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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달빛이 시큰거릴 때서야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셨다. 그러나 그날따라 아버지의 모습은 평소와는 전혀 달랐다. 삐걱거리는 늙은 자전거의 바큇살이 휘었는지, 아버지의 걸음이 휘청거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전거만은 꼬박 챙겨 들어오시던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자전거도 없이 아주 쩡쩡하면서도 다급하게 들어오셨다. 늘상 들리던 딸그락거리는 빈 도시락 던지는 소리도 없이 마루에 털퍼덕 주저앉는 것이었다.

나와 동생은 아버지에게 그 어떤 다급한 사건이 생겼는지는 안중에도 없고, 늘상 그랬듯이 라면땅이나 비닐봉지에 꼭꼭 싼 사탕봉지가 없어서 무척 서운했다. 여태까지 선잠 붙들며 끙끙거린 고생이 단번에 무너져버린 느낌이었다.

식은땀마저 흘리면서 무언가에 홀린 듯 맥이 빠져 있는 아버지를 보고 어머니는 다그쳐 물었다.
"아니, 여보 무슨 일에요? 도대체 무슨 일을 당했는데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거예요?"
나또한 질세라 빈손으로 오신 아버지께 대들 듯 투정을 부렸다.
"아빠, 왜 오늘은 사탕 안 사왔어? 동생하고 사이좋게 놀면 사탕 사온다고 했잖아."

이미 예상했던 물음인 듯이 아버지는 숨도 고르지 않은 채 말씀 하셨다.
"아이고, 요 녀석들아! 하마터면 아버지가 도깨비에게 잡혀갈 뻔하였다. 아이고, 무서워라."
"네에? 도깨비요? 엄마야..."
엄마 뒤춤 속으로 숨은 나는 아버지의 입과 대문 밖을 번갈아보며 달달 떨고 있었다.

"아 글쎄 요 녀석들 삶아 줄려고 돼지고기 한 근 떠 오는데 도깨비가 계속 따라오지 뭐야."
엄마 뒤춤에서 벌벌 떨면서도 아버지의 다음 이야기가 몹시도 궁금해진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아빠, 그래서 도깨비는 어떻게 했어? 그리고 돼지고기는 어디다 둔 거야?"
"응, 도깨비에게 한 점 씩, 한 점 씩 잘라 내주고 왔지. 그래야 아빠 잡아가지 않을 거 아냐?"

그때 어머니의 어깨가 약간 들썩거리는가 싶더니 어머니도 한 마디 하셨다.
"아니 그럼, 고기는 그렇다치고 그 바지는 왜 그렇게 입었어요?"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바지가 거의 다 벗겨지듯 골반에 걸쳐 있었다.

"아, 그런데 말야, 동구 밖 쌍둥이 나무까지 오자 고기가 다 떨어져 버린 거야. 그때까지 도깨비가 가지 않기에 도깨비하고 한 판 씨름을 걸어버렸어."
그때까지 무서워 벌벌 떨던 나는 잽싸게 엄마 앞으로 나서면서 물었다.

"우와, 그럼 아빠하고 도깨비하고 진짜 씨름 한 거야? 그럼 누가 이겼어? 아빠?... 도깨비?"
"하하하....아빠가 당연히 이겼지. 아빠 허리띠로 말야 그 쌍둥이 나무에 도깨비를 묶어놓고 왔다."
"우와, 우리 아빠가 최고다. 이야!"
"여보, 내일 아침 일찍 동구 밖에 나가보구려... 도깨비도 보고 고기도 주워 오구려."
빙그레 미소만 짓던 어머니가 잡아 이끌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무용담을 듣느라 새벽 찬 서리 맞도록 날을 샐 뻔하였다.

날이 새자마자 도깨비 잡으러 가자고 어머니를 졸랐다. 성화에 못 이긴 어머니도 작은 양푼 하나 들고 따라 나섰다. 그러나 어머니 손을 잡고 동구 밖 쌍둥이 나무에 다다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쌍둥이 나무에는 닳고 말라비틀어진 빗자루가 아버지 허리띠에 졸라매져 있었다.
"에게게... 엄마 이 다 썩은 빗자루가 도깨비야?"
"응 원래 도깨비는 낮에는 이렇게 빗자루나 삽자루로 변한단다. 무섭다야 얼른 고기나 주워 가자."

약간은 싱거웠지만 그래도 철석같이 그 도깨비가 아침에 빗자루로 변신한 거라고 믿었다. 동네를 굽어 도는 길 내내 한 발자국마다 돼지고기 살점이 흰 모래와 뒹굴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고기들을 양푼에 하나씩 주워 담으며 아버지의 용감함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하셨다.

그날 이후부터 아버지는 우리 동네 어느 누구 아버지보다도 훌륭하고 용감한 아버지이셨다. 동일이의 면서기 아버지보다도, 인배의 선생님 아버지보다도, 세원이의 부자 아버지보다도 염전에 소금 캐던 우리 아버지가 몇 천 배 더 훌륭하고 용감한 아버지로 자리매김하였다.

살에 닿는 시린 느낌에 반쯤 열린 창문을 닫다가 불현듯 삼십 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팽팽함을 잃어가는 달을 보다가 주름 잡힌 아버지의 얼굴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게 없어서 오로지 구릿빛 장딴지 힘 하나로 버티신 아버지였지만 우리에게는 늘상 이렇게 동화 하나씩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만들어주신 동화는 우리들 가슴에 작은 씨앗 하나로 심어졌고, 그 씨앗이 자라듯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도 자라났었다.

모처럼만에 떠올려본 어릴 적 기억이 '하~'하고 웃음 베어물게 만들었다. 창문을 닫고 나자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학교생활에다, 학원생활에다 지칠 대로 지쳐 쓰러져 자고 있는 우리 아이들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보아야만 했다.

경쟁만을 가르치고 그 경쟁 속에서 싸워 이기는 방법만을 가르치는 것 같은 현실 속에서 나는 우리 아이들 눈에 어떤 아버지로 비춰지고 있을까?

혹시나 다른 아버지보다 배운 게 덜하고, 다른 아버지보다 부자이거나 명예가 높지 않아서 짠하고 부끄러운 아버지로 비춰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아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아침 아버지의 늙은 자전거와 딸그락거리는 도시락은 초가집 뒤뜰에서 보았다. 늘상 사오시던 사탕을 못사와 미안했던지 우리들에게 기막힌 연기를 하셨단다. 물론 모래밭에서 뒹굴던 돼지고기는 그날 아침에 잘 씻겨져 김치찌개에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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