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보았던 어느 소설이 있다. 한 연인의 이야기였는데, 그들은 무척 가난하였다. 서로를 몹시 사랑했으나 사랑할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때는 몹시 추운 겨울, 그것도 러시아가 배경이었던가. 그들이 벽으로 가려진 저들의 보금자리를 찾는 여정이 얼마나 간절하고 처절하였던지 나는 오래도록 그 이야기를 잊지 못하였었다.
 
말하자면 공간의 없음은 인간의 존엄마저 위협한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하여 가져야 할 것 중에는 공간 또한 있는 것이다. 공간이 절실한 건 그저 개인만은 아니다. 극단에게도 공간은 더없이 중요하다. 공간이 있어야 연습을 하고, 연습을 해야만 공연을 올리며, 또 공연을 할라 해도 무대며 객석이 있는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 안 되는 예술임을 부정할 수 없는 연극, 또 극단의 사정으로 공간을 구하기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리하여 좋은 연극이 자리잡는 배경에 든든한 후원자의 존재가 빠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
 
복지관에서 밀려난 장애인 극단
 
비극을 찾아서 스틸컷

▲ 비극을 찾아서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여기 설 자리를 위협받는 한 극단이 있다. 그저 평범한 극단이 아니다. 발달장애인 예술단체인 '햇빛촌'으로, 2010년 진해장애인복지관의 재활프로그램으로 시작해 10여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 극단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햇빛촌이 어느 날 복지관으로부터 독립하라는 통보를 맞는다. 
 
<비극을 찾아서>는 제2회 반짝다큐페스티발에서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이다. 그건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를 크게 오가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다른 영화에선 얼마 보이지 않던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전면에서 다룬 때문이기도 하다. 또 제목에서 느껴지듯 영화가 그 비극성을 감추려 들지 않고 스스로 비극 가운데 특별한 무엇을 꺼내려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인 대목이다.
 
영화는 햇빛촌 대표 성재가 독립하라는 통보를 받은 뒤 단원들과 함께 영화를 찍고, 새로 정착할 공간을 알아보는 활동 등을 담았다. 독립하라는 시간은 훅훅 다가오지만 가진 여력으로는 번듯한 공간을 구할 수 없어 스트레스를 받는다. 휠체어를 타고 공간을 알아보는 장면 같은 대목은 일상 가운데 장애인이 마주하는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를 알도록 한다. 카메라는 땅바닥에 붙어 휠체어를 탄 성재와 그 위에 성처럼 높게 솟은 불 꺼진 건물을 잡는다.
 
장애인 극단의 영화찍기
 
비극을 찾아서 스틸컷

▲ 비극을 찾아서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그러나 성재는 멈추지 않는다. 그는 극단의 대표이고 곁에는 동료들이 있는 것이다. 성재는 동료들을 찾아 함께 작품을 만들자고 말한다. 동료들과 테이블에 둘러앉아 회의를 하며, 다음에 빚을 작품을 의논한다. 내몰리는 상황은 상황대로, 만들어야 할 작품은 작품대로 진행해야 할 일이다.
 
모든 작업이 순조로울 순 없다. 차라리 그 반대라 해야 옳을 것이다. 동료라 해도 성재보다 상황이 좋지 않은 이들이 수두룩하다. 대사 한 줄을 제대로 읊기 위해 몇 주, 심지어 몇 달을 노력해야 하는 이들이 여럿이다. 제 생각을 명확히 표현하기도 어렵고, 그보다 확 트이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찾을 수 없다. 가뜩이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 성재는 확 하고 분노를 터뜨린다.
 
<비극을 찾아서>는 성재와 햇빛촌 동료들의 노력 사이로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해설하는 유튜버의 방송을 틈틈이 들려준다. 유튜버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전쟁의 위기 속에서 더욱 비극을 즐겼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피겠다 말한다. 성재와 동료들이 처한 상황 또한 이들에겐 전란에 버금갈 위기가 아닌지. 그렇다면 이들이 비극을 만들고 싶다 이야기하는 데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성재가 동료들을 앞에 두고 큰 소리로 비난하는 장면, 또 그에 분개한 동료가 뛰쳐나가는 장면은 자못 진지하고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다큐멘터리를 표방하지만 한편으론 극영화에 가까운 듯한 이 영화에 대하여 유철 감독은 몇몇 장면을 십수 차례, 많게는 그보다 더 찍고 다시 찍었다고 털어놓았다. 미처 카메라로 담지 못한 아까운 순간들이 지나가면 그를 다시 연출하기 위해 장애인들에게 반복해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다. 그러한 장면들은 먼저 실제 있었고 그를 다시 재현한 것이라는데, 그렇다면 이는 다큐인지 다큐와 비슷한 무엇인지, 극영화인지가 궁금해진다. 또 이것을 굳이 나누는 것이 과연 유의미한 것인지도.
 
튀어오르는 감정, 강렬한 장면들
 
비극을 찾아서 스틸컷

▲ 비극을 찾아서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오랫동안 연극을 해왔다는 감독은 복지관에서 장애인들에게 연극을 가르쳐왔다고 저를 소개했다. 그러던 중 성재가 감독에게 영화를 하고 싶다 이야기했고 그 강력한 요청을 뿌리치지 못하여 처음 찍은 영화가 바로 <비극을 찾아서>의 탄생 배경이다. 영화는 그렇게 세상에 나와 제2회 반짝다큐페스티발 여섯 번째 섹션에 소개되었다. 장애인 극단을 생각해본 적 없는 이들 앞에 저들이 겪은 존폐의 위기를 풀어놓고 연극이며 영화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도록 이끈다.
 
처음 영화를 찍는다는 감독의 영화답게 엉성하고 아쉬운 대목도 없지 않다. 기술적인 측면을 차치하더라도 이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충실하고 친절한 설명을 찾을 수 없다. 관객의 이해를 돕고 기대를 충족시키는 세심함을 영화는 갖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관객들은 저들이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을 끝내 해소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영화가 가진 힘은 분명하다. 영화 속 몇몇 장면은 보는 이에게 제법 오래 남는 인상을 새길 만큼 강렬하다. 때로 튀어나오는 감정들이 있고, 그에 기인한 선명한 의문들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영화는 본 이를 전과 다른 세상으로 얼마쯤 이끌어간다.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반짝다큐페스티발

 
비극은 멈춰서지 않는다
 
비극 또한 인상적이다. 코로나19와 그로 인한 경영악화, 복지관이 마침내 장애인 극단을 내모는 배경이, 또 장애인들이 울타리 바깥에서 마주할 밖에 없는 현실이 비극적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비극을 만들려 들고 그 비극으로부터 삶을 당해낼 힘을 구하려 한다.
 
반짝다큐페스티발이 처한 환경 또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겠다. 한국의 예술,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여러 활동가들의 치열한 활동, 주류가 아닌 시선, 뭐 그렇고 그런 것들이 처해 있는 차갑고 무거운 상황이 비극의 슬픔과 좌절로부터 과연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비극은 결코 그대로 멈춰 서지 않는다. 비극은 관객을 현실의 슬픔 위로 일으켜 세운다. 비극을 딛고 일어선 이는 전보다 강해지고 슬픔을 껴안은 이 또한 전보다 담대해진다. 작은 영화들, 독립이란 이름으로 버텨내는 이들의 작품이 강하고 담대해진 저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퍼뜨린다. 그로부터 관객 또한 강하고 담대해지는 일의 가치를 깨달을 기회를 마주한다. 영화가 세상을 나아지게 한다는 것, 어쩌면 그 길도 이와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을 테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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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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