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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이런 일은 처음 겪어봐서…황당하기도 하고…."

14일 오전 산업은행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전날(13일)에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선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동안 많은 기업간 인수합병(M&A)를 지켜봤던 그였다. 그는 "국민의 돈으로 살린 기업인 만큼,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한다는 원칙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세계3위, 국내 조선업의 간판인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이 막판에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강력한 후보로 꼽힌 포스코-GS 컨소시엄은 입찰 문서의 도장이 마르기도 전에 깨져 버렸다. GS그룹의 갑작스런 인수 불참에 포스코는 졸지에 입찰 자체가 어려운 지경까지 내몰렸다.

포스코는 14일 오전 긴급 이사회를 열고, 단독입찰 참여를 결정했다. 하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매각 주관사인 산업은행도 포스코의 입찰자격 유지를 두고 법적 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 물론 곤혹스럽긴 산업은행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4일 전에 결혼발표, 결혼식장 나와서 파혼 선언

지난 9일 오후 5시 32분. 포스코는 기자들에게 그리 길지 않은 이메일을 보냈다. 내용은 대우조선 해양 인수전에 경쟁자였던 GS와 공동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13일 본 입찰서 제출에 앞서, 유력 인수후보 사이의 전격적인 제휴 선언이었다. 시장에선 대우조선이 사실상 포스코-GS 컨소시엄쪽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이들의 발표대로, 조선업과 밀접한 관련이 깊은 철강(포스코)과 에너지 산업(GS)이 결합할 경우 대우조선인수의 시너지가 클 것이란 기대감도 한몫했다.

하지만 기대는 기대로 끝이었다. 이후 이들 두 그룹 사이에 인수 가격과 경영권 등을 두고 치열한 기싸움이 벌어졌다. 주말인 11일부터 본격적인 협상이 진행됐지만 쉽지 않았다. 지난 13일 오전엔 이구택 포스코 회장과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막판 비밀회동까지 가졌다.

이들 두 수장의 만남도 큰 성과가 없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두 분이 솔직하게 말씀을 나눴지만, 의외로 생각 차이가 크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면서 "사실상 이때부터 컨소시엄 유지가 어려울 것 같았지만, 최종 마감시한까지 양쪽이 최대한 합의하도록 노력하기로 했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소개했다.

실제 포스코와 GS그룹 고위 관계자들은 13일 오후 3시 본 입찰 마감시각까지 인수가격 등을 두고 협상을 계속 벌였다. 하지만 양쪽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마감시간에 몰린 포스코는 오후 2시 59분께 공동 컨소시엄 이름으로 입찰서를 제출했다.

왜? 2조원의 인수 가격차 극복 못했다

대우조선해양 매각 본입찰 마감일인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회의실에서 참여업체들이 입찰제안서를 제출하고 있다.
▲ 대우조선 본입찰 마감 대우조선해양 매각 본입찰 마감일인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회의실에서 참여업체들이 입찰제안서를 제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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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가 입찰서류를 낸 이후, GS는 곧바로 산업은행쪽에 또 다른 서류를 제출했다. 내용은 포스코가 써낸 인수가격은 GS의 입장과 다르다는 것이다. 서류상 한 배를 탄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들의 법적 효력의 문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매각 주체인 산업은행으로선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런 경험은 처음이어서 이후 양쪽(포스코와 GS)에 문서로 공식적인 입장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GS는 이후 긴급 이사회를 열고, 포스코쪽과의 제휴 등을 심도있게 다시 논의했다. 자신들이 생각한 입찰 가격이 포스코쪽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일방적으로 가격이 제출됐다는 것이다. 결국 13일 오후 6시15분께 공식적으로 대우조선해양 입찰 불참을 선언했다. 물론 컨소시엄도 자연스레 깨졌다.

물론 GS그룹 입장에선 이같은 컨소시엄 파기는 상당한 부담이다. 게다가 GS는 그룹 계열사인 GS칼텍스가 지난달 1000만명의 사상 최대의 고객정보유출 사건으로 기업 이미지가 크게 나빠진 상태였다. 이번 컨소시엄 파기에 따른 그룹 신뢰도 추락도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GS가 이같은 결정은 하게된 배경은 무엇보다 무리한 기업 인수전에 따른 자금 부담 때문이다. 최근 금융위기에 따른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도 고민이었다.

