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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위원장 차수련) 가톨릭중앙의료원의 파업이 다섯 달째를 맞고 있는 가운데 장기파업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며 명동성당에서 15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차수련 위원장 등 30여명의 병원 노동자에 대하여 성당측이 전기 공급을 끊고 화장실 사용을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고 있다.

▲ 지난달 25일부터 명동성당에서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30여명의 무기한 단식농성과 함께 70여명의 노숙 천막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 석희열
명동성당측은 또 지난달 12일 이후 6차례에 걸쳐 천주교 서울대교구 백남용 주임신부 명의로 보낸 공문을 통해 노동자들의 노숙농성에 대해 다른 이의 아픔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적인 폭력이라고 규정하고 △성당 방문객들의 통행 불편 △시위 소음으로 인한 미사 방해 △농성천막 설치와 숙식으로 인한 업무 차질 등을 이유로 바깥으로 나가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 지난달 25일 백남용 주임신부 명의로 발송된 제4차 퇴거요구서..이후 서울대교구는 9월30일과 지난 8일에도 같은 내용의 퇴거요구서를 보건의료노조에 전달했다
ⓒ 석희열
보건의료노조 이주호 정책국장은 "경찰의 폭력침탈에 쫓겨 자신의 일터를 버리고 화해와 사랑이라는 가톨릭의 양심에 호소하기 위해 들어온 노동자들에게 전기를 끊고 화장실문까지 잠그며 밖으로 나가라고 내치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가톨릭정신이냐"며 "그 동안 단식농성을 진행하던 여성조합원 6명이 탈진해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성당측에선 얼굴 한번 내민 적이 없다"고 흥분했다.

천주교 신자라고 밝힌 회사원 김모씨는 "병원파업에 대해서는 언론 등을 통해 알고 있었으며 노사가 평화적으로 잘 해결되길 바랬다"면서 "성당측의 이번 조치에 실망스럽다. 이제 찬바람 불고 찬이슬이 내릴텐데 바깥에서 노숙농성을 하는 사람들이 걱정스럽다"며 안타까워했다.

대학생 황병주씨도 "성당측의 행동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다"며 "이같은 일이 명동성당측에 의해 반복되면 그 동안 쌓아왔던 한국 천주교의 명예를 더럽히고 심각하게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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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은 ' 농성장 ' 이 아니다

▲ 9일 오전에도 경찰은 외부인의 출입을 검문하며 강남성모병원 정문 앞을 지키고 있다
ⓒ 석희열
회사원 성수은(25)씨는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문을 연 뒤 "신부들은 입만 열면 소외받고 약한 자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하면서 정작 약자인 노동자들을 내치려하다니 말이 되느냐"며 "일부 가톨릭 사제들은 '낮은 곳에 임하라'고 가르치는 하느님의 율법을 잊은 것같다"고 분노했다.

천주교 신자인 서용숙(38)씨는 "가톨릭과 성직자들이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성직자들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가톨릭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허탈해했다.

강남성모병원에서 3년간 근무했다는 한 간호사는 "얼마전 노숙 농성을 하던 조합원들이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가톨릭회관 처마밑으로 잠시 대피하려고 했으나 그마저 가톨릭측에선 허락하지 않았다"면서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려고 한다"며 울먹였다.

▲ 외로움과 추위 속에서 15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보건의료노조원들
ⓒ 석희열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지난달 25일부터 15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 여성 노조원(25)은 "우리가 뭘 그리 잘못했길래 공권력을 불러들여 잡아넣으라고 했는지 병원측에 묻고 싶다"면서 "이번 파업에 참여하면서 신부와 수녀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실망하고 충격을 받았다"며 "하룻밤만 서로 얘기를 해보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데도 끝까지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병원측을 이해할 수 없다"고 병원측의 태도를 아쉬워했다.

가톨릭에 대한 일반 시민은 물론 신자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천주교 서울대교구 이준성 부주임신부는 "명동성당에서는 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관리를 해야하는데 일손이 턱없이 모자란다"면서 "밤에는 되도록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상황이 발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밤 9시30분 이후엔 가로등을 끄고 화장실 사용을 제한해왔다"며 "내부치안 등의 이유로 관례적으로 그래왔다"고 해명했다.

