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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소의 끝 방향쯤에서 통통통 발돋음질을 하고 있어야 할 햇덩이가 도무지 꼼짝하지 않고 있습니다. 매운 황사바람의 혀끝이 고샅부터 샅샅이 핥아가며 희뿌옇게 색칠을 해놓은 까닭입니다.

끄트머리에 기울 듯 자리잡은 남녘에도 이렇게 황사가 심한데 하늘 아래 한복판 도회지는 오죽할라구요? 아마도 쿨럭이다 못해 심한 신열을 앓고 드러누워버렸을 게 뻔한 노릇입니다.

이런 날이면 그저 아랫목에 드러누워 심심풀이 잡지라도 뒤적거리면 좋을 텐데 어디 세상살이가 그렇게 나사풀린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두겠습니까?

무슨 엉뚱한 생각에서인지 몰라도 오늘따라 밑도 끝도 없이 게으름을 피워봅니다. 두툼한 베개에 머리를 뉘고 스르르 잠이라도 들라치면 환장한 봄날의 오르가즘에 히죽히죽 웃음을 베어물기 바쁩니다.

그렇지만 나의 이러한 소소한 일상에는 항상 제동이 걸리고 맙니다. 불한당처럼 들이닥친 노랫가락은 스르르 찾아들었던 봄꿈마저 화들짝 깨어놓고 맙니다. 아주 고약한 심술을 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낙도옹강 ~ 강바아라암에 ~ 치마폭을......'
윤 씨 부부가 행상 리어카를 탈탈탈 끌면서 읍내에 등장하는 소리입니다. 트레이드마크인 '차차차 메들리'를 조그만 소형 카세트에 틀어제끼며 그들의 등장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윤 씨 부부의 등장은 늘상 이렇게 요란합니다. 아직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지 않고 미적미적 방구석을 뒹굴고 있는 사람들을 화들짝 깨워놓기 일쑤입니다. 더러는 짜증스런 성화를 내기도 하지만 마음씨 착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 필요한 잡동사니가 있나 없나 사방을 둘러보곤 합니다. 그 음악소리는 필요한 물건들을 사라는 옹색한 외침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달콤한 아침잠을 설치게 하는 윤 씨 부부가 얄밉지 않는 이유는 정작 따로 있습니다. 그 이유가 그들 부부의 궁색한 살림살이를 측은하게 여기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바로 반쪽 사람들인 윤 씨 부부가 엮어가는 사랑이 곁에서 보기에 목울대가 시리도록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반쪽 사랑이 합쳐 온전한 사랑이 되는 것을 눈으로 마음으로 배워가고 있는 이유에서이겠지요.

윤 씨 부부가 이렇게 행상 리어카를 끌고 생계를 꾸리기 시작한 지도 꽤나 오래 되었습니다. 남편은 열일곱 청년시절부터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검은 색 안경 뒤로 핼쓱한 두 눈이 여간 안쓰럽기 그지없습니다.

아내는 뇌성마비를 앓았던 탓에 몸의 반쪽이 불편한 것은 둘째치고 한 눈마저 뜨지 못합니다. 이렇게 반쪽인 사람들이 서로 하나가 되면서부터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처럼 행상을 시작한 것입니다.

조그만 리어카에 잡화 품목은 왜 그리도 많고 무겁습니까? 가끔씩 아내가 힘든 듯 끙끙 앓을 때면 윤 씨는 아픈 팔 다리를 조물조물 주무르면서 호주머니에 꼭꼭 아껴두었던 사탕 하나 까먹이면서 위로까지 합니다.

아내 또한 윤 씨의 보이지 않는 눈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세상의 색깔들과 모양들을 시시콜콜 설명해주곤 합니다. 남편과 하는 그런 잡다한 대화들이 조금도 귀찮거나 우습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신기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윤 씨는 다섯 살 소년처럼 천진난만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윤 씨는 아내가 잠시라도 쉴라치면 여지없이 리어카를 빼앗아 끌고 읍내 곳곳을 그림 그리듯 더듬기 시작합니다. 보이지 않는 물품인데도 아내로부터 설명을 어찌나 많이 들었던지 달달달 외우고도 남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신기할 따름인지 잘 진열된 상점보다는 윤 씨의 초라하지만 정감어린 행상을 더 좋아하고 애써 찾아주기까지 합니다.

