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스틸컷

▲ 개구리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먹는 것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음식이 땅으로부터 나온다. 다시 그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농업이다. 땅에 식물을 심고 길러 수확하여 거두는 일, 일용할 양식을 얻기까지 거쳐야 하는 일을 우리는 농사라 부른다. 농사가 그저 생존을 넘어 산업의 일환으로 자리잡고, 파종부터 수확, 나아가 유통에 이르기까지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아 전진을 거듭하는 것이 오늘의 농업이다.
 
농업 또한 산업의 일환인 만큼 효율을 무시할 수 없다. 병충해에 강하고 잘 자라는 품종으로 종자를 개량하고, 연구소에서 씨앗을 대량으로 구입해 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지방의 몰락과 농촌의 고령화에 따라 농업은 그 모습을 급격하게 바꾸어나가고 있다. 기계와 외국인노동자가 개입되는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농부들은 경영자로서의 일면을 점차 갖춰나가게 되는 것이다.
 
어디 농부뿐일까. 농산물을 소비하는 대중들은 농업과 관계된 기억을 갖지 못한 채로 성장하여 어른이 된다. 급기야 죽을 때까지 농업을 전혀 알지 못하고 죽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반 세기 쯤 전만 해도 국민 대다수가 농사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기억을 가지고 있었으나, 오늘에 이르러 주요한 농사법조차 알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농업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농산물과 관계 맺을 일 또한 없다. 고구마가 나무에서 열리고 토마토엔 씨가 없다고 여기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지방이 얼마가 들었네, 탄수화물은 또 얼마가 들었네, 제 몸에 작용하는 것은 빠삭하게 알면서도 그 농산물이 어디서 어떤 과정을 거쳐 제 식탁 위에 올랐는지는 놀랄 만큼 무지한 것이 현실이다.
 
파괴가 인간의 본성? 그래도 다른 길은 있겠지
 
제2회 반짝다큐페스티발 여섯 번째 섹션에서 소개된 <개구리>는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던 농업의 일면을 다룬 26분짜리 다큐멘터리다. 지난 수년 동안 농사를 지었다는 청년 송병현의 작품으로 직접 농사를 짓다 그만둔 과정으로부터 시작하여 아직 농업의 길 위에 서 있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지나온 역사를 통해 돌아볼 때 인간은 결국 다른 존재를 파괴하며 살아가는 것이 본성이 아닌가 싶었다는 송병현이다. 그런 그가 파괴로부터 생산으로 나아가는 농사에 관심을 가졌고, 농업으로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농사는 그를 세상과 단절시켰고, 연결을 더욱 간절하게 느끼도록 했다. 이따금씩 전 세계에서 찾아온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며 시간을 보냈으나 그들도 결국은 제 길을 찾아 떠나가곤 하였다. 뜻을 같이할 동료를 찾고 싶다는 욕구는 그를 <개구리>가 담고 있는 이야기로 이끌었다. 그는 몇 년을 이어온 농사를 중단하고 그들을 찾아 나선다.
 
어쩌면 대안을 찾는 이들일 수 있겠다. 효율과 이익이란 미명 아래 현대 농업이 놓치고 있는 가치를 찾으려는 이들을 감독이 만나 인터뷰한다. 처음은 농사를 기반으로 지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슬이다. 토마토 씨를 거두면서 그것이 제가 벌써 너덧 번째 거둔 씨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씨앗 안에는 그것이 지나온 온갖 기억들이 담긴다고, 가물었던 넘쳤던 풍족했던 모자랐던 온갖 기억들이 살아남은 종의 씨앗 안에 깃든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종은 더욱 강해지고 질겨져서 다음의 역경을 이겨낼 힘을 갖는다고 말이다.
 
토마토엔 씨가 없다는 아이
 
개구리 스틸컷

▲ 개구리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이슬은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만나 농산물과의 건강한 관계맺기를 가르친다. 오랫동안 토마토를 먹었으나 토마토에는 씨가 없다고 말했던 아이에게 씨앗을 보여준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다가든다. 어디 그 아이만일까. 제가 흔히 먹는 것과 진지하게 관계 맺어본 일 없는 이들이 세상엔 그야말로 수두룩하다. 그런 이에게 농산물은 그저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세상이다. 효율을 제일의 미덕으로 삼는 고도로 분업화된 산업 가운데 인간은 저도 모르는 채 수많은 부조리에 동참한다. 인간이 아는 만큼 제 삶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이유다. 어디까지 타협할 것인가, 어디까지 지켜낼 것인가가 앎에 크게 의지한다. 그리고 어떤 앎은 경험 없이는 얻어지지 않는다. 이슬이 전하고자 하는 것도 어쩌면 이와 같은 것일수 있겠다.
 
다음은 예술하며 농사를 짓는 서와다.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시와 그림, 노래 따위의 예술과 엮어내는 서와의 작업이 또 색다르다. 예술이란 인간이 숨 쉬는 모든 터전에서 태어날 수 있는 것, 그렇다면 농사 또한 예술의 재료가 될 수 있는 일이다. 서와의 작업들이 그리 인상적으로 등장하진 못한대도 영화는 그 일면을 담아내려 시도한다.
 
다른 길을 모색하는 이들의 자세
 
개구리 스틸컷

▲ 개구리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마지막은 빵을 굽는 수나미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마을로 들어와 빵집을 열었다는 그녀는 수고로움을 감당하며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빵을 만든다. 직접 기른 재료로 빵과 잼을 만들어 파는 수나미의 작업은 수익보다도 일상의 충실함에 방점이 찍혀 있는 듯하다. 크게 돈을 벌지는 못하였대도 저를 응원하는 이들이 많이 생겼다는 인터뷰가 이어진다. 세 사람이 농사와 관계 맺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지만, 그들 모두는 자연과 제 삶을 함께 바라보며 살아간다.
 
농사로, 또 그와 맞닿은 방법들로 큰 부를 거두지는 못한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제가 사는 삶에 만족한다 이야기한다. 부가적인 일로 ​농업에 필요한 돈을 대고, 큰 수입을 기대할 수 없는 수고로움을 감당하면서 이들은 저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 나간다. 이들의 모습을 보며 삶이란 남들이 사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또 삶이란 그저 돈을 벌고 유명해지고 힘을 얻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 이 영화는 오늘의 세상에 던지는 대안에의 물음처럼도 보인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여럿인 영화다. 농업에 대한 감독의 시각이며 이해가 잘 드러나지 않고, 직접 행했다는 농업이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그려지지 않는 점도 아쉽다. 뒤의 인터뷰와 앞의 체험이 서로 따로 노는 듯 여겨지는 점도 그렇다. 둘 중 하나를 택하여서 뒤의 이야기를 보다 풍성하게 하거나 앞의 이야기를 보다 구체화했다면 어땠을까 아쉽다. 그러나 이 모두는 아쉬움일 뿐, 영화에서 느껴지는 긍정적 요소들에 주목한다면 매력적이라 평할 수 있겠다.
 
저만의 시각, 저만의 취향, 저만의 길을 걸을 용기를 지닌 이가 갈수록 사라져가는 오늘이기에 이 영화가 더 빛났다고 여긴다.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을 얼마나 쉽게 놓치고 살아가는가. 답을 알 수 없는 인생, 다른 길을 탐색하는 많은 이들이 제 길을 찾아내길 바랄 뿐.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반짝다큐페스티발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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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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