▲ 천주교 서울대교구청
ⓒ 석희열
이 신부는 이어 "지난 2000년 말 한국통신노조와 이후 발전노조의 천막농성을 계기로 성당측에서는 외부인에게 어떠한 편의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천명해왔고 그 원칙이 지금도 지켜지고 있을 뿐 보건의료노조에 대해 특별히 차별적으로 대우한 경우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사람들이 명동성당을 민주화의 성지라고 말하지만 정확하게는 신앙의 성지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말하고 보건의료노조의 천막농성에 대해 "어쨌든 수배자들이 있는데 강제로 내쫓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면서도 "그러나 이것은 묵인해주는 것이지 용인해주는 것은 아니다"며 장기농성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 푸른볕이 내리쬐는 8일 오전 강남성모정문 앞에서 근무복을 입은 간호사들이 십자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노조는 8일 오전 강남성모병원 정문 앞에서 근무복을 입은 간호사들이 고난의 십자가를 진 병원노동자를 형상화한 퍼포먼스 시위를 벌여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9일 오전에는 서울대교구 정진석 대주교 앞으로 편지전달식을 진행했으며 저녁 7시부터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노동탄압 중단과 병원파업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문화제를 개최한다.

교황 레오 13세와 요한바오르 2세의 사회회칙에 따른 가톨릭 노동헌장에는 "노조활동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자연적 권리이며 노동은 자본보다 우위에 있다"고 노동의 순결성를 강조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한국에서 행해지는 노조탄압이 가톨릭정신에 위배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가톨릭 신자 10명을 선발하여 14일 오후 바티칸 교황청 면담을 통해 한국 천주교의 자성과 가톨릭병원 장기 파업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호소하기 위해 해외원정투쟁에 나설 예정이다.

▲ 9월11일 새벽 경찰병력이 투입되자 병원 성전으로 달려가 십자가 밑에서 서로 팔짱을 낀 채 공권력을 향해 울부짖고 있는 여성 조합원들
ⓒ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노조는 또 14일부터 5일간 열리는 천주교 주교단 회의에 맞춰 16일 산별 연대 총파업을 조직하고 20일에는 민주노총과 함께 전국 1200개 성당에서 동시 선전전을 진행한 후 교수, 변호사 등 지식인 100인 선언과 가톨릭 평신도 1천인 선언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봄에 시작된 병원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병원노조에 대한 각계의 연대와 지지방문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 "어린 양들을 구하소서!"
하느님의 성전에까지 공권력이 들어오자 한 여성 조합원이 십자가에 매달리며 절규하고 있다
ⓒ 보건의료노조
지난달 30일 명동성당 가톨릭회관 내의 가톨릭농민회와 가톨릭학생회, 인권위원회 등이 농성현장을 지지방문한데 이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치과의사회, 청년한의사회, 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 경희의료원지부 가족협의회,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다함께, 전국학생협의회, 전국학생연대회의, 서울대총학생회, 성대총학생회, 성공회대총학생회 등이 매일 또는 하루 간격으로 농성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또 외신 등을 통해 한국의 병원파업사태가 알려지면서 국제연대단체들의 지지방문도 이어질 전망이다. 다음달 초 PSI(국제공공노련) 북유럽노조와 일본 가맹노조 등이 보건의료노조를 방문하여 지지성명을 발표하고 다음달 10일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많은 국민들은 지난달 11일 새벽 강남성모병원에 대규모 경찰병력을 투입하여 병원 1층에서 농성중이던 500여 여성 노조원들을 강제로 끌어내고 마침내 성전의 십자가를 부여잡고 절규하며 울부짖던 하느님의 어린 양들을 공권력의 이름으로 포박하던 그날의 전율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비슷한 요구를 내걸고 함께 임단협을 진행한 전국 100여개 병원들이 모두 원만하게 타결되었는데 가톨릭중앙의료원과 목포가톨릭병원 등 유독 가톨릭 병원에서만 해결되지 않고 장기파업으로 치닫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묻고 싶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 물음에 이제 가톨릭이 답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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