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과 직접 영접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역사적인 악수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4천억원 대북지원 의혹'이 정치권의 쟁점으로 부각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가 "현대상선이 지난 2000년 6월 7일 산업은행으로부터 긴급대출자금으로 받은 4000억원 가운데 2240억원(2억 달러)을 북한에 송금한 것으로 안다"고 밝혀 파문이 예상된다.

이 관계자는 최근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4000억원 대북지원 의혹에 대해 관계기관에 확인한 결과 당시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대북 송금을 주도했고, 국가정보원은 '송금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당시 국정원장은 임동원 현 대통령 외교안보특보.

그 동안 한나라당은 '4000억원 대북 비밀지원 의혹'을 현 정권의 '3대 의혹' 가운데 하나로 지목해 정치공세를 펴왔다. 또 최근 노무현 당선자 역시 이를 '국민적 의혹'의 하나로 규정,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에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의혹이 사실로 밝혀짐에 따라 청와대의 사전인지 여부 등을 놓고 야당은 현 정권에 대해 강도 높은 공세를 펼 가능성이 크다. 또 대북 비밀송금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남북 관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감사원의 감사를 받고 있는 4000억 대출의혹의 핵심은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에서 대출한 4000억원이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과연 북한으로 흘러 들어갔느냐 하는 것이다.

감사원은 4000억원 중 1760억원의 행방은 산은 입출금 내역과 수표 확인 등을 통해 밝혀냈으나 사용내역을 제출하지 않은 나머지 2240억원은 용처가 불분명하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상선측은 2240억원에 대한 자료제출을 미루다가 1월28일에야 제출했다.

▲ 고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과 정몽헌(鄭夢憲) 회장이 북한 김정일 당총비서와 함께 98년 10월 30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대상선이 이처럼 2240억원에 대한 자료제출을 미뤄온 것은 결국 이 액수만큼의 현금을 북한에 송금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가 지난 2000년 6월 북한에 송금한 2억 달러는 당시 환율 1100원을 적용했을 때 약 2240억원에 해당한다.

현대상선에 대출된 4000억원 중 일부가 대북 지원에 사용되었다면 상식적으로 볼 때 복잡한 '돈 세탁'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추정되나 '뜻밖에도' 현대는 국정원을 통해 직접 송금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에 따르면, 2000년 6월 7일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은 현대상선은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4000억원 가운데 1760억원을 계열사 자금운용에 사용하고, 나머지 2240억원을 대출받은 다음날 국정원 계좌를 통해 환전, 현대의 해외지사를 통해 북한에 송금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 확인요청을 받은 국정원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대가 2억 달러를 송금한 것은 사실이다. 당시 국정원은 현대를 앞세워 대북협상의 돌파구를 모색했고, 그 때문에 현대에 '송금 편의'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계좌를 통해 송금하거나 국정원이 환전해준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당시 국정원은 북한의 송호경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위원장 김용순 대남 담당비서·이하 아태) 부위원장과 협상채널을 확보한 현대그룹을 앞세워 대북 협상의 돌파구를 모색했기 때문에 현대의 송금 편의제공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것.

그런데 2000년 6월 당시 박지원 문광부장관(현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대북 비밀접촉 대표로 활동했다. 당시 박지원 장관이 김보현 국정원 대북전략국장(현 대북3차장)의 지원 아래 만나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북측 대표 송호경 아태부위원장은 현대의 대북사업 파트너였다. 따라서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물밑에서는 국정원의 역할이 컸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의 돌파구를 연 '숨은 공로자'는 현대라는 것이 정설이다.

▲ 금강산종합개발계획 조감도.
ⓒ 현대아산 제공
한편 현대상선이 송금한 '2억 달러'의 성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른바 '7대 대북사업'을 추진해온 현대그룹 관계자와 여권의 고위관계자는 이 자금의 성격을 "금강산 관광개발사업 등을 30년 동안 독점적으로 보장받는 것을 골자로 한 사업계약에 따른 '대가금'"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 6월 정상회담 직전에 북측에 건네진 송금시점에 비추어 '정상회담 대가'라는 의혹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4000억원 대북 지원 의혹을 취재해온 <오마이뉴스>는 지난 1월23일 대북송금에 관한 단서를 처음 포착, 확인작업에 들어갔고 이틀 뒤인 1월25일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로부터 이를 공식 확인했다. 그러나 당시 이 고위관계자는 대북 특사의 방북일정을 감안, '적어도 방북 기간에는 보도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전제로 확인해주었다. <오마이뉴스> 또한 이 보도로 인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대북 특사단의 귀환 이후로 '현대상선 대북송금' 보도를 미뤄왔다.

한편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4000억원 가운데 2240억원이 북한으로 송금되었다는 <오마이뉴스> 보도에 대한 현대상선의 1차 반응은 "북한으로 넘어간 것을 어떻게 확인했나"하는 것이었다. 현대상선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입장이 정리된 게 없다"면서 "회사 고위층과 논의한 후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홍보실 관계자는 29일 밤 11시쯤의 2차 통화에서도 "사장에게 보고를 했다"면서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또 "감사원에 4000억원의 용처에 대해 보고서를 냈는데, 2240억원이 넘어갔다면 허위보고서를 낸 것이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도 "그 부분까지 포함해서 아직 확인 중에 있다"고 해명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