족해. 문제는 산호가 바위에 딱 붙어 살기 때문에 먹이활동이 제한되어 있다는 거야. 자, 배고픈 산호에게 부족한 영양분을 누가 먹여주어야 할까?"
"산호 엄마요?"
"하하, 그 엄마가 바로 산호에 깃들어 사는 공생 조류야. 작은 바다 식물이지. 이 식물이 광합성을 해서 산호에게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는 거란다. 아이고, 은서야 미안해. 아빠가 쉽게 설명해도 은서한테는 어렵겠다 그지? 하하."
"아저씨, 공생 조류가 광합성을 못 하면요?"
"상규야, 그게 바로 큰 문제야. 바다가 광합성을 못 할 조건이 되면 공생 조류가 산호에서 빠져 나가거든. 그러면 산호가 하얗게 변하면서 죽게 돼."

맑은 물에서만 사는 산호나 조류는 물이 더러워지면 바로 죽는가보다. 커다란 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계속 사진을 찍으시던 아저씨 한 분이 물으셨다.

"고 박사님, 산호가 광합성을 못 할 조건이라는 건 어떤 상태인가요?"
"가장 큰 문제는 오염으로 인해 물이 혼탁해지는 거지요. 산호가 가장 맑은 바다에서 사는 건 햇빛을 충분히 받아 광합성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거든요. 물론 오염으로 인해 산호가 독성 물질을 먹거나 바닷물이 산성화 되는 것도 매우 큰 조건이 됩니다."
"최근에 괴사 상태가 많다면 이곳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군요."
"네, 저기 오탁방지막이 보이시죠? 주황색으로 된 기다랗고 둥근 풍선 띠 말이에요."
"네, 저게 어떤 역할을 하죠?"
"공사 중에 오염된 물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막을 띄워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파도가 강해서 자주 끊어져 버리거나 위에 풍선 띠는 있는데 아래 막이 유실되기도 쉽지요. 늘 정비하지 않으면 오염된 물이 순식간에 빠져나갑니다."
"그러고 보니 저쪽도, 저쪽도, 끊겨 있는데요!"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연산호 군락이 위험합니다. 1~2킬로미터 거리가 육지에서는 꽤 멀지만 보시다시피 바다에서는 금세 영향을 미칠 거리에요."
"모든 국민이 힘을 합해 지켜야 할 자연인데 이해가 안 가네요."

어른들도 아이들도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몇 분 어른들은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이건 뭐… 구럼비, 은어 떼, 기수면 생물, 공동체 정신, 연산호까지 천혜의 자원을 너무 많이 파괴하는 공사군요."
"부끄러운 일이네요. 유네스코에서 '범섬 앞 연산호 군락은 세계적인 보물이니 보전하세요'라고 훈장을 붙여줬는데 우리 스스로 파괴해버리다니…."
"제 품의 보물도 못 챙기는 나라라고 비웃을 것 같아요."
"고 박사님, 산호를 다시 살릴 방법은 없나요?"
"바다 식목의 한 종류로 산호를 심는 시도를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맑고 깨끗한 바다라야 가능하겠지요."

위험한 물질이 많은 군함을 위험한 항구에 놓겠다고!

이때 아빠가 손뼉을 크게 치시며 말씀하셨다.

"자, 여러분! 여기서 저어기 구럼비 쪽을 한 번 바라보세요. 항구가 생기는 저 곳이 좀 이상하지 않나요?"

다들 좀 어리둥절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나도 강정포구에서 맷부리 쪽까지 좌악 한눈에 살펴보았다. 여기저기서 대답들이 나왔다.

"네? 뭐가요?"
"삼발이요?"
"굴삭기요?"
"케이슨요?"
"좀이 아니라 많이 이상해 보입니다아~."

어느 아저씨의 말씀에 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빠도 함빡 웃으며 또 물으셨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보신 항구들은 움푹 들어간 만에 있었나요, 툭 튀어나온 곶에 있었나요?"
"그거야 당연히 만이죠~."
"맞습니다! 왜 만에 항구를 만들까요?"

노란 모자를 쓴 아이가 "보기가 좋아서요!" 라고 대답하자 다들 "하하하하" 웃었다. 다른 아저씨가 대답하셨다.

"파도가 셀 경우를 대비한 거겠죠? 태풍 불면 배들이 움푹 들어간 항구로 피신하잖아요?"
"네, 맞습니다. '보기가 좋아서'라고 한 어린이 말도 맞습니다. 안전한 곳이 보기가 좋지요. 곶은 항구를 만들기에 부적합한 곳입니다. 태풍이 불면 배들이 파도에 부서지거나 피해를 입거든요. 자연의 힘은 상상할 수 없이 크고 무섭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 구럼비 해안은 만인가요 곶인가요?"
"곶이요!"
"아주 잘 보셨습니다. 세계 어디에 가도 곶에 항구를 만드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하물며 어마어마하게 많은 기름을 주유하고, 방사능 무기가 탑재된 군함을 모아두는 해군기지를 위험을 무릅쓰고 곶에 지어도 될까요?"
"안 됩니다아~."


태그:#연산호 괴사 , #강정마을 , #해군기지, #유네스코, #연산호 광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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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2000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이발소그림처럼> 공동저서 <그대, 강정>.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2011 거창평화인권문학상

** 월간 작은책에 이동슈의 삼삼한 삶 연재중.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터넷신문 '마인드포스트'에 만평 연재중. 레알로망캐리커처(찐멋인물풍자화),현장크로키. 캐릭터,만화만평,만화교육 중. *문화노동경제에 관심. 또한 현장속 살아있는 창작활동을 위해 '부르면 달려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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