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갓 오브 이집트>는 신화적, SF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화 <갓 오브 이집트>는 신화적, SF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 (주)시네마서비스


알렉스 프로야스.

SF영화의 팬이라면 기억할 법한 이름이다. 브랜든 리의 불운한 운명으로 더욱 널리 알려진 <크로우>를 비롯해 독특한 색채의 SF영화 <다크 시티>, 보다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섰다고 평가받은 <아이, 로봇> 등 인상적인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영화감독이 바로 알렉스 프로야스다. 호주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해온 그는 피터 위어, 조지 밀러, 바즈 루어만 등을 포괄하는 호주 뉴웨이브의 막내 격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런 그가 <갓 오브 이집트>를 들고 돌아왔다.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노잉>이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지 무려 7년 만이다. <아이, 로봇> 이후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알렉스 프로야스의 필모그래피는 <노잉> 이후 오랫동안 제자리에 멈춰있었다. 7년은 <노잉>이 나왔을 적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가 수능시험을 치를 정도의 시간이니 알렉스 프로야스의 이름이 젊은 영화팬 사이에서 거론되지 않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오랫동안 멈춰있던 그의 선택은 이집트였다. 보다 정확히는 이집트가 간직한 태고의 어떤 것, 즉 신화였다. 실존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복제하는 대신 독자적인 세계관으로 이제껏 존재한 적 없었던 세상을 그려내고 그 위에 이야기를 펼쳐내는 SF 장르는 신화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신화 속 세계에서 SF적인 영화를 찍어낸 알렉스 프로야스의 여정은 이집트에서 태어나 3살부터 호주에서 자란 그 자신의 삶과 어쩐지 맞닿는 것 같기도 하다.

신화와 SF의 절묘한 맞물림

 <갓 오브 이집트>의 주역 코트니 이튼(왼쪽)과 브렌든 스웨이츠의 모습

<갓 오브 이집트>의 주역 코트니 이튼(왼쪽)과 브렌든 스웨이츠의 모습 ⓒ (주)시네마서비스


실제로 영화는 놀라울 만큼 신화적이며 동시에 SF적이다. 인간을 창조한 신과 그 신의 아버지, 신이 악마라 불리는 외부의 생명체로부터 지구를 지켜내는 모습, 흥미롭게 구현된 사후세계와 하늘 밖 우주를 떠도는 태양신 '라'의 섬 그리고 신들의 변신은 대체 얼마만큼 신화적이고 SF적이었는가. 결코 맞닿을 것 같지 않던 두 가지 장르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구현했다는 공통점으로 맞물려 수천 년 전 이집트를 멋들어진 SF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영화는 신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다. 세계를 창조한 신 라는 하늘 너머의 세계에서 지구를 위협하는 악령에 맞서고 있고, 지상에선 그의 아들 오시리스가 세상을 다스린다. 시간이 흘러 오시리스는 아들인 호루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는데 대관식날 오시리스의 아우 세트가 반란을 일으켜 오시리스를 죽이고 호루스의 두 눈을 뽑는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역경을 뚫고 적자가 본래 자리를 찾는다는 수많은 신화와 궤를 같이한다. 신화뿐 아니라 TV 만화 <밀림의 왕자 레오>부터 셰익스피어의 <햄릿>,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이 모두 그와 같은 내용이다. 알렉스 프로야스는 이처럼 전형적인 구도에 끝 모르고 이어지는 롤러코스터처럼 거듭 등장하는 다채로운 에피소드를 버무렸다. 시종일관 흥미진진한 오락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어느 부분에선 <알라딘>이나 <페르시아의 왕자>, 각종 성룡영화에서 엿보이는 어드벤처물 특유의 인상이 엿보인다. 또 어떤 장면에선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액션물의 느낌이 드러난다. 성인보다는 청소년을 타깃으로 한 영화답게 유치하거나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적지 않지만 명확한 선악 구도 속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에피소드와 흥미로운 세계관은 부인할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 더불어 매력적인 미모를 뽐내는 코트니 이튼이 있음에야.

알렉스 프로야스가 이 악물고 찍어낸 할리우드 복귀작

 <사자의 서>는 인간이 사후세계에 드는 과정을 기록한 고대 이집트 장례문서이다.

<사자의 서>는 인간이 사후세계에 드는 과정을 기록한 고대 이집트 장례문서이다. ⓒ 위키피디아


특히 고대 이집트의 장례문헌 <사자의 서>가 기록하고 있는 사후세계를 재현해낸 부분은 영화의 백미라 할 만하다. 죽은 자를 지하세계로 인도하는 신 아누비스부터 타조깃털이 놓인 천칭으로 사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신화와 SF가 맞물린 이 영화에서 감독 알렉스 프로야스는 <사자의 서> 이전의, 그러니까 고대 이전 신화의 세계를 그려낸다. 타조깃털의 반대편에 죽은 자의 심장을 올려 그가 생전에 자신에게 맡겨진 의무를 다했는지를 보고 운명을 결정하는 세상 보다도 더 이전의 시기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오시리스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저울 위에 오르는 건 그가 생전에 모은 금, 보다 정확히는 그가 사후세계로 가져온 예물이다. 하지만 세트의 반란을 진압하고 왕위에 오른 호루스가 재물 대신 인간이 삶을 살아간 방식을 보겠다고 선언하면서 <사자의 서>가 기록하고 있는 것과 같은 심판방식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알렉스 프로야스의 그려낸 세계는 <사자의 서>가 기록하고 있는 것 이전의 세계이며 관객은 이 영화를 통해 오래된 신들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마치 <아이, 로봇>에서 수십 년 뒤 미래를 경험한 것처럼.

알렉스 프로야스가 이 악물고 찍어낸 할리우드 복귀작은 이와 같은 작품이었다. 그의 장기인 SF에 더해 성룡영화와 각종 어드벤처물의 장점을 쏙쏙 뽑아넣은 솜씨가 돋보였다. 또 지구를 평평하게 그려내거나 우주선과 같이 생긴 섬 위에서 태양을 쇠사슬로 매어 당기는 라의 모습, 살아 움직이는 스핑크스나 신의 피를 금처럼 묘사하는 설정 등 시각적으로 흥미를 돋우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혹자는 이 영화에 대해 엉성한 CG와 유치한 내용이 버무려진 졸작이라 혹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알렉스 프로야스가 그려낸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소리가 아닐까? 아마도 그와 같은 평을 내놓는 이들 가운데 태반은 알렉스 프로야스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갓 오브 이집트 시네마서비스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알렉스 프로야스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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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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