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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혁신센터 홍보파트가 혁신의 현장으로 단 하루, 출근합니다. 도시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토종 약초의 무한한 변신을 꿈꾸는 이풀약초협동조합의 실험실 '이풀랩'을 지난 5월 18일, 찾아갔습니다. 하루 동안 직접 체험하며 느낀 혁신가의 일상과 생각을 담습니다. - 기자 말

10:00 AM 뿌리는 힘이 세다

이풀약초협동조합의 노봉래 이사장을 만난 것은 2년 전 겨울,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다. 추운 날씨에 실내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던 그날과 달리, 흙과 풀을 배경으로 만난 그의 표정은 한층 밝았다. 다시 찾게 된 것은 이풀약초협동조합이 혁신파크 내 조그만 작업장을 열었기 때문이다. 넓은 창 앞으로 여러 가지 모종이 자라고, 작은 테이블 위에는 말린 약초가 놓여있는 풍경, 조그만 카페 같은 이 공간의 이름은 '이풀랩'이다.
이풀랩 내부의 모습. 정면의 창 너머엔 이풀랩의 텃밭이 면해 있다
 이풀랩 내부의 모습. 정면의 창 너머엔 이풀랩의 텃밭이 면해 있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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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풀의 약초 차 제품 ‘리프’.
 이풀의 약초 차 제품 ‘리프’.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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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와 모종삽, 목장갑 두 개를 들고 호기롭게 나섰다. 이풀랩 옆쪽의 문으로 나서면 야트막한 담벼락 아래에 풀이 늘어서 있다. 그냥 흙에 심어진 것도, 스티로폼 박스와 커피 포대에 아담하게 심어진 것도 있다. 이랑, 고랑이 확실한 밭이라기보다는 성긴 모양새가 영락없는 동네 텃밭인데, 노 이사장의 손동작은 노련하다.

길게 늘어선 약초 텃밭. 텃밭 끝쪽을 파내고 흙을 채워 자소엽을 심었다.
 길게 늘어선 약초 텃밭. 텃밭 끝쪽을 파내고 흙을 채워 자소엽을 심었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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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을 저 옆에다 옮겨 심으려고 해요. 지금은 너무 빽빽해서. 뿌리 뻗을 자리가 좀 있어야 되니까."

무성하게 난 자소엽 모종을 텃밭을 만들어 너르게 심는 작업. 노 이사장은 아주 익숙하게 이미 마련된 텃밭 옆자리를 푹푹 파냈다. 원래 식물을 심던 땅이 아니다 보니 삽날에 연신 유리 조각, 콘크리트 조각, 큰 돌멩이들이 걸린다. 모종을 심기에는 적합지 않은 땅이다. 어디선가 주워 온 시멘트 벽돌을 모로 쌓고 상토 두 포대를 깊게 쏟으니 이제 제법 밭 같은 느낌이 난다.

자소엽이 빽빽하게 자란 모종 화분에서 뿌리채 한 덩이를 파낸 뒤 두어개 줄기를 잡아 적당한 간격을 두고 심는다.
 자소엽이 빽빽하게 자란 모종 화분에서 뿌리채 한 덩이를 파낸 뒤 두어개 줄기를 잡아 적당한 간격을 두고 심는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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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엽
 자소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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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만질 일이 좀체 없다 보니 호미를 쥔 손이 떨린다. 자소엽이 자라고 있는 상자 화분에서 모종 뿌리가 상하지 않게 떠내야 하기 때문. 줄기를 피해 호미를 흙에 박고 손에 힘을 뺀 채 살살 흔들면 연한 뿌리가 나온다. 이제 속도전이다. 더운 날씨에 모종이 말라 버리기 전에 얼른 심어야 한다. 흙을 살짝 파내고 자소엽 모종 두어 뿌리를 넣고 주변으로 흙을 쌓아 세워준다. 그새 시든 자소엽이 자꾸만 고개를 숙인다.

막 심고난 뒤의 자소엽
 막 심고난 뒤의 자소엽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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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아무래도 죽는 거 같은데..."
"아니에요, 식물이 보기보단 강해서. 저 자소엽 모종 화분도 그냥 스티로폼 박스에 흙 채워서 씨앗 뿌려 놓은 건데, 한 달이나 걸려서 싹이 나온 거예요. 하도 안 나오길래 죽은 줄 알았는데 눈 깜짝할 새 저렇게 불었더라고."

