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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학교 과학실의 '그분', 저는 과학실무사입니다에서 이어집니다)

- 모든 지역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무직군 직종통합을 하는 지역이 있습니다. 충북에서는 직종통합이 언제, 어떻게 진행됐나요?

"2013년 3월 1일부터 통합됐어요. 육아휴직 중이었는데, 관련 전화가 와서 2월쯤에 교무실에 갔던 기억이 나요. 본인 의사가 아니면 직종통합 안 해도 된다고 해서 안 한다고 하고 과학실무사로 근무했어요. 그런데 1년도 안 돼서 통합했어요. 교무부장 선생님이 직종통합 하자고 좋게는 이야기하는데, 기존에 계셨던 교무실무사님과 엮는 거죠. 교무실무사 선생님도 저를 보는 눈빛이 안 좋은 것 같고요. 통합하는데 단서를 달았죠. 이름뿐인 통합이면 하는데, 업무는 안 받겠다고 했죠. 근무 장소는 직종통합 전 근무장소(과학실)로 하겠다고 했어요.

충북은 (과학실무사) 대부분이 방학에 일이 없고 급여도 없는 '방학중 비근무'였어요. 교육청에서 직종통합하면 방학 때도 일하는 '상시근무'로 바꿔주겠다고 했어요. 그러면 방학에 급여가 생기잖아요. 여기서 직종통합을 많이들 선택했죠. 상시근무를 할지 방학중 비근무를 할지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방학중 비근무로 있었어요. 아이들이 어렸거든요. 나름 본인 의사를 물어본 거죠.

상시근무로는 2019년 3월 1일에 바꿨어요. 전보를 할 시점이 됐거든요. 전보는 상시근무자는 상시근무자끼리, 방학중 비근무자는 방학중 비근무자끼리, 같은 근무조건이어야 갈 수 있으니까요. 방학중 비근무자가 거의 없었어요. 방학중 비근무자이면서 과학실무사였던 사람이 청주에서 10명 안팎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이 사람들끼리만 전보를 돌리니까 제가 전보 갈 수 있는 학교가 거의 없었죠.

직종통합할 때 처음에는 반발을 심하게 하기도 했고 기분도 나빴어요. 통합할 당시 교무실무사 선생님이 업무 많이 주지 않을 테니까 통합해달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통합할 때 형식적으로는 의사를 물어보긴 했지만, 교무실무사 선생님이나 전보, 상시근무로 전환하는 것 등과 엮여서 한 거라 온전히 자발적인 내 의사라고 볼 수는 없죠.

충북에서는 교무, 과학, 전산 직종이 합쳐졌는데, 과학 직종의 반발이 심했어요. 교무 관련 업무가 많이 넘어오니까요. 가장 크게 반발했던 것은 교무실무사로 이름이 바뀌니까, 교무실 와서 근무하라는 것이었어요. 과학실에 상주했던 사람한테요. 관리자들이 그저 다 같은 교무실무사로 알았던 거죠. 공문 업무는 주 업무가 아닌데도 공문을 접수하라고도 했고요. 그래서 단체협약에 근무 장소에 관한 내용을 넣었죠. 하도 말이 많았으니까요. 여튼 업무를 받고 일하면서 (업무를) 배웠어요. 전혀 안 하던 업무를 하게 됐죠. 교무실무사 연수를 들었는데 도움이 크게 됐는지는 모르겠어요."

직종통합에 대해 다른 과학실무사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겉으로는 당사자 의사를 묻고, 상시근무나 방학중 비근무도 선택할 수 있었고, 통합을 거부하는 것도 가능했어요. 의사를 물은 게 맞긴 하는데, 학교 분위기상 (선택을) 할 수가 없었죠. 저는 눈치 받으면서도 직종통합을 하지 않긴 했는데, 대부분 그렇게 못 했을 거예요. (직종통합을) 안 하고 싶었으나 학교에서 강압적이었고, (어쩔 수 없이 직종통합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였어요. 형식적으로는 의사를 물어봤으나 실질적으로는 할 수밖에 없었던, 결론이 정해져 있었던 이야기죠."

누구나 새로운 일은 낯설 수밖에 없고,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다. 본인이 원해서 하는 거라면 힘들어도 즐겁게 할 수 있겠지만, 원하지 않았거나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거라면 힘들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충분한 업무 연수가 진행되지 않고 일하면서 배워야 하기에 더 힘이 들 수밖에 없다.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교육공무직은 '아무 일이나 하는 사람', '잡일 하는 사람'으로 인식될 때가 있다. 하주영 선생님처럼 과학실무사인데 사서 업무를 하라고 하는 등 본인 동의 없이, 고유 업무와는 관련 없는 업무를 '학교장 재량'이라는 이름으로 맡기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단체협약에 '구성원 간 민주적인 충분한 협의를 통해서 분장한다', '업무부장 협의 시 참여를 보장한다', '업무분장표 분장 시 강제하지 않으며 조합원과 협의한다' 등의 문구를 넣어 강제적인 업무분장을 막고 있다.
 
