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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제외시키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소외됐다고 해서 일본 열도가 시끄럽다고 한다. 곧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에 돌입해야 하는 아소 다로 총리는 들끓는 비판여론에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졌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아소 총리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결정을 통보받은 시간은 11일 밤 11시30분경. 당시 한 지방도시를 방문, 청년회의소 간부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던 아소 총리는 급히 연락을 받고 옆방으로 자리를 옮겨 약 10분간 부시 대통령과 통화를 했다고 <요미우리>는 전하고 있다.

 

미국은 이에 앞서 공식발표 4시간 전인 오후 8시경 토머스 쉬퍼 주일대사가 일본 외무성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방침을 전하고 부시 대통령과 아소 총리간 통화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소 총리가 부시 대통령과 통화한 시간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테러지원국 해제 문서에 서명하고 3시간이 지난 뒤였으며, 공식발표를 불과 30분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공식발표가 나온 뒤 아소 총리는 "이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미국의 결정에 일정한 이해를 표시했다.

 

그러나 발표 직전 미국과의 '졸속협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짐짓 의연한 체 했던 아소 총리는 스타일을 구기게 됐다. 무엇보다도 대외관계에 있어서 속 시원한 강경발언으로 인기를 모아 총리에까지 오른 그로서는 이번 일로 심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야당과 언론들의 비판은 이번 조치에 대한 찬반을 떠나 '납치문제'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일본이 왜 결정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으로부터 완벽히 따돌림을 당한 "일본외교의 수치"라는 것이다.

 

'어정쩡한' 대북정책 언제까지 이어갈 건가

 

이번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기는 한국정부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소 총리는 공식발표 30분 전 부시 대통령의 전화라도 받았지만, 한미 간에는 그런 절차도 없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미 외교장관 간에 긴밀한 협의가 이뤄졌음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훨씬 전부터 협의가 이뤄지고 있어서 일본처럼 사전에 통보하거나 정상끼리 전화통화를 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간의 과정을 되짚어보면 속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은 것 같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차관보가 지난 3일 평양방문 후 (신고시설과 미신고시설의) '분리검증안'을 들고 서울에 들어왔을 때 6자회담 한국측 수석대표인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한미 외교장관, 더 나아가 정상간 논의를 할 필요성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최종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만큼 미국의 타협안이 한미 정부간 기존 '공감대'를 뛰어넘는 것이며, 그만큼 정부가 충격을 받았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북핵 문제에 대해서 지금까지 협상의 흐름과는 다소 차이가 나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쳐왔다. 특히 검증 문제에서는 '완전하고 정확한 검증'이라는 원칙론을 내세워왔다.

 

그러나 미국이 이번에 받아들인 '분리 검증안'은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잠정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밝혀온 대북정책의 기조에 비춰보면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김숙 본부장 입을 통해 "6자회담이 정상궤도로 복귀하고 궁극적으로 북한 핵 포기로 이어지는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한다"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그 동안 밝혀온 대북정책의 기조와 이번 조치에 대한 '환영' 입장 사이에 나타나는 모순이다. 좋게 보자면 이명박 정부 내에서 합리적 협상론자들이 힘을 얻어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이 흐름이 언제 다시 뒤집어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의 그때그때 다른 어정쩡한 대북 자세 때문에 한국은 국제적인 대북정책 결정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도 정부는 한미간 긴밀한 협의가 이뤄졌음을 강조하고 있지만, 어디에도 한국이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면서 상황을 견인하고 있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자기 입장이 분명하지 않으니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소외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이번 대응은 국내 보수진영으로부터는 '굴복'이라는 거센 반발을 사고, 진보진영으로부터는 '이 기회에 노선을 전환하라'는 조롱을 듣고 있다. 목표가 명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할 수 없는 어정쩡한 행보를 언제까지 계속할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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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이명박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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