며칠만 지나보면 뿌리에 힘이 생겨 꼿꼿이 설 거라 말하는 얼굴에 확신이 보인다. 손바닥만 한 땅에 그래봤자 밤톨만한 구멍이 이삼십 개. 쪼그려 앉아 심고 나니 벌써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 농부들은 어떻게 그 넓은 밭을 가꿀까, 절로 존경심이 생기는 순간이다.

11:00 AM 정성에 햇살 한 줌 더하기

흙 표면이 벌써 마른다. 자소엽에 힘이 생길 수 있도록 물을 충분히 주기로 했다. 아직은 뿌리가 흙을 잡고 있지 않아 무작정 물을 뿌리면 안 되고, 작물과 작물 사이 나름의 고랑으로 천천히 흘려주어야 한다. 목 말라하는 다른 식물들에도 흠뻑 물을 주었다. 서너 번은 물을 담은 양동이를 옮겨야 텃밭 전체, 땅 깊은 곳까지 충분히 적실 수 있다. 실내에 있는 식물에도 분무기로 꼼꼼히 물을 준다.

'농번기가 이만큼 분주할까' 생각하던 찰나 또 다른 작업이 이어졌다. 혁신파크 내 비전화공방전기와 화학물질 없이 사는 방법을 연구하는 프로그램, noplug.kr과 함께 만든 '태양열 건조기'의 마무리 작업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테이블같이 생긴 건조기를 카트에 실어 야외로 옮겼다. 지난 주말에 직원이 동료 단체와 함께 만들어 둔 것이라고 했다.

전기를 쓰지 않는 태양열 건조기. 아크릴로 만들어진 상판으로 태양열이 투과되어 음식물이 마르는 원리다.
 전기를 쓰지 않는 태양열 건조기. 아크릴로 만들어진 상판으로 태양열이 투과되어 음식물이 마르는 원리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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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 나무 틀 위에 철망을 올리고 그 위에 과일, 약초 등을 올려놓으면 맛있게 마른다고. 칠하기 전 상판을 떼어내고 페인트가 묻으면 안 되는 곳에 마스킹 테이프를 꼼꼼히 붙였다.
 안쪽 나무 틀 위에 철망을 올리고 그 위에 과일, 약초 등을 올려놓으면 맛있게 마른다고. 칠하기 전 상판을 떼어내고 페인트가 묻으면 안 되는 곳에 마스킹 테이프를 꼼꼼히 붙였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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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풀약초협동조합은 질 좋은 국내산 약초의 판로를 고민하는 단체다. 한국생약협회 소속으로 약초의 GAP인증농산물우수관리인증 심사를 담당했던 이사장의 오랜 경험 속에서 탄생한 일이다. 국내산 약초에 온갖 인증 마크를 붙여도 값싼 중국산에 밀려 막상 시장에서 제 값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는 그는 이제 생산자 조합원으로부터 약초를 직접 공급받아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가공 상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색을 달리해 칠했다.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색을 달리해 칠했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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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된 모습. 붓 자국이 남지 않도록 칠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완성된 모습. 붓 자국이 남지 않도록 칠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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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 드릴로 나사를 돌려 박길 수차례, 다리와 윗부분을 고정하고 페인트를 칠하기 시작했다. 약초에 어울리는 초록색과 흰색을 심사숙고해 골랐다. 조금 투박한 듯하지만 이 건조기는 완성되면 이풀랩에 놓여 제품 연구에 쓰일 것이다. '약초'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누구나 한약방이나 약재 시장과 같은 고루한 장면들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마련. 소비자 입맛에 맞춘 가공 상품을 만들어 전통적인 인식을 탈피한 약초소비문화를 만드는 것이 이풀의 꿈이다.

"커피 원두를 블렌딩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맞는 약초들을 고르고 블렌딩해서 마시는 맞춤 차를 만드는 거예요."

