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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세상에서 잠시 기분전환 할 수 있는 재미난 곤충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 맞춘 흥미로운 이야기이므로 얘깃거리로 좋습니다. [기자말]
조선시대 산수화에서 발전한 한국화에는 몇 가지 전형적인 소재가 늘상 등장하는데 그 의미가 남다르다. 대표적인 예가 문인을 비롯하여 직업 화가들도 즐겨 그렸던 풀벌레 그림인 초충도다. 이 가운데 나비는 장수와 부부의 화합을 뜻하며 매미는 선비의 학문 성취를 의미하고 메뚜기와 잠자리는 자손번창, 딱정벌레는 입신양명을 기원하는 식이다.

선조님들은 맨드라미로 과거 급제 후 모란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여뀌로 은퇴하는 삶을 축원했다. 다산을 발원하면서 가지와 수박, 오이, 참외 등을 그렸으며 국화는 불로장생의 염원을 담았다. 동물에서는 고양이와 까치가 장수를 기원한다. 한자로 '고양이 묘'는 중국어로 70세를 뜻하는 늙은이 모(耄)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까치는 '좋은 소식을 갖고 온다'는 의미다. 우리 속담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했다. 초충도에 묘사된 여러 곤충에 대해 알아보자. 지금도 살아서 움직일 것 같은 기운이 느껴지며 손을 대면 화폭 속에서 뛰쳐나올 것 같은 걸작들이다.

초충도에 등장하는 여러 풀벌레의 상징성
 
8폭짜리 병풍으로 만들어진 4번째 그림.
▲ 신사임당 초충도. 8폭짜리 병풍으로 만들어진 4번째 그림.
ⓒ 중앙박물관 e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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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의 초충도는 '8폭 짜리 병풍(초충도병(草蟲圖屛)'으로 만들어졌다. 나비를 비롯하여 개미, 매미, 방아깨비, 벌, 사마귀, 쇠똥구리, 여치, 잠자리, 하늘소 등등 지금도 우리곁에 살고 있는 여러 곤충이 등장한다. 이 중에 <양귀비(가선화)와 풀거미>라는 작품이 있다. 수려하게 피어난 주황색 꽃 위로 나비가 날고 좌측 아래에는 검은색 곤충이 한 마리 그려져있다.

죽은 나무 위를 정신없이 헤매며 돌아다니는 모습으로 인하여 산맴돌이거저리라고 한다. 야행성 딱정벌레이며 무광택의 검은색 몸매라서 서구권에서는 어둠속벌레(darkling beetle)라고 부른다. 암놈은 평생 동안 약 500개의 알을 낳는데 2주 정도 지나면 부화하여 죽은 나무를 파먹으며 자라므로 숲의 분해자 역할을 한다.
 
거저리 애벌레인 밀웜은 맛있는 간식거리다.
▲ 산맴돌이거저리. 거저리 애벌레인 밀웜은 맛있는 간식거리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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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나무에 피어나는 버섯도 간식으로 먹고 동물의 사체도 후식으로 삼는다. 곡물 창고에서도 많이 발생하므로 서양에서는 곡물벌레(Mealworm)라고도 한다. 갈색 줄무늬의 매끈한 몸매에 길이는 약 50mm 정도인 애벌레의 꼬리 끝은 숟가락처럼 생겼다. 마치 아이스크림을 동그랗게 떠내는 스쿠프(Scoop) 같은 모양인데 나무속을 파먹으며 후진을 쉽게 하기 위해 진화한 결과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대량 증식이 용이하여 식용이자 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튀기거나 구운 밀웜(갈색거저리)은 고소한 맛이 나므로 간식으로 인기가 많다. 2017년에는 스위스에서 건강식품으로 승인되었으며, 각각 2020년과 2021년에는 우리나라와 EU에서도 식품으로 허가가 났다.

자손번창을 기원하는 잠자리

<동의보감>에 이르기를 잠자리는 '양기를 북돋우고 음경을 따뜻하게 하며... 볶아서 약으로 사용한다'고 적고 있다. 배마디가 길게 뻗은 모양으로 인해 한국화에서는 남성의 생식기를 의미하며 이는 곧 자손이 번창하기를 소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여뀌와 검은잠자리>에서는 사마귀와 물잠자리, 맵시벌이 등장한다.
 
여유로운 춤사위로 나는 모습이 눈에 띈다.
▲ 금속성 느낌의 물잠자리. 여유로운 춤사위로 나는 모습이 눈에 띈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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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잠자리는 금속성 느낌을 강하게 주는 청동색 몸매에 진한 사파이어 날개를 가진 녀석이다. 5~7월까지 깨끗한 물이 흐르는 개울가에서 볼 수 있으며 하늘거리며 나는 모습이 여인네의 춤사위처럼 느껴진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외모를 가졌으며 눈치가 빨라 인기척이 느껴지면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실잠자리(damsel fly) 무리에 속하는 물잠자리는 영어권에서 아가씨(demoiselle) 또는 보석날개(jewel wings)라고 불리운다. damsel은 프랑스어로 마 드모아젤(ma demoiselle)에서 유래한 말이다. '백마 탄 기사를 기다리는 처자'를 뜻하는데 바람에 나부끼듯이 살랑거리며 날갯짓을 하는 모습으로 인해 이름 지어졌다. 물잠자리과(Calopterygidae)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그리스어 'kalos'와 날개를 의미하는 'ptery'의 조합이다.

현실적인 염원을 담은 풀벌레들
 
연미복을 입은 사마귀와 물잠자리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 여뀌와 검은 잠자리. 연미복을 입은 사마귀와 물잠자리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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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의 사마귀는 선홍색 배에 연두색 연미복을 입고 등장한다. 카니발리즘으로 유명한 사마귀는 한국화에서 용맹스러움을 상징하는 곤충이다. 장자의 당랑거철은 무모함의 대명사로 해석하지만 회남자의 버마재미는 두려움을 모르는 도전자로 그리고 있다. 분수를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무모할 정도의 용맹스러움도 갖춰야 한다.

본 연재에서도 북경여치를 소개하였다. (관련 기사 : 귀뚜라미 싸움에 전국민이 이 난리였다고? https://omn.kr/1vmqf) 옛날부터 한족들은 여치를 괵괵(蟈蟈) 또는 괵아(蟈兒)라고 부르는데 '청개구리 처럼 우는 소리를 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치 우리가 개를 멍멍이라고 칭하는 것과 같다. 괵아와 관아(官牙)는 발음이 비슷하므로 '관청에 들어간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즉, 과거급제하여 높은 관직에 오르는 소원을 담았다. 초충도에서는 여치와 방아깨비, 베짱이가 혼재되어 나타나며 이 모두가 입신양명을 기원하며 넣은 것이다. 현대인들조차 이 세 곤충의 차이를 알지 못하니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인식은 매한가지다. 너무 큰 것은 인식할 수 없으며 작은 존재는 알지 못한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한국우취연합의 월간 우표에도 같이 등록됩니다.


태그:#신사임당 , #초충도, #한국화, #산맴돌이거저리, #물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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