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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형 추모비 건립 당시의 장일순 선생
▲ 최시형 추모비 건립 당시의 장일순 선생 최시형 추모비 건립 당시의 장일순 선생
ⓒ 모심과 살림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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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와 소련군 그리고 이승만 정권에서 옥살이를 치룬 함석헌은 "자유는 감옥에서 알을 까고 나온다"는 명언을 남겼다. 김지하는 긴 수형생활을 하는 동안 학문적인 성취도 많았지만, 한 가지를 꼽으라면 '생명사상'의 싹을 틔웠다고 할 것이다.

생명사상은 그가 출감한 이후 1980년대에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싹 틔움'은 감옥에서였다. 모든 철학ㆍ사상ㆍ종교 등이 그렇듯이, 학문은 선행자들의 오랜 연구가 있음으로 하여 가능한 것이다. 생명사상 역시 그가 한때 원주에서 사부처럼 모셨던 무위당 장일순으로부터 학습한 최제우와 최시형의 동학사상과 생명사상에서 기원한다.

마침 봄이었다. 아침나절 쇠창살 사이로 투명한 햇살이 비쳐들 때 밖에서 날아 들어온 새하얀 민들레 꽃씨들이 그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이며 하늘하늘 춤추었다.

그것.
그리고 또 쇠창살과 시멘트 받침 사이가 빗발에 흠이 패어 그 흠에 흙먼지가 날아와 쌓이고 거기에 멀리서 풀씨가 날아와 앉은 뒤 또 비가 오면 그 빗방울을 빨아들여 무럭무럭 자라나니, 그것을 일러 '개가죽나무'라 한다. 그것, 그 개가죽나무가 그날따라 유난히 푸르고 키가 크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날, 운동을 나갔다가 붉은 벽돌담 위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담 위에 점점점점, 무슨 점들이 찍혀 있어 눈살을 모으고 자세히 보니 풀들이었는데, 하이고! 그 꼴에 풀마다 쬐끄맣고 노오란 꽃망울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달고 있는 게 아닌가! (주석 12)
김지하 님 산문모음.
 김지하 님 산문모음.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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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현상이라도 보는 이에 따라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수많은 수인들이 드나들었을 감방의 벽돌 담 위에 생명체가 꿈틀대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안목 곧 심안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김지하의 글을 더 인용한다.

눈이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감방에 돌아와 앉자마자 울기 시작해서 두세 시간은 족히 울었을 것이다. 우는 동안 내내 허공에서 '생명! 생명! 생명!' 하는 에코가 들려왔다. 

생명!
그렇다. 저런 미물들도 생명이매 '무소부재(無所不在)'라! 못 가는 곳 없고 없는 데가 없으며 봄이 되어서는 자라고 꽃까지 피우는데, 하물며 고등생명인 인간이 벽돌담과 시멘트 벽 하나의 안팎을 초월 못해서 쪼잔하게 발만 동동 구른대서야 말이 되는가?

생명의 이치를 깨닫고 몸에 익힌다면 감옥 속이 곧 감옥 바깥이요, 여기가 바로 친구들과 가족이 있는 저기가 아니던가!

눈물 속에 아롱대는 시뻘건 철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참선이 가장 좋은 '생명연습'이다. 참선 책을 들여다보자! (주석 13)

  
주석
12> <회고록(2)>, 431쪽.
13> 앞의 책, 431~432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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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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