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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요즘 '엘리베이터 도우미' 보신 적 있나요? 저는 한참 머리를 굴려봐도 생각이 나지 않는데요. 기억 속에서 잊혀졌던 엘리베이터 도우미를 14일 봤습니다.

 

어디에서일까요? 백화점? 호텔? 아닙니다. 놀랍게도 정부기관에서입니다.

 

국감 때면 여성 공무원 '엘리베이터 도우미'로 동원

 

관세청·통계청·조달청·한국조폐공사에 대한 국회 기획재정위의 국정감사가 열린 13~14일. 정부 대전청사는 국감장이 있는 3동 엘리베이터 4곳에 도우미를 뒀습니다.

 

"의원 휴게실은 8층, 국정감사장은 9층입니다. 어디 가십니까?"

 

엘리베이터에 타면 여성들이 이런 안내를 합니다. 가슴에는 '안내'라고 적힌 노란 리본을 매달았습니다. 몇 층에 가는지 말만 하면 알아서 대신 버튼을 눌러줍니다. 사람이 타지 않을 때에는 문밖에 서 있다가 1명이라도 오르면 같이 타 안내를 합니다.

 

성차별 논란에 백화점에서도 없어진 지 오래인 엘리베이터 도우미가 다른 곳도 아닌 정부기관에 버젓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신분을 알고 나면 더 황당해집니다. 바로 조달청·한국조폐공사 등 피감기관에서 차출된 공무원들입니다. 국감기간 중 의원들과 보좌진, 그리고 기자들을 위해 일부러 배치한 인력입니다.

 

청사 곳곳에 안내를 위해 직원들이 있었지만, 엘리베이터만큼은 여성이 맡습니다. 국감기간에는 엘리베이터 안내를 하는 것이 이들의 업무인 셈이지요. 국감 중에만 볼 수 있는 진풍경입니다.

 

여직원들을 엘리베이터 도우미로 동원하는 관행은 국감 때마다 비판을 받았던 일입니다. 2004년에는 당시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이 서울지방경찰청에 대한 행정자치위 국감에서 차 나르기, 엘리베이터 안내에 여경들을 동원한 일을 지적해 서울청이 이들을 부랴부랴 철수시키기도 했습니다.

 

화장실엔 수건·칫솔·치약·비누·스킨·로션까지

 

씁쓸한 풍경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피감기관들은 화장실에도 큰 공을 들였더군요.

 

화장실에 들어서면 일단 입이 떡 벌어집니다. 세면대에 놓인 물품 때문입니다. 손을 씻고 닦을 수 있는 수건 수십 장에 칫솔·치약·비누·로션·구강청결제까지 비치돼 있습니다.

 

의원·보좌진 휴게실, 기자실, 국감장이 있는 8~9층 화장실만 그랬습니다. 게다가 칫솔·치약·비누·스킨·로션은 모두 새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국감용'인 것이지요.

 

 

국감 기간중 대전청사 공무원들은 구내식당도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식당이 국감 외빈접대용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죠. 이날 이 사실을 모르고 점심을 먹으러 갔던 직원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도 운행됩니다. 의원들만을 위한 엘리베이터는 국회의사당에도 없습니다.

 

기자들도 특권을 누립니다. 흡연의 특권이죠. 청사 건물은 당연히 금연건물이지만, 기자실은 예외입니다. 의원·보좌진 휴게실도 그렇습니다. 청사 측은 마음 놓고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테이블에 재떨이까지 놓아두는 '배려'를 잊지 않았습니다.

 

기자실은 '특별히' 흡연 가능... 국감중 구내식당은 '직원 이용불가'

 

피감기관에서는 이런 준비가 당연한 듯합니다.

 

"국감 기간에 청사 여기 저기에 우리 직원들을 과장·팀장 할 것 없이 쫙 다 풀어놨습니다."

 

이날 감사를 받은 조달청 관계자의 자랑스러운 설명입니다. 그는 "청사 내에서는 금연이지만, 기자실만 특별히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해놨다"는 말도 덧붙이더군요.

 

이런 관행은 다른 피감기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과학기술위의 서울대 국감에서는 국감장에서 감사준비팀이 만든 '차 접대 문건'이 발견돼 입길에 올랐습니다.

 

제목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명단(드시는 차 기호)'입니다. 이 문서에는 의원들의 사진과 차 마시는 취향이 아주 자세하게 적혀있었습니다. '○○○ 의원 커피(믹스), 찬 녹차, 찬 둥글레차', △△△ 의원 아침 원두(각설탕 반 개 or 한 개, 프림 조금)' 하는 식입니다.

 

 

대한주택공사 국감 때는 기자와 의원 보좌진이 먹는 오찬장 식탁에 장어구이·대하·연어샐러드 등 반찬이 무려 16가지나 올랐다는군요.

 

정부기관의 이런 '특별한' 행정에 과연 국민들도 동의할까요? 정부기관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국감에 공무원을 '엘리베이터 도우미'로 동원하고, 화장실에 세면도구나 사 놓으라고 국민들이 녹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후진적이고 성차별적인 국감장 접대 관행이야 말로 국감 대상 아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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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국정감사, #국감장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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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2008년 국정감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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