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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감은 '누렁이'가 몹시도 미워졌다. 주인도 몰라보고 두 눈 부릅뜨고 컹컹컹 짖어대다가는 곧잘 바지가랑이를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가끔씩 집을 못 찾아서 건넛집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김영감은 이런 누렁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옆 집 송 영감 보기에 민망해서 얼굴을 들지 못할 지경이었다. 송 영감 집 '쫑'은 등허리 높고 늘씬한 다리로 보아 꽤나 이름 있는 족속인 것 같았고, 앙칼지기는 하늘을 찌를 듯해서 낯모르는 사람이 오면 동네가 찢어질 듯 짖어댔기 때문이었다.

그런 쫑에 비해 누렁이는 김 영감 체면을 마른걸레 구겨지듯 툭툭 부러지게 구겨놓고 있었다. 하는 짓거리로 봐서 개장사에게 후딱 넘겨버리려 하다가도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들며 그만두기를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누렁이가 김 영감 집에서 한솥밥을 먹기 시작한 지 무려 삼십 년이 다 돼가기 때문이다. 막내딸이 다섯 살 때 강아지 사달라고 몇 날을 보채는 통에 옆 동네에서 한 마리 얻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막내딸이 벌써 서른여섯이니 누렁이 나이도 한 삼십 살 쯤 돼 가는가 싶다.

그런데 요즘 들어 누렁이가 이상하긴 참말로 이상했다. 음식 먹는 것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움직임도 점점 늘어져만 가서 어느 한 장소에서 하루 종일 버티고 앉아 있는 때가 많았다. 삼십 년이나 살았으니 너무 늙은 탓이겠거니 했지 별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렇지 키워준 은혜도 몰라보고 주인을 물어뜯기까지 하다니 참말로 괘씸한 짐승인 것은 사실이었다. 김 영감은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도 누렁이와의 옛정을 생각해서 꾹꾹 참고 며칠을 버티고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누렁이는 세상에 둘도 없는 충견이란 소리를 들었다. 김 영감이 대문 밖만 나서기만 해도 누렁이는 윤기 반지르한 털을 비벼대며 김 영감 주위를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김 영감이 동네 마실을 돌 때면 늘상 앞서 가면서 안내를 하였다. 사람들은 그럴 때마다 김영감과 누렁이가 서로 텔레파시가 통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마실 나가서는 김 영감이 던져주는 음식물 외에는 절대로 입에 대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아무리 맛있는 고기를 던져주어도 김 영감 허락 없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렇게 충견이었던 누렁이의 요즘 행동에 김 영감은 심한 배신감마저 들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김 영감은 도시 사는 딸손자 돌잔치 때문에 한 며칠 집을 비워야 하는 일이 생겼다. 평소 같았으면 집을 비우는 일이 생기면 동네 사람들에게 누렁이 밥 챙겨 먹이는 일을 신신당부하고 떠났었다.

그러나 요번에는 무슨 일인지 몰라도 그 일을 깜박 잊어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누렁이가 미워져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알아서 챙겨 먹겠지 하는 생각이 컸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떠난 김 영감은 늦게 본 딸손주의 방긋 웃는 재롱에 그만 며칠을 더 묵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누렁이의 안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있었다. 눈에 밟혀도 안 아플 딸손주의 재롱을 뒤로 하고 집에 내려가는 버스에 앉았을 때서야 불현듯 누렁이 생각이 났다.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하였지만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큰 밥통에 사료도 어느 정도 있었던 같으니 설마 굶어죽지는 않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금세 태풍으로 쓰러졌던 벼 일으킬 생각에 골몰하고 말았다.

김 영감은 동구 밖에 들어서면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예전 같으면 벌써 누렁이가 반가운 목청을 돋우면서 달려와 온몸을 비벼대며 난리부르스를 출 텐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내 누렁이의 미운 짓거리를 떠올리며 혀를 끌끌 차며 집으로 향했다.

대문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저만치 평상 아래 누워있는 누렁이가 보였다. 김 영감은 순간 한숨이 휴우 새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겉으로는 누렁이생각을 저버린 듯 하였으나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누렁이 생각뿐이었나 보다. 김 영감은 서둘러 달려가서 누렁이를 불렀다.

"누렁아, 누렁아, 잘 놀았냐? 밥은 굶지 않았냐?"
김 영감은 누렁이 잔등을 쓰다듬으며 밥그릇을 힐끗 훔쳐보았는데 밥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이 녀석이 또 주인을 몰라보네? 오늘은 아예 아는 체를 하지 않네그랴... 누렁아!"
김 영감이 재차 돌려세우자 그만 힘없이 고개가 처지는 차가운 누렁이의 몸체가 느껴졌다.

"누렁아! 누렁아!"
김 영감이 아무리 흔들어 불러보아도 누렁이의 반쯤 감겨진 눈은 치켜떠지지 않았다. 언제인지 몰라도 누렁이는 마루 밑에 있던 김 영감의 고무신 한 켤레를 목덜미에 깔아놓고 그 위에서 죽어 있었던 것이다.

다 닳아진 고무신을 물어다가 깔고, 주인의 체취를 마지막으로 느끼며 죽어갔던 누렁이를 생각하니 김 영감의 마른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돌고 있었다.

누렁이는 한 며칠 아프게, 아프게 김 영감과의 이별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일 년 전인 걸로 기억합니다. 지역신문에다 삼십 년을 주인과 함께 살고 있는 '누렁이'얘기를 기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는 뒤 꼬박 일 년이 지났는데 누렁이가 그렇게 죽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누렁이 얘기를 어느 수의사에게 물어보았더니, 동물도 치매에 걸린다고 하더군요. 아마 누렁이도 치매로 그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루종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겨우 내린 결론으로 누렁이가 치매에 걸린 게 아니라 김 영감과의 이별연습을 그렇게 아프게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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