충북 지역의 단체협약. 직종별 협약에 직무수행에 관해 구성원 간 민주적인 충분한 협의를 할 것, 근무 장소를 가급적 직종통합 이전의 근무 장소로 할 것, 업무분장할 때 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 등이 규정돼 있다.
 충북 지역의 단체협약. 직종별 협약에 직무수행에 관해 구성원 간 민주적인 충분한 협의를 할 것, 근무 장소를 가급적 직종통합 이전의 근무 장소로 할 것, 업무분장할 때 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 등이 규정돼 있다.
ⓒ 신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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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게, 9년 전 과학실무사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입니다. 직종통합 등으로 인해 받은 압박과 스트레스가 극심한 게 원인이라고 들었는데, 그 경과가 어땠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2013년 8월 17일에 일어난 일이죠. 이 분이 나이가 많으셨어요. 적지 않은 나이에 직종통합을 하라는 건 큰 스트레스죠. 몇십 년간 자기 업무를 하다가 새로운 업무를 받아들이라고 하는 건데요. 관리자들이 잘못한 거죠.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되게 심했을 거예요. 쉰 넘은 사람에게 갑자기 업무 더 준다면서 다른 곳으로 가서 일하라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겠죠."

- 돌아가신 과학실무사님은 당시 병가에 대해 자세히 안내를 받지 못했고, 제대로 쓰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는 이런 경우들이 비일비재했다고 들었는데요. 요즘은 어떤가요?

"그 당시 교육공무직은 이도 저도 아닌, 소속감 없는 존재였어요. 행정실 소속이었다면 행정실에서 안내해줬을 거고, 교무실 소속이면 교감 선생님이 챙겨줬을 텐데요. 학교에서 잘 안내해주고 챙겨줬다면 그 과학실무사 선생님도 그렇게까지 내몰리진 않았을 거예요. 지금은 여러 가지를 많이 알려주고 좋아졌죠. 노조가 만들어지고, 노동조합의 힘이 커요. 이젠 공무직에 함부로 못 해요."

2013년 8월 17일, 충청북도 어느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한 여성이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 학교에서 얼마 전까지 근무하다가 퇴직한 과학실무사였다. 그는 당시 집안의 가장이었고, 지병을 앓고 있었다. 직종통합이 진행되자 압박과 스트레스, 업무 과중에 시달렸고, 몸의 지병이 더 악화했다.

그는 유급병가 14일과 연차휴가 12일을 쓰고, 휴가를 더 쓰지 못하게 되자 퇴직했다. 그러나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병가를 무급으로 60일까지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병가를 다 쓰지 않았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받을 요건이 안 됐다. 그는 병가 관련 내용을 몰랐고, 그로 인해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으니 복직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청와대에 민원까지 넣었지만, 행정처리가 끝났기 때문에 복직이 안 된다는 답을 들었고, 생계가 막막해진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숨진 과학실무사의 지병이 악화하고 퇴직하게 된 일차적인 이유는 직종통합이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문제도 불거졌다. 당시 공무원은 60일 유급병가와 1년간의 유급 질병휴직을 쓸 수 있었으나, '학교비정규직'으로 불렸던 공무직은 유급병가 14일을 포함한 최대 60일의 무급병가 외에는 다른 제도가 없었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에서 만든, 충북 과학실무사 추모 뱃지
 전국교육공무직본부에서 만든, 충북 과학실무사 추모 뱃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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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 고충은 뭔가요?

"일은 하다보면 다 하게 돼요. 결국 사람 문제가 크죠. 업무적으로 엮이고, 업무에서 오는 갈등 문제가 어렵죠.

그리고 과학 교과서가 국정교과서에서 검정교과서로 바뀌었어요. 학교마다 교과서가 달라지는 거죠. 국정교과서일 때는 전국이 같은 걸 쓰니 그거만 공부하면 됐고, 서로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었는데요. 교과서가 일하는 중간에 바뀔 수 있고, 전보 간 학교에서 바뀔 수 있으니 그때마다 새롭게 공부해야 하는 게 어렵죠. 그래서 연수가 필요해요. 수업 전에 사전실험하는 선생님도 계시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연수가 코로나 이후로 없어요. 온라인 강의 정도만 듣는데, 직접 만나서 강의를 듣거나 하는 건 없어요. 방학 기간에 했으면 좋겠어요."

- 이 기사를 볼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학교에 교사, 공무원뿐 아니라 교육공무직이 있고, 그 안에도 직종이 많은데 과학실무사나 교무실무사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직종을 홍보하자, 책자나 카탈로그를 만들어서 배포하자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과학 수업을 할 때 교사와 학생만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직접 가르치진 않지만, 과학 수업에 우리도 보탬이 되고, 학교에 필요한 존재라는 거죠.

요즘은 '교육공무직'이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학교회계직'이라고 했어요. 학교회계직이던 시절에 처음 생긴 직종이 과학실무사예요. 당시는 '과학보조'였죠. 선생님들이 수업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약품이나 실험을 관리하는 직종이 필요하다고 해서 생긴 거죠. 오래 근무하신 분들은 이 점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계세요. 그런데 일반인과 학생들은 잘 모르잖아요. '우리도 학교에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요.

아... 그리고 서운한 건, 선생님들이 우리의 도움을 받고 고맙다고 하는데, 정작 수업할 때 첫 학기 때는 왜 (우리를) 소개해주지 않을까요? 나중에서야 학생들이 저에게 '선생님은 누구세요?' 하면 내가 과학실무사라고,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해요. 준비물 가지고 오라고 하면 나에게 오라고 하는데, 소외감이 들어요."

덧붙이는 글 | <노동과 세계>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교육공무직, #학교, #과학실, #과학실무사, #교육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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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교육선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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