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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기자의 선례를 따라 필자도 '프란치스꼬'라는 천주교 신자이며 가톨릭대학 신학부를 3년간 다닌 신부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았던 신학생이었고, 사촌형이 현직 신부임을 밝힌다.)

종교에 대한 문제가 다 그렇지만 대개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생각을 김동환 기자의 글을 읽는 내내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필자는 성서의 말씀 중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구절을 가장 좋아한다.

천주교는 하느님의 그 사랑을 전하고 증거하는 종교라고 정의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많은 것들을 놓치고 오해받는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조직되고 모인 그리고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미사를 올리는 곳이 성당이며 신자들의 모임인 교회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 기자는 '왜 파업노동자를 위한 명동성당은 당연하면서, 일반시민과 신자를 위한 명동성당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는지...' 라며 시각을 한 곳에 고정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을 말했지만 왜 노동자들이 신성한 구유에 오줌을 싸고 말았는지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노력은 없어 보인다.

그들의 주장을 지지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추운 날 고생하며 힘들게 파업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차 한 잔 건넸던들 그들이 그런 일을 했을까?

천주교 신자가 아닌 그들의 눈에는 그저 인형에 불과할 것인 아기 예수상에는 극진한 예를 표하면서 바로 옆에 '사람'이 추워 떨고 있는데 멸시하는 눈빛으로 거지 취급한다면 누군들 '확 싸질러' 버리고픈 유혹이 들지 않을까?

진정한 크리스찬이라면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을 이해하려 하고 뭔가 우리 태도에는 문제가 있지나 않았는지 반성하고 배려하는 게 마땅하고도 옳은 일이 아닐까?

차량 뒷 편에 '내 탓이오'라고 붙여 놓은 것은 이렇게 내가 조롱받고 오해받을 때라도 내 잘못을 살피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사랑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하자는 것이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가톨릭보다 노동운동이 더 변질되었다'고 지적하는 곳에서는 너무 심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자면 '모두가 다 변했다'고 하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

하나만 예로 들어보자.
한겨레 신문이 창간되던 날 '평화 신문'이 창간되었고 몇 년 후 '평화 방송'이 개국했다.

신영복 선생의 옥중 서간에서 집자한 글씨로 새긴 평화 신문의 제호는 창간 정신을 잘 드러내는 듯 했고 몇 면되지는 않았지만 이 땅에 평화와 희망을 가져다 줄 만한 힘을 가진 듯 했다. 왜냐하면 그 신문과 방송은 온 천주교 신자들의 성금으로 설립하였고 그 성금을 모집할 때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소리를 내겠노라고 다짐 다짐하면서 세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90년대가 채 오기 전에 그 신문은 타블로이드 판 천주교 전문 신문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그 노동자들 때문이었다.

우리는 상식으로 경영과 편집은 독립되어야 한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편집권을 독립해달라고 요구했고 사장신부를 비롯한 천주교 장상들은 이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 끝은 처참했다.

'가톨릭 신문'이 이미 있는 상태에서 또 하나의 천주교 전문 신문을 내겠다고 거두어 간 성금도 아니면서 성직자 마음대로 용도 변경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노동자에게만 변절했다고 간단하게 밀어 부칠만한 자격이 천주교에 과연 있는지 의심스럽다.

김 기자는 '제발 천주교에 대해서 알고 이야기하자'며 천주교 성직자 수도자들에 대한 오해에 대해 말하면서 '가톨릭의 성직자는 정결, 순명, 청빈 3가지 서약을 하고'라고 했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가톨릭의 성직자는 정결과 순명의 서약은 하지만 청빈의 서원은 하지 않는다. 정확히 하자면 가톨릭의 수도자들이 정결, 순명, 청빈의 서약을 한다.

여기서 성직자라 함은 일반적으로 본당에서 사목하는 교구사제와 주교들이며 수도자라 함은 수사, 수사신부, 수녀를 말한다. 그리고 성직자의 월급이 일반인에게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적다고 하셨지만 실제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성직자의 월급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기 때문에 갑근세(요즘은 용어가 달라지긴 했지만...)를 내지 않는다. 그래서 용어도 월급이 아니고 성무 활동비라고 하며 수당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지급된다.

그러나 성직자의 주 수입원은 성무 활동비가 아니다. 사실상의 주 수입원은 미사를 드릴 때마다 받는 미사예물이다. 미사 예물은 미사 1대 당 대개 5만원이상인데 많게는 몇 백 만원이 되기도 한다. 그런 미사예물이 미사당 몇 건 씩 혹은 주일 미사의 경우 큰 본당은 몇 십건이 되기도 하니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거의 모든 미사예물을 미사를 집전한 신부가 갖고 나머지를 교구 주교에게 보냈지만 요즘은 너무 많이 가져간다는 비판으로 하루 중 받는 미사예물 중 1대분만 집전한 신부가 갖고 나머지 전부를 주교에게 보내는 교구가 많아졌다.

그러나 서울대교구의 경우 평일 미사에도 몇 건씩의 미사예물이 바쳐지는 게 보통이니 하루 5만원씩이라고 쳐도 한 달이면 150만원이 된다.

거기에 성무 활동비와 수당을 합치면 200만원은 훌쩍 넘는다. 딸린 가족이 없는 신부에게 이 정도 돈이 '일반 사람의 월급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적은 것'은 절대 아닌 것이다.

물론 천주교의 성직자는 유가증권 및 부동산의 소유 금지 조항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금의 경우 청빈하게 살 것을 권유받는 정도 인 것도 사실이다.

수도자는 조금 달라서 개인 소유를 금하고 모두 공동 소유를 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용돈'을 타서 쓴다. 그래서 김 기자의 처형과 이모는 3만원 정도를 받으시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수도회에 요청해서 그 때 그때 쓰실 수 있다. 물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기본적으로 제공된다. 다만 수도자는 말 그대로 수도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특별히 '청빈'을 서약하신 분이기 때문에 돈 문제에 있어서 부끄럽지 않으신 분들이 많다.

다만 오해를 없애기 위해 사족을 붙이자면 가톨릭 성직자들이 대부분 부유하지 않다. 그저 돈 문제로 신앙 생활과 성직 생활에 불편을 겪지 않을 정도라는 것을 밝힌다.

말이 길어 졌지만 김 기자를 비롯해 명동성당 문제로 마음이 불편하신 모든 천주교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조금만 더 여유롭게 생각해 주시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내 탓이오" 정신으로 돌아가 주시라고 간곡히 부탁 드린다.

물론 이 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도 다시 한 번 회개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 천주교의 정신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 무력하고 한없는 사랑으로 돌아가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에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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