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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의 보잘 것 없고 힘아리 없는 글들을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고 생각하면서부터 잔병치레하듯 주눅이 들기 시작하였다. 어쩌다 누군가가 나의 글들에 대해서 과분한 칭찬이라도 할라치면 새빨간 얼굴로 볕 안드는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어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들판에 흔히 밟히는 삐비꽃 같은 글이 어느 누군가의 가슴에는 환한 등잔불 하나 켤 수 있는 심지로 돋아난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잡지에서 원고청탁이 왔었는데 막상 무게를 잡고 쓸 내용이 없었다. 고민고민하다 뜻하지 않는 불화로 이혼하게 된 친구의 이야기를 보내 주었다. 그것도 무슨 배짱이었는지 몰라도 실명으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일들이 벌어졌다. 언 땅이 풀리면서 쏟아내는 기쁨에 찬 아우성처럼 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이유인즉 그 잡지를 우연찮게 친구의 헤어진 아내가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정말 거짓말처럼 서로에게 달라붙어 있던 검은 이끼 같은 감정들을 떼어내주며 다시 새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바로 눈물젖어 고장난 핸드폰 때문에.

눈물젖은 핸드폰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날 따라 유난히도 명수의 핸드폰이 성가시게 울어댔다. '삐리리리~~ 삐리리리~~' 무슨 말인가를 막 시작할라치면 꼭꼭 울어대는 핸드폰이 몹시도 얄미웠다. 서울에서 오랜만에 내려온 친구와 소주 한 잔 맛나게 마시려는데 왠 전화가 그렇게 자주 오는지. 그럴 땐 세상과의 소통은 모조리 끊어버리고 오로지 술을 빌어 녀석과의 우정에 흠뻑 젖어들고 싶은데 말이다.

명수의 딸 예원이의 목소리가 수화기 밖으로 퍼져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이 벌써 그렇게 컸구나. 엄마와는 헤어지고 아빠는 서울로 직장따라 간지라 달랑 할머니에게 맡겨졌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쭈뼛쭈뼛 바지가랑이 붙잡고 늘어지곤 하던 녀석이 쫑알거리며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단다. 명수가 예원이 엄마와 헤어진 지가 벌써 두 해가 넘어갔는데 친구의 아픔을 지나치듯 바라만 보고 있었으니 나 또한 참말로 무심한 친구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몰라도 통화가 자꾸만 끊기는가 싶더니 몇 번이고 다시 통화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결국 지직거리는 전화기를 바닥에 놓고서 무심코 던진 명수의 말에 찡하게 흘린 눈물보다도 훨씬 더 쓰라린 소주잔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예원이가 말이야, 그 어린 것이 벌써부터 눈칫밥을 먹고 있나봐. 할머니로부터 제 엄마에 대한 눈칫밥을 얼마나 먹었는지 제 엄마 보고 싶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를 않는 거야."

"그 대신에 제 엄마와 같이 갔었던 놀이공원 이야기만 한없이 하는 거야. 그것도 제 엄마랑 함께 했던 일들은 한 박자 쉬어가듯 띄엄띄엄 하면서도 이어지는 기억들을 쉴 새 없이 쏟아놓는 거야."

"나중에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더니 예원이가 나하고 통화를 하지 않는 날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더라는 거야. 나는 그것도 모르고 신세타령이나 하면서 술이나 퍼마시고 있었으니..."

"못난 아빠 때문에 예원이에게 씻기지 않는 상처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줄줄줄 흘러 내리더라고. 차마 전화를 끊지도 못했기에 전화기로 눈물이 흘러들어갔는가봐. 그때부터 전화기가 이렇게 말썽을 부리네. 허허허."

텅 빈 웃음 끝에 명수의 눈에는 축축하게 눈물빛깔이 배어나고 있었다. 도깨비바늘처럼 찰싹 달라붙어다니던 녀석이 오죽이나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그리웠으면 저렇게 전화통을 붙잡고 아빠 목울대를 젖게 만들었을까.

예원이는 또 다시 훌쩍 떠나버릴 것 같은 아빠가 못미더워 쉴 새 없이 전화를 하였다. 더 이상 술은 마시지 않았다. 예원이의 동그랗고 여린 품에 보고 싶은 아빠를 빨리 돌려보내주어야 하였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 내내 엄마 아빠의 따뜻한 살갗을 만지고 부비기라도 하는 듯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예원이의 짠한 모습이 슬라이드 필름처럼 찰칵찰칵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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