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가구가 가장 흔한 가구형태가 된 오늘의 한국에선 낯선 일일지도 모르겠다. 세대가 다른 구성원들이 한 공간에 모여 가족이란 모둠을 이루고 사는 것 말이다. 부모며 형제까지 두 세대가 함께 사는 일을 핵가족이라 부르던 것도 옛날이야기, 조부모까지 삼대가 모여 함께 사는 일은 흔히 만날 수 없는 이색적인 무엇이 되어버렸다.
 
폭주하듯 쏟아지는 오늘의 세대갈등, 또 노인혐오와 MZ세대를 향한 조롱 이면에는 저와 다른 세대와 긴밀한 관계를 가질 기회를 잃은 신인류의 비좁음이 깔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첨단의 세상 가운데 적응이 더딘 이들이 차츰 밀려나는 일이 자연스런 시대상처럼 여겨지는 오늘이다. 그러나 늘 그렇지는 않았다.
 
한때는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손자가 같은 방식의 삶을 살았을 테다. 아내를 만나고 아이를 낳고 천직을 갖고 그렇게 삶의 굽이굽이를 돌아 다시 제가 아버지며 할아버지가 되는 과정을 윗세대와 아랫세대가 동일하게 겪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가파르게 변하여서 할아버지의 삶은 낡은 것이 되고 아버지의 삶 또한 어리석은 것이 되도록 하였다. 무려 90년 전 염상섭은 <삼대>에서 조의관과 상훈, 덕기로 이어지는 삼대의 서로 다른 삶을 예리하게 짚어내지 않았나.
 
버티는 밤 스틸컷

▲ 버티는 밤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할아버지가 떠난 뒤 할머니가 겪은 일
 
그로부터 9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돌아보면 <삼대> 또한 무척이나 낡은 소설이 되어버렸다. 집에서 수 킬로미터가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는 이성과 만나 결혼에 이르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던 시대로부터, 다시 신문에 광고를 내어 이성을 찾던 시대를 지나, 엄지로 슥슥 사진을 밀어대며 마음에 드는 이성을 고르는 시대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정말이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슈퍼컴퓨터가 양자컴퓨터를 당해내지 못하는 세상에서, 스마트폰 없던 시절을 상상하지 못하는 세대가 주류가 된 사회에서 우리는 과거 어느 지점에 멈추어 있는 이들과의 공존을 피할 수 없게 된 일이다.
 
제2회 반짝다큐페스티발 여섯 번째 세션에 소개된 <버티는 밤>은 이다운 감독의 22분짜리 다큐멘터리다. 감독 말만 따르자면 대체로 잔잔한 성품의 구성원들로 가득한 집안에서 유별나게 고집불통이던 할머니를 주인공 삼아 찍어낸 가족 다큐라 하겠다. 할머니 연자가 남편 창섭을 보내고 난 뒤 홀로 버티던 밤들을 남은 가족들과 조금씩 나누기까지의 이야기다. 여느 가족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보통의, 그러나 특별한 순간들이 이 작품 안에 담겼다.
 
22분의 짤막한 다큐는 황당한 사건으로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가족들이 할아버지를 모신 절로 갔을 때의 일이다. 절에는 고인의 유골함이 오간 데 없이 사라져 있다. 할머니는 법당에 차려진 남의 제사상을 보고 절을 하고 준비해간 돈을 불전함에 넣는다. 감독의 엄마인 딸이 남의 것이라며 할머니를 뜯어 말리지만 그녀는 좀처럼 들을 생각을 않는다.
 
버티는 밤 스틸컷

▲ 버티는 밤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유족 허락도 없이 사라진 유골
 
엄마가 절에 항의전화까지 넣어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다. 유족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유골함을 제작하겠다며 멀리 다른 도시 공장으로 보냈다는 답변이다. 이토록 허술하게 관리될 정도라면 유해가 어디서 어떻게 취급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엄마는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 되었지만 할머니는 도리어 절의 편을 드는 모양새다. 이럴수록 가족편이 되어야 한다는 엄마와 애써 문제가 없는 척 믿고 맡기자는 할머니 사이에서 카메라는 갈등 아래 깔린 실마리를 붙들고 다음으로 건너간다.
 
알고 보면 연자는 보통이 아닌 여장부다. 유별날 만큼 고집이 셌다는 그녀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모든 일을 척척 알아서 해냈다. 들어간 비용부터 영정사진을 찍어두고 상조회사를 고르고 절에 남편을 안치하는 일까지 제가 골라 처리한 것이다. 제 눈에는 첨단으로 보였던 시스템을 신뢰했고 하나하나를 따져서는 다른 누구의 손을 빌리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모든 게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감독 자신까지 삼대가 공존하는 가족의 모습이 비슷한 시대를 겪어온 관객들에게 얼마간의 공감을 자아낸다. 다소 투박한 만듦새로 사건 아래 깔린 서사며 인물들의 감정을 충분히 전달하진 못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할머니를 향해 들이민 카메라가 포착한 여러 순간들은 감독 자신과 관객들까지 보다 넓고 깊은 이해로 이끌어간다. 그 이해는 그간 무관심했던 지난 세대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말없이 수고로움을 감당해왔던 가족 구성원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버티는 밤 스틸컷

▲ 버티는 밤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가족의 가치를 알게 하는
 
영화는 한편으로 가족의 힘에 대해 알도록 한다. 영화를 본 여러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했던 것처럼 <버티는 밤>은 가족, 특히 경상도 지역에서 흔히 마주하는 가장 보통의 가족상을 여러 면에서 떠올리게끔 한다. 서로 지지고 볶고 하면서도 의지하고 쓰다듬는 삶에 대하여, 서로를 위해 감당하며 서로를 위해 지지하는 그런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이 인간보다 빠르게 변하여서 어느새 가족의 모습은 전과 달리 변하였다. 어느덧 한국적 가족의 모양을 이렇다 저렇다 쉽게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이 시대 가족의 모습은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는 듯도 하다. 그럼에도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가족이 있다. 가족이 없는 이들에게조차 적어도 관계라고 부를 만한 것은 남아 있을 테다. 사랑이든 애착이든 애증이든 사람과 사람 사이 서로를 끈끈하게 붙들어 맨 관계가 인간을 지탱하고 세워낸다.
 
그럼에도 가족은 가까운 만큼 소홀하기도 쉬운 존재들이다. 누군가가 지탱하고 있는 것을 누군가는 당연하게 여기고, 누군가가 허물어지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를 탓하기만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가까워서 놓치기 쉬운 관계에 대하여 <버티는 밤>과 같은 영화는 한 번쯤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가족들을 이해하고 보듬는 시선, 그 관심과 배려의 가치가 새삼 귀하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반짝다큐페스티발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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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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