어느 한 날, 윤 씨가 1천 원짜리 고무장갑 하나 팔았나 봅니다. 그런데 손님이 장난삼아 1천 원을 주면서 1만 원짜리라 했나 봅니다. 참말로 몹쓸 사람입니다. 그날따라 윤 씨도 무엇에 씌었는지 그만 1천 원짜리를 1만 원짜리로 착각해서 받고는 9천 원을 거슬러주고 왔습니다.

아내는 조용히 돈을 받아들고서는 연신 고생했다는 말만 할 뿐이었습니다. 잘못 거슬러준 돈 9천 원이 아까운 나머지 그 자리에서 핀잔을 주었더라면 윤 씨는 또 다시 보이지 않는 상처 하나가 아프게 곪아갈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내는 아픈 상처를 다독여주고 배려해주는 사랑만이 동전 한 닢 공짜로 생기지 않는 세상을 버틸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는지도 모르지요.

지는 해가 산마루에서 한숨 돌리는 저녁때면 늘상 틀었던 '차차차 메들리'의 볼륨은 커지고 윤 씨 부부도 집으로 향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또 다른 진풍경 앞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윤 씨가 리어카를 끌고, 아내는 리어카 뒤에 마련된 작은 의자에 앉아 남편의 밝은 두 눈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읍내를 휘젓고 다녔을 아내의 불편한 다리를 생각해서 리어카 앞에 작은 간이 의자를 만든 윤 씨의 배려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신기하게도 읍내의 자동차도 사람들도 모두 다 자리를 내주고 비켜줍니다. 윤 씨 부부의 구불구불하고, 느리고, 아름다운 퇴근길을 다그치기 싫어서입니다.

이렇게 읍내 사람들은 이들 반쪽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 앞에서 지는 노을처럼 가슴이 뭉클하게 물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 어쩌다가 윤 씨 부부의 얘기까지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아마도 그들 부부의 '차차차 메들리'를 불한당 운운하며 성가셔했던 내 못난 성미를 변명하다보니 여기까지 흘러왔나 봅니다.

앞만 보고 뒤돌아보지 못하고 사는 도회지 사람들이야 이런 윤 씨 부부의 퇴근길을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먼 세상의 동화에서나 나옴직한 이야기로 들릴 것입니다.

사랑의 기쁨보다는 헤어짐의 생채기들이 커지는 세상은 얼마나 쓸쓸한지 모릅니다. 누런 혀끝으로 샅샅이 핥고 오는 황사로 인해 온 세상이 쿨럭이듯이, 이별의 생채기들만 껴안고 사는 반쪽 사람들 또한 쿨럭이며 심한 몸살을 앓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들 윤 씨 부부의 단편적인 이야기가 그냥 씨익 한 번 웃고 넘어갈 법도 하지만 곰곰이 곱씹어보아야할 부분도 있습니다.

한번쯤 이들 윤 씨 부부처럼 한 눈을 감고 남편을 바라보거나, 두 눈을 감고 깜깜한 세상에서 아내를 어루만져 보았으면 합니다. 벌겋게 눈 뜨고 있었을 때 보지 못했던 숨겨진 사랑들이 점차 환해져옴을 느낄 것입니다.

어쩌면 두 사람이 도꼬마리 풀씨처럼 찰싹 달라붙곤 했던 사랑의 씨앗들도 보일 것이고, 허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새순 같은 사랑스러움도 새록새록 생겨날 수도 있겠습니다.

'차차차 메들리'로 인해 달콤한 봄꿈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지만 윤 씨 부부 이야기를 꺼낸 일은 참말로 잘한 것 같습니다. 팔 다리 육신이 온전한 내가 반 쪽 사람들인 윤 씨 부부의 온전한 마음을 닮아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환장하도록 환한 봄날에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모난 사랑이 아니라, 아픈 마음 구석구석 어루만져 주는 둥근 사랑으로 가득해지길 빌어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BYC 사외보 (5,6월호) 책자에 기고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보지 못했던 오마이뉴스 가족들을 위해 다시 올려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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