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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과 정몽헌(鄭夢憲) 회장이 북한 김정일 당총비서와 함께 98년 10월 30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북송금 및 남북 정상회담은 현대 정주영 전 명예회장 및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제안'을 박지원 전 문광부장관의 '중재'를 거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최종 '수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정몽헌 회장은 당시 북한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위원장 김용순 노동당 비서)와 교섭중인 금강산개발사업을 포함한 이른바 '7대 경협사업'을 남과 북 양측 정부로부터 보장받기 위해 북측에 먼저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은 후에, 박지원 장관에게 정상회담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DJ, 박지원 보고한 '북측 메시지' 국정원에 검토 지시

그리고 당시 박 장관으로부터 이를 보고받은 김대중 대통령은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에게 "현대가 제안한 북측의 메시지가 신빙성이 있는지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고, 국정원의 면밀한 검토를 거쳐 "신빙성이 있다"는 보고를 받은 김 대통령의 지시로 국정원은 2000년 3월부터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대북 비밀접촉을 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그 과정에서 김 대통령은 국정원이 배후에서 지원한 남북 비밀회담의 대북특사로 박지원 문광부장관을 직접 '낙점'했으며, 박 장관은 2000년 3월 8∼10일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싱가포르의 한 호텔에서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 예비회담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현대가 중개한 싱가포르 비밀협상의 성사에는 총련계 재일동포 2세인 요시다 다케시(吉田孟) 신일본산업(新日本産業) 사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회장 및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과 함께 당시 싱가포르의 협상장 주변에 있었던 것으로 새롭게 밝혀졌다.

또한 북측 송호경 부위원장은 현대측과의 별도의 회담에서 남북경협 7대사업의 대가로 10억 달러를 요구했으나 현대측은 회사의 재정상태와 지불능력을 감안해 이를 5억 달러로 낮추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처럼 7대사업 교섭에 정상회담을 '연계'시킨 현대측의 대북 협상전략은 당시 남북경협사업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에 따른 것으로 밝혀졌다.

"정상회담은 DJ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과 계획으로 성사"

이와 같은 사실은 최근 <오마이뉴스>가 대북송금의 전모를 꿰뚫고 있는 핵심 당사자 중의 한 사람을 인터뷰함으로써 확인한 것이다.

이 핵심 당사자는 최근 "대북송금과 정상회담은 김대중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이뤄진 것이며 특검에서도 그렇게 진술했다"고 기자에게 밝혔다. 이 핵심 당사자의 증언에 따르면, 대북송금과 정상회담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과 정교한 계획에 의해 성사된 것이어서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 6월 16일 대북송금 특검에 소환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포토라인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후 기자들 사이를 뚫고 승강기로 이동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 핵심 당사자의 증언에 따르면, 우선 국정원이 당시 현대가 추진중인 대규모 경협사업의 교섭내용과, 사실상 이것과 '연계'한 북측의 '정상회담 수용 가능성' 메시지를 처음 인지한 것은 2000년 2월초이다. 김대중 대통령을 통해서였다. 물론 그때는 현대-아태가 7대사업을 '잠정합의' 하기 전의 일이다.

당시 박지원 문광부장관으로부터 이를 보고받은 김 대통령은 임동원 국원장에게 "현대가 타진한 북측의 메시지가 신빙성이 있는지 국정원에서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고, 1999년부터 대북 '핫라인'을 가동해 북측과 정상회담 응수 타진을 해오다 '실패'한 경험이 있는 국정원은 현대가 전해온 북측 메시지를 면밀히 검토한 끝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했던 것이다.

따라서 2000년 3월 8∼10일 싱가포르에서 3차례에 걸쳐 비밀리에 이뤄진 남북정상회담 예비회담은 국정원으로부터 "신빙성이 있다"는 보고를 받은 김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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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보고받은 DJ가 박지원을 대북특사로 직접 '낙점'"

중요한 사실은 당시 김 대통령이 국정원으로부터 "북측이 우리측의 정상회담 제안에 긍정적인 사인을 보내왔는데 대북특사로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겠냐"는 보고를 받자마자 직접 박지원 장관을 '낙점'한 것이다. 김 대통령은 당시 박 장관을 '낙점'하면서 "박 장관이 배짱도 있고, 사업(미국에서의 가발·무역업)을 했기 때문에 협상을 잘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는 당시에 이미 김 대통령은 박 장관으로부터 현대의 정상회담 가능성 타진 결과를 보고받아 왔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실제로 앞서의 핵심 당사자는 "국정원은 2000년 2월초에 박 장관이 현대를 통해 그동안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해온 것을 김 대통령을 통해 처음 인지했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남북 정상회담 성사 배경과 관련해 사람들은 국정원이 다 한 것으로 아는데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김대중 정부 들어서 국정원이 처음부터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노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정원 '라인'은 실패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지만 국정원 모르게 현대에서는 박 장관을 통해 추진하고 있었다.

