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7일부터 tvN에서는 매주 월요일 4명의 유부남이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여행을 다니는 힐링 버라이어티 <아주 사적인 동남아>가 방송되고 있다. 지난 5일 신작 영화 <리바운드>가 개봉한 장항준 감독을 필두로 작년 12월 26.9%의 시청률로 종영한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순양그룹 사위 최창제를 연기했던 김도현과 순양그룹 장손 진성준 역을 맡았던 김남희가 <아주 사적인 동남아>의 멤버로 합류했다.

<아주 사적인 동남아>에 출연하는 4명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멤버는 1969년생 장항준 감독이지만 프로그램에서 실질적으로 리더 역할을 하는 인물은 바로 배우 이선균이다. 이선균은 지난 2019년 <시베리아 선발대> 이후 3년 4개월 만에 예능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한다. 이선균은 겉으로는 다소 까칠한 듯 해도 특유의 친화력과 리더십을 발휘하며 쉽게 접점이 보이지 않는 감독과 배우를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이 첫 번째로 떠난 여행지는 바로 캄보디아다. 캄보디아는 이선균이 신인시절 영화 촬영을 위해 4개월 간 머물렀던 곳으로 이선균은 <아주 사적인 동남아>를 통해 19년 만에 캄보디아를 찾아 '첫 해외촬영지'의 추억을 되새겼다. 이선균이 19년 전에 캄보디아에서 촬영했던 영화는 바로 김지운 감독의 <장화,홍련>과 함께 2000년대 한국 공포영화의 수작으로 꼽히는 공수창 감독의 <알포인트>다.
 
 <알포인트>는 여름 끝물에 개봉했음에도 그 해 호러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알포인트>는 여름 끝물에 개봉했음에도 그 해 호러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시네마 서비스

 
중·저음의 동굴 목소리가 매력적인 명배우 

지금은 수 많은 인기배우들을 배출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회 입학생 이선균은 2001년 시트콤 <연인들>에서 이윤성의 남동생 역을 맡으며 데뷔했다. 그 후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여려 캐릭터를 맡아 연기경험을 쌓은 이선균은 초창기 지금의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찌질하거나 불량스런 역할을 많이 맡았다(심지어 영화 <보스 상륙 작전>에서는 배역 이름이 '양아치'였다). 

2004년에 출연했던 <알포인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선균은 <알포인트>에서 문선대 군악대에서 섹소폰을 불던 박재영 하사를 연기했는데 박재영 하사는 위엄 있는 간부와는 거리가 먼, 병사들과 야한 농담을 주고 받는 사병 같은 간부 역할이었다. 이선균이 박재영 하사를 연기한 <알포인트>는 신인감독의 데뷔작임에도 전국 168만 관객을 동원하며 기대 이상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알포인트> 이후 많은 단막극에 출연하며 필모그라피를 풍성하게 쌓던 이선균은 2007년 두 편의 드라마를 통해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정의롭고 다정한 내과의사 최도영을 연기했던 <하얀 거탑>과 부드러운 미소를 가진 훈남 방송음악가 최한성 역을 맡았던 <커피프린스 1호점>이었다. 두 편의 드라마를 통해 안정된 연기와 멋진 목소리를 시청자들에게 알린 이선균은 자타가 공인하는 인기배우로 도약했다.

2010년 드라마 <파스타>로 시청자들에게 '식당 주방을 책임지는 사람'을 정의하는 단어가 '셰프'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 이선균은 2012년 영화 <화차>와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영화계에서도 입지를 굳혔다. 특히 2014년에는 조진웅과 함께 김성훈 감독의 <끝까지 간다>에 출연해 345만 관객을 모았고 <끝까지 간다>를 통해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 정점을 찍었다.

2018년 많은 시청자들이 '인생작'으로 꼽는 명작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 부장을 연기한 이선균은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통해 미 배우 조합상을 포함해 5개 영화제에서 최우수 앙상블상을 수상했다. 지난 2월 11%의 시청률로 종영한 <법쩐>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선균은 오는 14일 이하늬,공명과 함께 <남자 사용 설명서>를 연출했던 이원석 감독의 신작 <킬링 로맨스>에 출연할 예정이다.

남성관객들이 더 좋아했던 공포영화
 
 <알포인트>는 감우성을 비롯해 손병호,이선균,박원상,김병철 등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알포인트>는 감우성을 비롯해 손병호,이선균,박원상,김병철 등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 시네마 서비스

 
<알포인트>를 연출한 공수창 감독은 1990년대 초반부터 <하얀 전쟁>과 <비상구가 없다> <링> <텔 미 썸딩> 등의 각본작업에 참여하며 각본가로 먼저 활동했던 인물이다. <알포인트>는 베트남 전쟁 당시 실제 있었던 실종사건들과 많은 괴담들에 공수창 감독의 상상력을 더해 만든 허구의 이야기다. 개봉 당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떠돌았고 실제 공식사이트에도 외국기자의 일기가 올라왔지만 이는 모두 광고의 일부분이었다.