하반기에는 이풀랩을 기지로 약초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약초에 대해서 배우고 자신만의 레시피로 차를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젊은 층에게 어필하기 위한 시도도 계속하고 있는데, 작년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를 통해 출시한 '디톡스 워터' 세트 상품은 출점한 3회 모두 전량이 매진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오늘 작업한 태양열 건조기와 텃밭의 약초를 이용해 올 여름엔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작정이란다. 여름 햇살을 가득 머금은 약초들이 이풀이라는 이름을 달고 새 상품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2:00PM 식물의 이름, 약초의 이름

작업을 마친 후 한숨 돌리기 위해 다시 이풀랩으로 향했다. 마치 한의원에 들어선 듯한 냄새가 풍기는 참여동의 복도를 지나니 미화직원이 한 마디 건넨다. "약초 냄새가 진동을 하네, 향이 너무 좋아~" 아직 다 갖춰지지 않은 작업장이지만 그윽한 약초 향만으로 이풀의 작업장임을 알 수 있다.

리프 자소엽차 패키지는 자소옆 잎 색깔 그대로 보라색이다. 이 날 마신차는 자소엽에 다른 약초가 섞인 블렌딩 티였는데, 역시 보랏빛으로 우러나 보는 재미가 있었다.
 리프 자소엽차 패키지는 자소옆 잎 색깔 그대로 보라색이다. 이 날 마신차는 자소엽에 다른 약초가 섞인 블렌딩 티였는데, 역시 보랏빛으로 우러나 보는 재미가 있었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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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노동 끝에 찾아 온 달콤한 휴식에 이풀 차가 빠질 수 없다. 하나 골라보라는 말에 오늘 작업한 자소엽이 든 차를 주문했다. 노 이사장이 건넨 차의 패키지에는 자소엽이라는 이름 대신 '차조기'라는 낯선 이름이 적혀 있었다.

"차조기는 식물 이름이고, 자소엽은 약재 이름이에요. 이름이 두 개인 거죠."

식물의 이름과 약재의 이름이 다르다는 것. 머그잔에 찻물을 붓던 그가 창가로 다가선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잡초로 여겨질지도 모르는 텃밭의 풀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이름을 붙여준다. 당귀, 천궁, 마, 어성초, 박하... "이 풀은 토종 박하인데, 신기한 게 옆으로 줄기가 뻗어나가면서 잎이 나와요." 테이크아웃 컵에 담긴 박하 잎에 코를 대 보니 알싸한 박하향이 옅게 풍긴다. 그러는 동안 찻물은 자소엽 잎을 닮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실내에 있는 모종에는 분무기로 꼼꼼히 물을 준다. 박하 모종이 테이크아웃 컵에 담겨 나란히 자라고 있었다
 실내에 있는 모종에는 분무기로 꼼꼼히 물을 준다. 박하 모종이 테이크아웃 컵에 담겨 나란히 자라고 있었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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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풀약초협동조합이 시작된 2013년. 3년만 버티자고 생각했던 게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는 노 이사장은 버티는 기간을 연장해야겠단다.

"해가 갈수록, 아직 제가 모르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끝이 없을 것 같아.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지금은 사업을 확장하는 것보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얼마나 만족할 수 있는지, 애착을 가지고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됐어요."

개인적으로 지금 일에 얼마나 만족하느냐고 묻자 그는 "80%?"라며 웃었다. 약초가 우리나라 대표 문화상품이 될 수 있다며, 이제 이풀의 상품으로 해외시장 진출을 꿈꾸는 노 이사장. 길가에 스쳐지나가는 작은 풀도 실은 약초라며 곳곳에 숨겨진 풀들의 위치와 이름을 기억해내고, 앞으로 이풀랩에서 약초를 가지고 할 일이 많다며 눈을 빛내는 모습을 보니 못 다 채운 20%를 아쉬워 할 이유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ㅣ서울혁신센터 홍보파트 백난희
사진ㅣ서울혁신센터 홍보파트 문하나, 백난희

이풀약초협동조합┃서울혁신파크 미래청(1동) 4층 409B호, 참여동(21동) 1층 101호

▶ 생활 속 이로운 풀과 나무 열매가 보다 세련되고 건강한 문화로 자리할 수 있도록 상품화하며, 다양한 약초의 종류와 이용법을 직접 배우고 농부와 약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약초학교를 운영합니다.
▶ 이풀약초협동조합 홈페이지 http://www.ipool.kr/

덧붙이는 글 | 서울혁신파크 공식뉴스레터 [채널서울혁신파크]와 공식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서울혁신파크, #이풀약초협동조합, #약초, #이풀,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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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혁신파크는 도시의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국내 최초의 사회혁신 플랫폼입니다.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곳으로 250여 혁신 그룹, 1300여 명의 혁신가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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