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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풍제련소 공장 굴뚝에서 일제히 뿜어져 나오는 아황산가스. 2018년 가을에 촬영된 영풍석포제련소 제1공장.
영풍제련소 공장 굴뚝에서 일제히 뿜어져 나오는 아황산가스. 2018년 가을에 촬영된 영풍석포제련소 제1공장. ⓒ 장영식
 
제련소에서 7년 가까이 일한 뒤 백혈병에 걸린 사내 하청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의 판단과는 반대로 1심 법원에서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제련소 노동자의 백혈병이 산재로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판사 손혜정)은 지난 22일 진현철(72)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

진씨는 지난 2009년 12월부터 6년 9개월간 영풍 석포제련소 하청업체인 동진기업·신창기업에 소속돼 공정 과정에서 나오는 용액의 불순물을 제거하고(필터프레스 작업) 하화장(작업장)을 청소하는 업무를 했다. 그는 2017년 3월 8일 급성 전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아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질병과 업무 간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2021년 6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진씨는 "포름알데히드, 비소, 아연, 카드뮴, 구리, 납, 수은 등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업무 환경에서 일했고, 60대 나이에 3교대 근무를 하며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돼 업무상 질병으로 보아야 한다"며 2021년 9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 "3교대 근무 인한 과로도 발병 촉진"

재판부는 "진씨가 제련소에서 필터프레스 관리 등 업무를 수행하면서 지속적으로 노출된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 물질이 진씨의 체질 등 다른 요인과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해 백혈병을 발병하게 했거나 적어도 그 발병을 촉진하고 자연 경과 이상으로 악화시킨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진씨가 포름알데히드 등에 노출된 수준이 미미하다고 평가한 2021년 2월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작업환경 평가 결과에 대해서도 "노출 기준 이하의 작업환경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업성 질병의 이환을 부정하는 근거 또는 반증 자료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진씨가 업무를 한 때로부터 수년이 지나 한 차례 실시한 평가일 뿐이고, 이는 진씨가 근무하던 시기의 정전, 설비 고장, 그 밖의 사고 등 비정상적인 작업환경을 나타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 사업장은 유해 물질 노출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심각하게 지적을 받았던 사업장이었다"며 "진씨가 근무한 기간은 특별감사에서 보건관리와 작업환경 관리가 안 된다고 지적된 기간과 겹치는 바, 이러한 사정 또한 진씨가 포름알데히드 등 발암물질에 노출된 수준이 낮았다고 쉽사리 평가할 수 없는 하나의 정황이 된다"고 설명했다.

진씨의 과로를 두고는 "백혈병과 관련된 유전적 소인, 병력이나 가족력이 전혀 없는데 이 사건 사업장에서 3조 3교대 형식으로 1일 8시간, 1주 평균 7일을 휴일 없이 근무한 이후 백혈병이 발병했다"며 "이러한 업무 형태와 업무량은 업무상 유해 요인들과 복합적으로 작용해 진씨의 면역력에 악영향을 미쳐 질병의 발병이나 진행을 촉진하는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봤다.

진씨 "그동안 산재인지도 모르고 많은 분 돌아가셔"

진씨를 대리한 임자운 변호사(법률사무소 지담)는 "노동자의 작업환경이 어떠했으며 그것이 노동자의 건강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재판부가 산재보험제도 취지에 맞게 판단했다"며 "유해 화학물질 노출과 관련해 영풍 석포제련소는 이미 수차례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바 있는데, 그러한 문제들이 노동자의 작업환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도 매우 반가운 부분"이라고 했다.

진씨는 27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오랜 시간 끝에 승소 판결이 나와 기분이 좀 괜찮다"며 "유해 물질 때문에 작업장 주변에 있는 나무와 풀이 다 죽어가는 환경에서 일했지만 아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동안 산업재해인지도 모르고 돌아가신 분들이 많은데, (근로복지공단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심이 진행되더라도 끝까지 가보고 싶다"고 했다.

#영풍석포제련소#산업재해#백혈병#포름알데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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