나중에 국정원은 싱가포르에서 박지원-송호경이 만날 때 처음 김보현 대북전략국장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그전까지는 박 장관과 현대가 주도했고, 북측에서 처음 정식으로 정상회담 용의를 표명하자 그때부터 대북특사로 간 박 장관에게 '전문가'들(국정원 김보현 국장, 서영교·서훈 단장)을 붙여준 것이다."


보수언론의 비판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2월 9일 일본 도쿄방송(TBS)과의 회견에서 "남북문제를 풀어가려면 김정일 총비서와의 대화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김 총비서는 지도자로서 판단력과 식견을 상당히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다소 파격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칭송'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김 대통령은 2000년 2월 28일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도 "(김위원장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94년 제네바 합의를 지키고 있고 미사일 발사 실험을 유보할 것을 결정했다, 그가 실용주의자라고 생각한다"고 김 위원장에 대한 우호적인 평가를 이어갔다.

먼저 '선수'끼리 탐색전 벌이다 장소 옮겨'얼굴마담' 앞세워 비밀회담

▲ 지난 5월 22일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특검에 소환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런 '사전 분위기 조성' 속에서 남과 북은 먼저 '전문가'들끼리 그해 2월∼3월초에 주로 베이징에서 물밑접촉을 통해 '탐색전'을 벌였다. 그런데 이런 '밀월'은 3월 6일 <로동신문>이 "괴뢰정보원이 또 남북대화를 주관하려 한다"고 공공연하게 비난한 것을 계기로 끝이 난다. '괴뢰정보원'은 국정원을 의미한다.

'선수'들끼리 만난 베이징 탐색전이 '선수'들은 뒤로 빠진 채 장소를 옮겨 '얼굴마담'을 앞세운 예비회담으로 바뀐 것이 바로 3월 8∼10일 박지원-송호경 싱가포르 비밀접촉이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은 3월 9일(한국시간 3월10일) "한국은 북한의 인프라 건설 등에 적극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는 '베를린 선언'을 공표한 것이다.

박지원 장관의 '위증'이 문제된 이 싱가포르 비밀접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정몽헌 회장과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그리고 현대의 금강산관광사업을 위한 회담을 중개한 총련계 재일동포 2세인 요시다 다케시(吉田孟) 사장이다.

당시 이익치 회장은 베이징에서 싱가포르로, 정몽헌 회장은 일본에서 싱가포르로 각각 비밀리에 이동해 박지원 장관과 싱가포르에서 합류하게 된다. 따라서 현대의 정몽헌 회장을 연결고리로 이뤄진 박지원-정몽헌-송호경 회담에서 북한측이 7대 경협사업과 정상회담을 '연계'해 남측에 요구한 대가금은 10억 달러였고 박 장관이 그 협상에 참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국정원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당시 '전문가'들을 보내 박지원-송호경 예비회담을 배후지원한 국정원이 처음부터 '보안유지'를 위해 이 정부간 비밀회담에는 '민간인'의 참여를 배제했기 때문에 현대측 3인(정몽헌·이익치·요시다)은 회담장에 들어오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요시다 사장도 지난 2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회장과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도 그때 싱가포르에 있었으나 협상에 참석하지는 않았다"면서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두 사람과 나는 협상장 주변에서 기다렸다"고 말해 싱가포르에서의 비밀협상이 당국자 중심으로 진행됐음을 시사한 바 있다.

남북한은 당국간-현대와의 회담을 동시에 별개로 진행

결국 당시 북한측은 김 대통령 특사와 현대측 양측을 상대로 별개의 협상을 벌인 셈이다. 그러나 북한측은 싱가포르에서 남측 정부 및 현대와 '동시'에 회담을 진행하는 가운데 현대측에 남북경협 7대사업의 대가로 10억 달러를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박지원 장관도 북측 요구조건을 알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박 장관이 대북송금 5억 달러의 성격과 관련해 경협사업 대가와 정상회담 대가의 '연계'한 것임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당사자라는 지적을 받는 것이다.

한편 16일 오전 특검에 소환된 박지원 전 장관은 '송금 과정에 논의가 있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모든 협상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다"라고 밝혀 여운을 남겼다. 박 장관은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의 특사로 참가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만약 지금 대통령께서 또다시 임무를 부여한다면 더 성실하게 임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 지난 2000년 6월 13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과 직접 영접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역사적인 악수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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