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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한미동맹과 북한의 대화 없는 대결이 지속되며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고도화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지속하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가올 한미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글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국의 대안은 무엇인지 묻는 질의서이다. - 기자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11월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11월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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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미국 대통령님,

저는 한반도 문제를 연구해 온 한국의 연구자입니다. 한반도 정세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달에 한미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입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국의 역할에 대해 질문하고 나의 의견을 전달하려 합니다.

한반도는 아직도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습니다

냉전이 해체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한반도는 아직도 냉전의 그림자 아래 있습니다. 냉전의 전장이었던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전쟁 위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 전 세계에서 냉전이 종식됐지만, 한반도는 냉전의 마지막 섬으로 남아 있습니다. 냉전의 한 축이었던 소련과 중국은 한국과 국교 정상화를 통해 화해의 시대를 열었지만,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지 못했습니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한반도에서 한미동맹이 힘의 우위에 섰을 때 미국이 북한과 국교를 수립했다면 한반도에도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을까 아쉬워하는 것은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 북한은 핵으로 무장했고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과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는 우리에게, 동북아에서 그리고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할 우리 모두의 과업입니다. 나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 역사적 과업에 함께하길 기대합니다.

한반도 비핵화 노력은 왜 실패했습니까?
 
북한은 전날 황북 중화 일대에서 발사한 SRBM이 500m 상공에서 핵폭발 모의시험 계획에 의해 공중 폭발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중앙TV는 "중부전선의 중요 화력타격 임무를 담당하고 있는 미싸일부대에서 3월 27일 관하 구분대들을 중요 화력타격 임무 수행 절차와 공정에 숙련시키기 위한 시범교육사격 훈련을 진행하였다"고 28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3.28
▲ 북한, 어제 핵공중폭발 시범사격 북한은 전날 황북 중화 일대에서 발사한 SRBM이 500m 상공에서 핵폭발 모의시험 계획에 의해 공중 폭발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중앙TV는 "중부전선의 중요 화력타격 임무를 담당하고 있는 미싸일부대에서 3월 27일 관하 구분대들을 중요 화력타격 임무 수행 절차와 공정에 숙련시키기 위한 시범교육사격 훈련을 진행하였다"고 28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3.28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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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난 30년의 한반도 비핵화 노력이 왜 실패했는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한반도 비핵화 노력이 실패한 원인이 북한에게 귀속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다만, 핵무장을 위한 북한의 도전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왜 실패했는지 우리는 냉정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지난 30년간 북한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와 핵무장을 저울질했다고 생각합니다. 관련해서 수많은 대화와 합의서가 체결됐고 그곳에는 늘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가 병기돼왔습니다. 안타깝게도 미국은 북한을 불신했고 북한과의 국교정상화에 미온적으로 대처해 왔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제 핵으로 무장한 북한과 대면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북한이 핵무장을 추구한 과거에도 그리고 핵무장을 완성한 현재에도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안전보장이란 점입니다. 한미동맹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북한에 대한 불가침, 즉 안전보장을 여러 차례 약속해 왔습니다. 우리가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 없다면 해답은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해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방법만이 남아 있습니다.

미국의 행정부와 의회가 북한과의 대화를 신뢰하지 않는 점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북핵 문제는 북한 문제가 아니라 한국과 동북아, 그리고 세계평화에 관한 문제입니다. 나는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에 실패한 원인을 냉정하게 재평가하길 기대합니다(관련 기사 : 미국의 한반도 비핵화 전략이 실패한 세 가지 이유).

대북제재는 비핵화를 위한 도구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2016년 북한이 두 차례 핵실험을 단행한 이후 국제사회는 강력한 대북제재를 통해 북한이 굴복하길 기대해 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에 스스로를 봉쇄하며 저항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거의 완벽하게 이행된 상황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 3년간 현실화되었지만, 김정은 체제는 여전히 견고해 보입니다.

나는 대북제재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는 달성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올바르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지속된 미국의 경제제재를 오랜 시간 견뎌왔다는 점에서 그 효과가 과거 제재에 굴복한 여타의 나라들과 달리 제한적입니다.

또한 북한은 미국이라는 '적'을 통해 정치체제를 강화해 왔습니다. 북한에서 외부로부터의 위기는 김정은 체제를 유지하는 프로파간다(propaganda)로 작동하고 있습니다(관련 기사 : 잦은 '북한붕괴론', 그럼에도 견고한 북... 시각을 바꿔야 한다).

결과적으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김정은 체제가 사회를 더욱 억압적으로 통제하고 주민들을 반미의 구호 아래 동원하는 명분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을 미국의 침략전쟁으로 알고 있는 북한 주민들은 북한 당국의 역사 왜곡에 포섭돼왔습니다. 지금의 대북제재로 고통받는 것은 김정은 체제가 아니라 북한 주민들입니다. 대북제재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도구이지 북한을 고사(枯死)시키기 위한 도구가 돼선 안 됩니다.

한반도 평화 위한 미국의 책임 있는 행동을 기대합니다
 
지난 2022년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 누사두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중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 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만나고 있다.
 지난 2022년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 누사두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중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 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만나고 있다.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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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대북제재에 굴복할 때까지 기다리자는 전략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나는 과거 오마바 정부가 취한 "전략적 인내"는 정말 뼈아픈 실책이라 생각합니다. 미국이 이해할 수 없는 "인내"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북한은 핵무장에 성공했고 미사일 사정거리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나는 미국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길 요청합니다. 첫 번째로, 미국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중국과 협력하길 기대합니다. 한국은 미국이 주창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 싸워왔습니다. 그러나 한반도가 미중전략경쟁의 전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반도에서만큼은 미국과 중국 모두 평화를 위해 손잡고 협력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북미관계 정상화 없이 한반도에서 냉전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울 수 없습니다. 나는 미국이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북한에 제시하길 기대합니다. 이는 단순히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을 넘어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또한, 나는 미국이 미중전략경쟁의 관점에서도 북한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미연락사무소를 워싱턴과 평양에 개설하는 것은 그 시작이 될 것입니다.

세 번째로, 대북제재가 한반도 비핵화에 순기능을 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스냅 백(snap back) 조항을 활용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진전시키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대북제재로 인한 북한 주민의 고통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관련하여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UN대북제재위원회의 신고 절차를 완화하거나 몇몇 인도적 지원단체에 이 업무를 일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는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남북 주민의 생명에 관한 문제입니다. 나는 우리가 꿈꾸는 한반도의 평화가 다르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다가올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당신의 냉정하고 용기 있는 결단을 기대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일영씨는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으로, <평양 오디세이>, <한반도 스케치北> 등 집필에 참여했습니다.

*이 글은 Undercurrent: Contemporary North Korea Review에 영문으로 번역되어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https://undercurrentnk.blogspot.com/2023/04/a-letter-to-president-biden.html


태그:#한미정상회담, #한반도비핵화, #바이든, #윤석열,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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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정일영 연구교수입니다. 저의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한반도 오디세이],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평양학개론], [한반도 스케치北], [속삭이다, 평화] 등이 있습니다. E-mail: 4025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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