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통사극을 대표하는 드라마
▲ 용의 눈물  정통사극을 대표하는 드라마
ⓒ kbs

관련사진보기

 
리모컨 주도권이 없던 어린 시절 아버지가 틀어놓은 드라마 <용의 눈물>을 보며 느꼈던 전율을 아직 기억한다. 총제작비 160억 원, 1996년 11월에 시작해 1998년 5월까지 159회 방송, 시청률 40%대의 고공행진을 기록했던 '용의 눈물'은 이후 대한민국 드라마 사극의 기준이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이 1993년에 방대한 분량이 번역을 마쳤고 이를 토대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제작의 물꼬를 텄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고려말 조선초의 과도기적인 복식에 대한 고증이 잘 이루어졌다는 평가도 있는데 역사적 사실과 그 당시의 생활, 문화를 녹아내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결과였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꾸준히 <태조왕건>, <불멸의 이순신>, <무인시대> 등이 제작됐다. 하지만 대하사극의 경우 세트나 의상제작비, 소품 등의 제작비가 크게 들기 때문에 공영방송인 KBS나 MBC에서 제작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투자대비 시청률이 시원스럽게 나오지 않자 2014년에 제작된 <정도전>을 끝으로 결국 정통사극보다는 퓨전사극 쪽으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퓨전사극의 끝판왕... 조선시대 좀비라니
▲ 조선판 좀비 스릴러 <킹덤> 퓨전사극의 끝판왕... 조선시대 좀비라니
ⓒ 넷플릭스

관련사진보기

 
최근에 제작되는 사극은 거의 모두가 '퓨전사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9년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킹덤>은 조선시대라는 시대만을 가져와 '좀비'라는 허구적 상상력을 더해 만들었다. 시대적 배경을 가져왔을 뿐 역사적 고증의 잣대를 들이대면 흥행에 성공한 이 드라마의 점수는 형편없을 것이다. 그럼 이 드라마는 잘못된 드라마일까?

고증에 충실하게 만들어졌어도 드라마는 상상력이 포함된 이야기다.  완벽한 역사적 고증은 학문적인 영역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역사는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고, 대부분이 왕이나 양반 위주의 문헌기록을 중심으로 연구되고 있다. 물론 한자나 한글을 알지 못했던 피지배층의 삶은 기록되지 못하였는데 그럼 그것은 역사가 아닐까? 

역사적 사실 vs 역사적 상상력 

"역사"에 대한 고전적 정의를 생각해보자.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크게 구분한다고 배운다. 사실로서의 역사는 아득히 먼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일어났던 모든 과거를 의미하고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과거의 기록을 토대로 역사가에 의해 주관적으로 남겨진 것을 말한다.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는 과연 온전한 역사라고 할 수 있을까? 기록되지 못한 역사는 역사가 아닌 걸까?

기록된 역사보다 기록되지 못한 역사가 더 많을 것이다. 모든 것을 남길 수 없으며 혹은 남길 수 있지만 남기지 않기도 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광해군일기>에 "숨겨야 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라"라는 단 한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력이 더해져서 대중의 흥미와 궁금증을 이끌어내면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물론 혹자들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왕을 대역한 이가 있다니... 그렇다면 우리는 기록된 사실에만 묶어 상상력의 영역은 거세해야하는 것일까.

역사 드라마에 대한 인식 
 
역사를 다루는 드라마는 어떻게 제작해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방송의 역사재현에 대한 설문 역사를 다루는 드라마는 어떻게 제작해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방송심의위원회

관련사진보기

 
1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심의정책 연구개발 사업 연구로 한국언론법학회에서 작성한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 인식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2022년 10월 전국 20세 이상 남녀 600명에게 조사한 결과 역사재현 방송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보통이다'라고 응답한 비율(39.5~45.8%)이 높았다.

역사 드라마의 바람직한 제작 방향을 묻는 설문에서는 역사적 사실만을 다루어야 한다(42.7%), 역사적 사실과 작가, 제작자의 상상력을 함께 반영할 수 있다 (55.5%) 작가, 제작자의 상상력에 맡겨야 한다(1.8%)로 조사되었다.

이 항목은 세대별로 차이를 보이는데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함께 반영할 수 있다"에 B세대(58세 이상)은 46.5%, Z세대(18~27세대)는 66.7%로 조사되어 젊은 세대일수록 상상력에 조금 더 수용적인 입장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허용 가능한 상상력의 정도는 21~40%가 적당하다가 가장 높게 나왔다. 이는 연령과 상관없이 역사적 상상력이 그 정도는 괜찮다고 여긴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역사는 드라마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던져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 왜 역사를 드라마에서 배우려고 하는 걸까? 역사는 역사고 드라마는 드라마다. 역사적 사실과 고증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드라마는 정말 좋은 드라마라 평가받는다. 

하지만 역사는 교과서에서 제대로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역사공부는 뭔가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느낌이기에 만화나 영화, 드라마와 같은 것을 계기로 역사적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고 해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인과 손님이 바뀐 느낌은 나뿐일까. 

역사드라마가 역사적 사실'만'을 다루어야 한다면 드라마가 아니라 역사수업이다. 우리는 드라마를 보는 것이지 수업을 받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먼저 바로 선 다음에 보는 드라마에서는 오히려 잘못된 고증을 알아차리고,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에 대한 기발함을 칭찬할 수도 있다. 

정통사극이라 고증이 되어 있고 퓨전사극이라 엉터리라는 이분법적 사고보다는 올바른 역사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진 드라마는 티가 날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봤던 <용의 눈물>처럼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좋은 드라마였다고 기억되는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 역사,문화,문화재,박물관,책,삶에관한 글을 씁니다. 지난해 <과학으로 보는 문화유산>이라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태그:#사극, #정통사극, #퓨전사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 문화, 문화재, 박물관, 미술관, 여행, 책, 삶에 관한 글을 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