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팍팍한 세상에서 잠시 기분전환 할 수 있는 재미난 곤충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 맞춘 흥미로운 이야기이므로 얘깃거리로 좋습니다. [기자말]
18세기를 살다간 조선의 화가 중에 겸재 정선과 현재 심사정은 후대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인물이지만 극히 대비되는 삶을 살았다. 스승 정선은 상류층의 화려한 관심을 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제자 심사정은 평생을 가난에 시달리며 자기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진경산수화를 개척한 정선은 인품이 진실하므로 사람을 대하는데 성심을 다했다. 신기에 가까운 그림 솜씨와 넉넉한 재물, 부족함이 없는 관운이 함께하며 84세까지 장수하였다.

겸재의 진경산수화는 결코 조선에 한정된 내수용이 아니었다. 청나라에서는 진경(眞境)이라고 하며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인기를 독차지했고 일본에서는 '신조선 산수화'라는 이름으로 유행을 주도하며 우키요에 판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우키요에가 서양으로 넘어가 인상파를 형성케 만든 원동력이었음은 본 연재 17화(관련 기사 : 곤충 세상의 도예가, 큰호리병벌의 집짓기)에서 살펴봤다.

정선은 당대의 글로벌 슈퍼스타였다. 집권층의 탄탄한 지원을 얻었을뿐 아니라 시류를 잘 탈 수 있었기에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드높일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스타 탄생은 국력에 비례한다. 자본가의 후원이 필수적이며 시절도 잘 만나야 하고 대중의 열광도 빠뜨릴 수 없다. 물론 자신의 능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겸재의 뛰어난 그림은 사천 이병연의 시가 더해지면서 천하에 이름을 떨친다. 사천은 청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겸재의 그림을 팔게 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자면 수완이 뛰어난 화상(Art dealer)의 일을 맡긴 셈이다. 그렇게 겸재의 작품은 대외적으로 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을 받으며 수집가에게 간택이 되었다.

시하면 이사천 그림은 정겸재

이규상이 지은 <병세재언록>에서는 '시하면 이사천 그림으로는 정겸재'라고 적고 있다. 이병연의 시는 정선의 그림과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오성과 한음에 비유될 정도로 둘의 우정은 남달랐다. 두 사람의 콜라보로 남은 걸작이 바로 <경교명승첩>이며 보물로 지정되어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겸재 정선의 초충도 그림 중 한점.
▲ 석죽호접. 겸재 정선의 초충도 그림 중 한점.
ⓒ 중앙박물관 e뮤지엄.

관련사진보기


정선은 노년에 여러 초충도를 남겼다. 석죽호접(石竹蝴蝶)에서는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호랑나비의 인편 하나하나까지 묘사하여 금방이라도 화폭에서 나와 날아다닐 것 같은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호랑나비가 꿀을 찾아 내려앉으려하는 패랭이꽃에는 이미 메뚜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언뜻보면 풀무치 같기도 하며 몸매를 보면 등검은메뚜기 혹은 각시메뚜기로 추정된다. 셋 다 비슷한 모습이지만 생태는 조금 다르다. 풀무치는 본 연재 15화(관련 기사 : 사막메뚜기 무리, 인간을 기아의 고통으로 몰아넣다)에서 살펴봤듯이 대량 발생하면 농작물이 남아날 수 없다. 5월~11월까지 볼 수 있으며 평상시에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지만 서식환경이 맞아 떨어져 많은 수가 모이면 해충이 될 수 있다.

몸집이 85mm 정도로 커지며 몸매도 거무스름하게 바뀌고 식탐이 거세져 주변의 식물은 모조리 갉어먹는다. 먹이가 떨어지면 떼를 지어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피해 지역이 넓어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풀무치가 창궐하는 경우는 없으며 오히려 미래의 친환경 먹거리로 이용되고 있다. 2021년에 농촌진흥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의해서 식품 원료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강변의 풀밭에서 흔한 메뚜기지만 점점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 등검은메뚜기. 강변의 풀밭에서 흔한 메뚜기지만 점점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 이상헌

관련사진보기

 
등검은메뚜기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으며 몸길이는 약 40mm 정도이고 활동 시기는 7월~11월까지다. 각시메뚜기의 몸 크기는 60mm까지 자라며 중부 이남 지역에서 일년 내내 볼 수 있다. 전자가 알로 월동하는 반면 후자는 성충으로 겨울을 나기 때문이다.

동물과 풀벌레의 듀엣이 부귀영화를 노래하다

추일한묘(秋日閑猫, 가을날 한가한 고양이)에는 탐스럽게 열린 국화꽃 아래 검은 고양이가 한가로이 자태를 가다듬고 있으며 그 위로는 꿀벌이, 아래에는 방아깨비 암놈이 긴 다리를 뽐내며 걸어가고 있다. 셋은 서로 무관심하게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어 여유로움을 더해준다.

계관만추(鷄冠晩雛, 맨드라미와 늦병아리)에서는 맨드라미 사이로 병아리가 어미 닭을 쫓아 마당을 활보하고 있으며 그 위로 왕잠자리가 하늘을 날고 있다. 맨드라미는 꽃 모양이 닭벼슬 처럼 생겨서 '계관화'라고도 부르며 벼슬이 겹쳤으니 최고 높은 관직에 오르라는 의미다. 왕잠자리는 4~11월까지 전국의 연못이나 저수지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환경적응력이 뛰어나 3급수의 하천에서도 잘 살아간다.
 
11월까지 볼 수 있는 매미.
▲ 늦털매미. 11월까지 볼 수 있는 매미.
ⓒ 이상헌

관련사진보기

 
매미는 본 연재 18화(관련 기사 : 임금의 머리 꼭대기에 앉았던 매미)에서 알아봤듯이 5덕을 가진 곤충으로서 여러 화첩에 단골소재로 등장한다. 홍료추선(紅蓼秋蟬)과 송림한선(松林寒蟬)에는 말매미와 참매미가 담겨있다. 홍료는 여뀌를 말하고 추선은 '가을 매미'라는 뜻이다. 여뀌는 개울가에 흔하게 자라는 풀로써 예로부터 지혈제로 사용했으며 어린 순은 데쳐 먹거나 향신료로 썼다.
 
제주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 뿔소똥구리 표본. 제주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 이상헌

관련사진보기

 
붉은 여뀌는 마칠 료(了)와 발음이 같아 '학업을 끝낸다'는 의미를 갖는다. 매미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활동하는 녀석은 세모배매미로서 4월 하순에 출현하고 가장 늦게까지 볼 수 있는 놈은 11월 초순까지 울어대는 늦털매미다. 마지막 하마가자(蝦蟆茄子)에서는 탐스럽게 영근 가지 아래로 두꺼비와 소똥구리가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복두꺼비는 지금도 우리곁에서 살아가지만 소똥구리는 전멸했기에 그림에서나 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한국우취연합의 월간 우표에도 같이 등록됩니다.


태그:#겸재 정선, #풀무치, #현재 심사정, #사천 이병연, #우키요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