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웨일> 포스터

영화 <더 웨일>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사귀던 남자의 죽음으로 인해 상실감에 빠진 대학교수 찰리(브랜든 프레이저 분)는 세상을 거부한 채 은둔하는 중이다. 270kg이 넘는 거구인 탓에 간호사인 친구 리즈(홍 차우 분)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거동조차 힘든 찰리는 지병인 울혈성 심부전이 갑자기 악화하여 사망 위기에 처했다가 우연히 들른 선교사 토마스(타이 심킨스 분)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느낀 찰리는 병원에 가지 않으면 죽는다는 리즈의 경고를 무시하고 대신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10대 딸 엘리(세이디 싱크 분)를 집으로 초대한다. 어릴 적 가족을 버린 아빠를 원망하며 세상을 향한 분노로 가득한 엘리에게 찰리는 매일 자신을 찾아와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면 전 재산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영화 <더 웨일>의 한 장면

영화 <더 웨일>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하다. 데뷔작 <파이>(1998)의 편집증에 시달리는 수학 천재, <레퀴엠>(2000)의 마약 중독자들, <천년을 흐르는 사랑>(2006)의 삶과 죽음의 난해한 명상, <더 레슬러>(2008)의 망가진 프로레슬러, <블랙 스완>(2010)의 광기에 사로잡힌 발레리나, <노아>(2014)의 방주 완성에 집착하는 인물, <마더!>(2017)의 성경의 전복적인 재해석까지 그의 영화는 소재, 내용, 인물이 모두 도발적이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영화는 어두운 상황에 부딪힌 캐릭터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한까지 몰고 가는 과정을 통해 '욕망' 혹은 '죄책감', '자기 파괴', '구원'을 전달하기에 다른 영화에서 만나기 힘든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동시에 누군가에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는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한계를 넘어선 캐릭터를 소화한 배우들은 예외 없이 '최고의 연기'란 찬사를 들으며 아카데미 시상식 연기상을 받거나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레퀴엠>의 엘렌 버스틴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으며 <더 레슬러>의 미키 루크가 남우주연상 후보, 마리사 토메이가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블랙 스완>의 나탈리 포트만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동명의 연극이 원작
 
 영화 <더 웨일>의 한 장면

영화 <더 웨일>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신작 <더 웨일>은 2012년 초연한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주인공이 내내 소파에 앉은 채 진행하는 연극 <더 웨일>은 원작자인 사무엘 D. 헌터 자신의 신체적, 사회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저는 저의 성적 정체성을 추하게 여기는 근본주의 기독교 학교에 다녔고, 이 때문에 여러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음식과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맺게 되었죠. <더 웨일>을 쓰면서 그 모든 것들이 제 안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10여 년 전 연극 <더 웨일>을 관람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극 중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긍정을 잃지 않는 주인공에 이끌려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밝힌다. 원작가인 사무엘 D. 헌터가 각색에 참여했지만, 영화 <더 웨일>은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죄책감', '자기 파괴', '구원'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는 과거에 갇힌 찰리의 상태를 공간, 화면비율, 그리고 거대한 신체를 통해 묘사한다.
 
 영화 <더 웨일>의 한 장면

영화 <더 웨일>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더 웨일>은 프롤로그와 몇 차례 플래시백 장면 외엔 내내 찰리의 집 안에서 머문다. 햇빛을 가린 채로 지저분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찰리의 집은 더는 살아갈 희망이 없는 감옥 같은 내면을 은유한다. 한편으로는 사귀던 남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세상으로부터 편안하게 숨을 수 있는 유일한 은신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더 웨일>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화면비율인 1.85: 1이나 2.35: 1이 아닌, 과거 무성영화 시절에 자주 쓰이던 1.33: 1(4: 3) 화면비율로 만들어졌다. 1.33: 1 화면비율은 화면이 좁은 만큼 사람을 크게 잡기 때문에 인물 중심이거나 갑갑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더 웨일>에서 찰리의 갇힌 육체적, 정신적 상태와 1.33: 1 화면비율은 잘 어울린다. 더불어 찰리의 거대한 몸을 한층 강조하는 효과도 얻는다. 

참고로 <더 웨일>은 <문라이트>(2007), <미드소마>(2019),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북미의 영화사 'A24'가 제작했다. 이곳에서 만든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2016)와 <퍼스트 리폼드>(2017)가 1.37: 1, <라이트하우스>(2019)가 1.19: 1을 사용한 걸 보면 창작의 자유가 대단히 높아 보인다.

찰리의 체중은 단순히 마음껏 먹어서 찐 살로 보아선 안 된다. 그것은 아내와 딸을 버린 미안함, 사랑하는 애인을 잃은 슬픔 등 죄책감과 상실이란 과거가 짓누르는 무게로 받아들여야 한다. 엘리, 리즈, 토마스 역시 찰리와 마찬가지로 상처와 결함을 안고 있다. 그들이 마주하는 찰리의 거대한 신체는 곧 그들을 옥죄는 과거의 무게인 셈이다. 

찰리의 거대한 신체가 의미하는 것
 
 영화 <더 웨일>의 한 장면

영화 <더 웨일>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는 과거에 시달리며 자기 파괴를 일삼는 인물들을 구원하는 과정을 놀랍도록 복합적이고 미묘한 톤으로 그린다. 그럼으로써 인물에 대해 판단하는 걸 관객에게 맡긴다. 마치 영화에서 계속 언급되는 소설 <모비딕>처럼 다양한 해석을 원하는 모습이다.

영화가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을 열린 채로 두기에 어떤 면에선 공감하기 어려운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1990년대~2000년대에 <원시 틴에이저>(1992), <조지 오브 정글>(1997), <미이라>(1999), <일곱가지 유혹>(2000), <크래쉬>(2004),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2008) 등에서 주인공으로 분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인기 스타 브랜든 프레이저는 <더 웨일>에서 보철 모형과 수트, 분장을 하고 일생일대의 연기를 하며 보는 이의 희로애락을 끌어낸다. 그는 <더 웨일>이 "사랑과 구원에 관한 이야기"이자 "어두운 곳에서 빛을 찾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영화 촬영 중 당한 부상과 수술, 영화계 주요 인사에게 당한 성추행, 성대 결절, 우울증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던 배우의 실제 삶은 캐릭터의 불안과 혼란을 더욱 진정성 있게 만든다.

<더 웨일>의 찰리 역으로 숱한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한 브랜든 프레이저가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수상에 실패하더라도 브랜든 프레이저는 미국의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의 평가처럼 "한 시대를 대표할 연기"를 펼쳤다. 2022년 제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초청작.
대런 아로노프스키 더 웨일 브랜든 프레이저 세이디 싱크 홍 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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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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