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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님 산문모음.
 김지하 님 산문모음.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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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6, 70년대의 화두가 저항이었다면 80년대 이후는 생명사상이다.

1970년대 말 어느 봄날 서울구치소에서 우연히 시멘트 벽돌 틈새에 개가죽나무가 뿌리내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출감 이후 생명사상의 탐구와 환경운동에 적극 나섰다. 

'생명(사상)'은 모든 종교ㆍ철학ㆍ사상의 근본이다. 불교에서는 '불살생'을 수행의 목표로 내세운다. 그는 <생명학(1)>의 부제를 <생명사상이란 무엇인가>라 하고, <전집(5)>의 제목을 "생명, 이 찬란한 총체"로 달았으며, 생태학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의 대담집 <생명과 자치>를 출간하고, <생명으로 쓰는 시>라는 시집을 내기도 했다. 이보다 앞서 신홍범과의 7시간에 걸친 대담의 주제는 <생명사상의 전개>였다.

생명! 
얼마나 긴 시간 생명노래를 불러왔던가! 아마 긴 증폭과정이 뒤따라 올 것이라는 날카로운 예감이 머리를 옥죄인다. 지금은 명상과 변혁의 시대다. 내면의 평화와 외면의 변혁, 안으로는 신령이 밖으로는 기(氣)가, 즉 영성과 생명이 동시에 움직이고 상호 격발해서 함께 움직이는 모순 동거의 시대다. 

생명의 변혁과 영성의 평화는 이제 누구나 납득하는 시대의 요구가 되었다. 
시민운동은 변모할 것이다. 
당연하다. 
종교계도 이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사활(死活)의 땅금 안으로 들어섰다. 
당연하다. (주석 1)
몸짓으로 쉽게 설명하는 김지하씨
▲ 몸짓으로 쉽게 설명하는 김지하씨 몸짓으로 쉽게 설명하는 김지하씨
ⓒ 조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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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생명사상은 책상 머리와 사유의 과정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감옥에서 싹틔우고 고난의 과정에서 체화숙성되었다. 그렇다고 그의 독창적인 산물도 아니다. 동학의 최시형, 그의 사상을 이끌어낸 장일순 등 선학들의 알짬을 그가 현대화하고 시대담론으로 이슈화한 것이다. 제아무리 훌륭한 유물이라도 발굴하지 않고 검증자가 없으면 무(無)에 속한다. 그의 <생명>이란 시 전문이다.

 생 명

 생명
 한 줄기 희망이다
 캄캄 벼랑에 걸린 이 목숨
 한 줄기 희망이다

 돌이킬 수도
 밀어붙일 수도 없는 이 자리
노랗게 쓰러져버릴 수도
뿌리쳐 솟구칠 수도 없는
이 마지막 자리

어미가
새끼를 껴안고 울고 있다
생명의 슬픔
한 줄기 희망이다. (주석 2)

'생명'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없고 제대로 아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생명에 대해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일체의 이론은 회색이고 생명의 황금수(黃金樹)만이 푸른빛이다.", 슈바이처가 <나의 생애와 사상>에서 "인간의식의 가장 직접적인 사실은, 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에 주어진 살려고 하는 생명이다"와 같은 적절한 정의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슈바이처의 생명철학의 실천상이다.

"나는 나무에서 잎사귀 하나라도 의미 없이는 따지 않는다. 한 포기의 들꽃도 꺾지 않는다. 벌레도 밟지 않도록 조심한다. 여름밤 램프 밑에서 일할 때 많은 벌레가 타서 책상 위에 떨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창문을 닫고 무더운 공기를 호흡한다."

김지하의 생명관은 지극히 포괄적이다.

그러니까, 이 '생명'이란 것을 이제까지는 예컨대 자연과학에서도 "무기물이냐 유기물이냐", "생물이냐 무생물이냐"로 갈라보았는데, 갈라보는 것도 일단 중요시하고 그것도 포괄하면서도 일체의 존재, 삼라만상이 다, 우리가 아직, 우리의 과학이 아직 거기까지 충분히 투시해 들어가고 증명해 내지 못하고 가설을 세우지 못해서 그렇지 실제로 몇 천억 개가 있다는 우주, 몇 천만ㆍ몇 천억 개의 태양계와 은하계, 이 전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일체 총 세계, 소위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시방세계'(十方世界) 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가, 있는 일체의 먼지 하나까지도 전부가, 우리가 아직 그 섬세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지 무생물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살아 있는 '삶의 총체'라고 보는 데서부터 생명의 제일차적인 개념을 잡아 나가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주석 3)


주석
1> <생명학(1)>, <책 머리에>, 6~7쪽, 화남, 2003.
2> <한 사람이 태어나므로>, 492쪽.
3> <인간 해방의 열쇠인 생명>, <밥>, 19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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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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