흔히 남자들은 극장 안에서 놀라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 때문에 호러 영화는 전통적으로(?) 여성관객들이 좋아하는 장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알포인트>는 귀신이나 살인마가 등장해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방식의 호러 영화가 아니라 베트남 전쟁에서 군인들이 실종자들을 수색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다룬 영화다. <알포인트>가 남자관객, 특히 군필자들에게 유난히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지금은 활동이 다소 뜸해진 감우성은 활발한 활동을 하던 2004년 <알포인트>에서 두더지 셋 수색대의 지휘관 최태인 중위를 연기했다. 최태인 중위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여러 전장에서 살아남은 영웅으로 여러 훈장을 소유한 화려한 스펙(?)의 소유자다. 여기에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설정이 있어 밤 늦게 찾아온 미군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하지만 이날 만난 미군들은 이틀 후 썩은 시체로 발견됐다).

<알포인트> 후반부를 보면 최태인 중위가 부대원들에게 집요할 정도로 관등성명을 대라고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관등성명'이란 군인의 보직과 계급,이름을 말하는 것으로 최중위가 관등성명을 반복해서 물어본 이유는 병사들이 (귀신에 빙의 되지 않고) 온전한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최태인 중위는 관등성명을 대지 않고 수류탄을 꺼내려 한 변문섭 상병(문영동 분)을 망설임 없이 처단했다.

<알포인트>는 영화가 개봉한 지 10여 년이 지난 2015년 <개그콘서트>에서 영화를 패러디한 동명의 개그코너가 6개월 동안 방송되기도 했다. 전장에 고립된 소대원들이 점점 미쳐가면서 벌어지는 황당한 상황으로 웃음을 주던 <개콘>의 '알포인트'는 이동윤과 정명훈,김지민,이수지 등 <개콘>의 인기개그맨들이 대거 출연했다. <개콘>의 여러 인기코너들에 비하면 장수한 코너는 아니지만 영화의 설정과 배경,소품 등을 활용해 웃음을 전달했다.

<하얀 거탑>에서 재회한 <알포인트> 전우들
 
 <알포인트>에서 카리스마 있는 선임하사를 연기했던 손병호는 2007년 <하얀 거탑>에서 이선균,정경호와 재회했다.

<알포인트>에서 카리스마 있는 선임하사를 연기했던 손병호는 2007년 <하얀 거탑>에서 이선균,정경호와 재회했다. ⓒ 시네마 서비스

 
<파이란>에서 발군의 악역연기를 선보였던 손병호는 <알포인트>에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선임하사 진창록 중사를 연기했다. 조용한 성격과 음울한 분위기 때문에 따르는 병사가 많지 않았던 최태인 중위 대신 진중사가 실질적인 부대의 실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귀신을 쫓다가 절벽에서 떨어지고 동굴에서 해골을 발견한 진중사는 결국 귀신에 빙의해 박재영 하사를 살해하고 본인도 최태인 중위와 부대원들에 의해 사살 당했다.

박원상이 연기한 마원균 병장은 결혼해 아이까지 있는 유부남 병사로 자신보다 한참 어린 장영수 병장과 동기라는 사실을 무척 못 마땅해한다. 하지만 취사병이라는 사실을 장영수 병장에게 들키면서 다음날 아침부터 곧바로 부대원들에게 놀림을 당한다(과거 취사병은 군인들이 썩 자랑스러워하는 보직이 아니었다). 그래도 유일한 동기인 장병장과는 많은 정이 들었는지 죽기 전에 장영수 병장의 '생환기원'을 유언으로 남겼다.

<도깨비>의 빌런 박중헌과 < SKY캐슬 >의 차민혁 교수, <지금 우리 학교는>의 과학선생 등을 연기했던  김병철이 배우로서 처음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작품이 바로 <알포인트>였다. <알포인트>에서 김병철이 연기한 장의사집 아들 조병훈 상병은 뛰어난 한문 독해력으로 영화 초반부 알포인트 지역의 경계에 있던 비석에 쓰여진 글귀를 해석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부대에 닥친 비극을 초래한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알포인트>에서 각각 박재영 하사와 진창록 중사,이재필 상병을 연기했던 이선균과 손병호, 정경호는 3년 후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각각 내과의사 최도영, 변호사 김훈, 의료사고 피해자의 동생 권순기 역을 맡으며 재회했다. 이선균과 손병호가 <알포인트>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캐릭터를 맡아 변신을 시도한 것에 비해 정경호는 <알포인트>에 이어 <하얀 거탑>에서도 마초적이고 성격이 급한 인물을 연기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알포인트 공수창 감독 이선균 감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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