실제 임병용 GS홀딩스 부사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포스코와 모든 조건에서 합의했지만, 딱 한 가지 인수가격 때문에 협상이 결렬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격부문에서 포스코는 매우 공격적인 가격을 제시했고, GS는 합리적으로 공격적인 가격을 제시했지만, 가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포스코쪽에서 7조원대의 가격을 써냈고, GS쪽에선 5조원대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의 주가는 최근 들어 2만원 아래까지 추락해, 시가로 따지면 3조7000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얼마로 계산하느냐에 따라 인수가격이 결정된다.

그동안 업계에선 주가가 떨어져도, 대우조선의 몸값은 7조~8조원대로 거론돼 왔다. 시장가격보다 2~3배 비싸더라도 그만큼 값어치가 크다는 것이다.

포스코, 단독 재입찰 선언했지만 산 너머 산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전경(대우조선해양 제공)
▲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전경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전경(대우조선해양 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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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GS쪽에선 경영권 프리미엄이 너무 높아진 것에 대해 부담을 느꼈다. 인수 주체인 GS홀딩스가 지주회사인 데다 현금 동원력이 포스코만큼 풍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선진국 M&A 시장에서도 시장가치의 20~30% 수준을 프리미엄으로 인정한다고 강조해왔다. 결국 GS쪽에선 대우조선을 6조원이상 주고 사기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 입장에선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입찰 마감시각까지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일단 서류는 제 시각에 내야하지 않느냐는 항변이다.

포스코 고위 관계자는 "GS와 인수가격 차이가 생각보다 컸다"고 토로하면서, "그렇다고 이미 컨소시엄 구성을 발표한 상태였고, 마감시각에 맞춰 서류는 제출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단 서류를 제출한 이후에라도 GS쪽과 협상을 통해 가격 부문은 충분히 절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GS쪽에서 오히려 컨소시엄 파기를 선언하는 바람에…"라고 말끝을 흐렸다.

포스코는 14일 오전 긴급이사회를 열고, 대우조선 단독 재입찰을 발표했다. 하지만 포스코의 단독 재입찰이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기업 인수합병을 담당해 온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선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포스코가 단독 입찰로 바꿔야 하지만, 이미 본입찰 마감시간이 지나버린 상태다. 일단 단독 입찰로 변경이 불가능한 상태다.

또 하나는 현재 입찰제안 기준에, 입찰 후 제안 기준이 변경되는 것을 절대 불가하다고 돼 있다. 컨소시엄 구성 자체에 변경이 생긴 것은 이같은 기준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

게다가 포스코가 낸 입찰서 자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포스코가 컨소시엄의 한 축인 GS의 완전한 동의도 받지 않고 '컨소시엄' 이름으로 제안서를 냈기 때문이다. GS는 포스코 제안서 제출 후, 자신들이 써낸 인수가격이 아니라는 별도 서류를 제출했다.

당혹스러운 산업은행... 한화 "포스코 참여시키면 법적 수단 강구"

이 때문에 매각 주관사인 산업은행 스스로도 매우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자칫 포스코에 단독 재입찰 자격을 줄 경우, 적법성 논란과 함께 대형 민사소송 등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최근 파산한 미국 대형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 인수 추진 건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는데, 잘못하면 대우조선 매각 건으로 또 다시 구설수에 휘말릴수도 있다"면서 매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산업은행은 14일 현재 포스코의 단독 재입찰 자격 여부를 두고, 대형 법무법인에 법적 타당성 여부 등 유권해석에 대한 검토를 요청한 상태다. 조만간 이에 대한 결정을 내릴 예정이지만, 구체적인 날짜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GS의 돌발적인 컨소시엄 파기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쪽은 한화그룹. 그동안 인수 2순위 그룹으로 여겨졌던 한화 쪽은 포스코의 단독 재입찰 가능성 여부 등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는 이미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에서 인수 자체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

한화 고위 관계자는 "포스코-GS 컨소시엄 입찰과정에서 공정성 훼손 등 심각한 하자가 발생한 만큼, 이들 컨소시엄에 대한 입찰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 맞다"면서 "만약 산업은행 쪽에서 포스코의 단독 재입찰을 받아들일 경우 법적 소송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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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우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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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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