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격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언론계 이슈를 다루면서 현실진단과 더불어 언론 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언론포커스'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고승우(민언련 이사장), 김동민(단국대 외래교수), 김서중(성공회대 교수), 김은규(우석대 교수), 김평호(단국대 교수), 박석운(민언련 공동대표), 박태순(민언련 정책위원), 신태섭(동의대 교수), 안성일(MBC 전 논설위원), 이용성(한서대 교수), 이완기(민언련 상임대표), 이정환(미디어오늘 대표), 정연구(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정연우(세명대 교수), 최진봉(성공회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 말
네이버가 돈을 풀었다. 무려 1년에 200억 원이다. 네이버는 지난 5일 미디어 커넥트 데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사 제휴 담당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깜짝 발표를 했다. 먼저 100억 원의 구독 펀드를 조성해 구독료를 지불하겠다는 것. 그리고 네이버가 뉴스 콘텐츠로 벌어들이는 광고 매출 전액, 대략 100억 원을 언론사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것. '네이버 제국'의 새로운 질서를 선포하는 모양새였다. 파격적이었지만 부족하고 아쉽고 두려웠다.
네이버와 다음이 언론사들에게 지급하는 정보 제공료가 연간 300억 원 수준이라는 걸 감안하면 200억 원이 적은 금액이라고 할 수는 없다. 유봉석 이사가 설명했듯이 포털 콘텐츠 가운데 뉴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네이버 앱에서 뉴스의 체류시간 비중은 한 자릿수 퍼센티지(%)라는 게 유 이사의 설명이다. 뉴스로 버는 것 다 내놓고 더 내놓을 테니 이 정도로 타협을 하면 좋겠다는 달콤한 제안인 셈이다.
그러나 언론사들이 이 정도로 만족할 리가 없다. 실제로 이날 참석한 언론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연합뉴스>와 뉴스 통신사들이 절반 이상을 쓸어갈 텐데 나머지를 200여 제휴 언론사들이 나눠봐야 얼마나 돌아오겠느냐는 푸념이 쏟아졌다. 더 이상 전재료를 올려줄 수 없다는 선언 아니냐는 분석도 있었고, 지난해 네이버 광고 매출 3조 원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라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달 신문협회가 발주해 공개한 논문도 화제가 됐다. 포털 체류 시간 가운데 40%가 뉴스 이용과 관련됐다고 보면 네이버와 다음의 광고 매출 가운데 3528억 원을 언론사들 몫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네이버는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광고 매출의 상당 부분이 뉴스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검색 광고인 데다, 체류 시간은 40%가 훨씬 안 되고 그나마도 전재료 등으로 뉴스는 지금도 충분히 적자라는 입장이다.
네이버가 억울해하는 사정은 이해되지만 언론사 입장에서는 네이버의 공짜 뉴스 때문에 잃고 있는 기회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공짜 뉴스는 최고의 미끼 상품이다. 뉴스 서비스로 얻는 직접적 광고 수익이 100억 원 남짓이라고 하지만, 뉴스는 모든 콘텐츠의 근간이고 결국 네이버의 핵심 상품이다. 뉴스로 버는 게 100억 원이라면 뉴스 덕분에 버는 건 훨씬 크다는 게 언론사들의 견해다.
네이버의 새 '게임 룰'이 두려운 이유이날 네이버 발표에서 진짜 두려운 것은 따로 있었다. 네이버는 독자들의 구독과 피드백 등을 지표로 만들고 인공지능 추천을 병행해 구독 펀드의 배분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기자별 페이지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언론사와 직접 계약하는 전재료와 달리 독자들의 선호와 선택에 따라 배분 금액이 달라질 거라는 이야기다. 독자들의 직접 후원에 네이버가 매칭 펀드 형태로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네이버가 제안한 게임의 룰에 따르면 당장 기자별 페이지 구독을 늘리는 게 최대 과제가 됐다. 기자들의 브랜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게 많은 언론사의 고민이었지만 이제 우리 독자들이 아니라 네이버 독자들에게 충성해야 하는 딜레마를 안게 됐다. 페이지뷰는 물론이고 댓글과 추천도 이제 돈이 된다. 심지어 언론사 후원까지 돕겠다고 한다. 한 마디로 네이버가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네이버의 선의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한국 언론의 네이버 종속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네이버에서 독립? 나가는 언론사만 죽는다. 기사 유료화? 네이버가 주는 것보다 더 벌 수 있나? 독자 후원? 네이버가 모아주겠다는데 직접 하려고? 네이버의 언론사 지원 프로젝트는 역설적으로 언론사들이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고 포기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브랜드의 해체가 가속화하고 네이버의 하청 업체로 전락하는 것이다.
네이버의 깜짝 선물이 아찔했던 건 네이버가 스스로 뉴스 플랫폼의 독점을 인정하고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종속 관계를 공고히 하는 과정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독점을 해체하는 게 아니라 독점의 피해를 보상하는 성격으로 200억 원을 내놓은 것이다. 네이버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지만 브랜드를 잃고 독자를 잃은 언론사들에게 200억 원은 변화를 모색하고 도전하기보다는 현실에 순응하라는 메시지로 읽힐 수밖에 없다.
네이버가 독자들 뒤에 숨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스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편향성 논란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평가할 만하지만, 독자들이 선택한 결과라며 뉴스 편집과 수익 배분 등에서 책임을 피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인공지능과 맞춤형 뉴스 추천으로 진화하면서 포털과 언론사의 기술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고 독점도 더욱 강화될 것이다. 한국 언론엔 독자가 없다. 네이버 독자만 있을 뿐이다.
네이버의 문제는 네이버의 외부를 잠식한다는 것이다. 네이버의 공짜 뉴스는 모든 콘텐츠 비즈니스를 무력화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의 언론사들이 네이버 바깥에서 독립적인 수익모델을 만들기는 갈수록 더 어려워질 것이다. 네이버가 먹고 살게 해줄 테니 함께 가자는 제안은 네이버에게도 언론사들에게도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네이버가 내놓은 200억 원은 달콤하면서도 위험한 독배가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