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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에도 폭염이 찾아왔다. 여름이야 더운 게 당연한 거라지만, 평균적인 여름 더위를 넘어선 비정상적인 더위다. 지난달 일본에서는 폭우로 산사태가 났고, 캐나다는 6월 내내 49.5도 더위의 열돔 현상이 지속되었다. 뉴질랜드 6월 평균 기온은 112년 만에 최고치를 달성했다.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선언하는 등 기상이변에 대처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에 박차를 가한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와 장마, 뉴스에서 듣는 세계의 기상이변 소식에 걱정은 되지만 내가 어떻게 보탬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이산화탄소를 제로로 만든다는 방법은 일반인에게는 너무 크고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 사람에게 서울혁신파크의 공동체텃밭을 가꾸는 소란은 '퍼머컬처'를 권한다. 퍼머컬처는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 원리에 따라 밭을 가꾸는 농법이다. 서울혁신파크에는 서울혁신센터와 은평기후농부, 혁신파크 오디세이 학교, 퍼머컬처 전문 그룹이 함께 일군 먹거리 정원이 퍼머컬처 방법으로 가꾸어지고 있다.

농사를 짓는 일이 어떻게 지구를 돌보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걸까? 어떻게 이산화탄소를 감소시키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걸까? 대답을 들려줄 사람을 찾아 전환마을은평 대표이자 이곳에서 은평기후농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소란을 만났다.
 
퍼머컬처는 지속가능한 농업이라고 많이 해석하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지속가능한 문화에 가깝다.
 퍼머컬처는 지속가능한 농업이라고 많이 해석하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지속가능한 문화에 가깝다.
ⓒ 서울혁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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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화탄소를 다시 땅에 저장하는 유일한 방법

- 퍼머컬처란 '영속적인'이란 의미의 Permanent와 '농업'을 뜻하는 Agriculture의 합성어로, 지속가능한 농업을 꿈꾸는 농법이자 삶의 방식이라고 알고 있어요.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자연농법 방식라고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퍼머컬처를 지속가능한 농업이라고 많이 해석하시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지속가능한 문화에 가까워요. 지구라는 공동의 공간을 가진 사람들이 지구를 어떻게 돌볼까라는 고민을 하다가, 지구에 해가 되지 않으면서 사는 삶의 방법을 생각한 거죠. 지구 친화적인 새로운 삶의 문화를 만들자는 겁니다. (그중 농업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뭘까요?) 인간이 최초로 가진 문화가 농업인데요. 이 농업이 대량생산 방식으로 돌아가다 보니 지구를 파괴하게 되거든요. 그런 문화를 바꿔보자는 개념이에요."

- 서울혁신파크의 공동체텃밭은 어떤 곳이며 어떻게 함께 하게 되셨나요?
​"공동체텃밭은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자연 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먹거리를 얻고, 자연 원리에 따라 정원을 가꾸어 땅과 주변 환경을 생태적으로 회복시키는 곳이에요. 서울혁신센터와 은평기후농부, 혁신파크 오디세이학교, 퍼머컬처 전문 그룹이 함께 일군 곳이죠. 저희는 서울혁신센터 진달래님이 함께 해보자고 제안해주셔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름도 일부러 그냥 농부가 아니라 기후농부라고 지었어요. 

이곳이 단순 먹거리 재배의 장이 아니라 탄소가 저장되는 밭이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거든요. 환경뿐 아니라 경제적인 의미도 담긴 사회적인 공간이라는 것을요. 현재는 교육과정의 실습장이지만 언젠가 이곳에서 재배한 먹거리를 지역사회와 나눌 수 있는 공간, 선물경제가 실현될 수 있는 밭이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 농사를 짓는 것이 어떻게 땅과 주변 환경을 생태적으로 회복시킬 수 있나요?
​"퍼머컬처를 통해 공기 중에 과잉 배출된 탄소를 땅에 다시 가두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과잉 배출된 이상화탄소 때문에 기후온난화가 벌어지고 있잖아요. 그걸 되돌릴 방법은 땅속에 탄소를 다시 묻는 것밖에 없어요. 퍼머컬처를 하면 의외로 땅에 탄소를 저장시키는 속도가 빨라요. 땅을 갈지 않고 농사를 지으면 탄소가 다시 땅에 저장됩니다. (자연농법으로 지으면 탄소가 땅에 저장된다는 건가요?) 퍼머컬처에서는 땅을 갈지 않고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짓거든요. 땅을 갈거나 비료를 많이 쓰면 미생물들이 죽어요. 또 다년생 작물을 심는데요. 땅을 파지 않고 자연스럽게 작물이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게 자연스러운 탄소 흐름 방식을 만들어내죠."

- 공동체텃밭을 가꾸는 은평기후농부들은 어떤 걸 키우시나요?
​"밭의 반 이상은 다년생 작물을 키우고 있어요. 한 번 심은 걸로 평생 따 먹을 수 있도록요. 오레가노나 파슬리 같은 허브 종류만 60종이 넘고요, 상추나 약초를 재배하기도 해요. 은평기후농부들은 서른 분 정도 계시는데 그 중 서울혁신파크 공동체텃밭에서는 열 다섯분 정도가 꾸준히 활동하고 계시죠. 젊은 여성분들이 대부분이에요. 공식적인 밭 모임은 한 달에 두 번 있지만, 상시로 이곳에 오셔서 작물을 돌봐주고 계세요. 다들 각자의 직업이 있지만 도시에서 작물을 돌보는 일을 함께하고 계신 거죠."

퍼머컬처는 다년생 작물을 위주로 심어 땅을 갈지 않고 농업을 할 뿐만 아니라 음식물을 퇴비로 만들어 쓰거나 빗물을 저장해 활용하기도 한다. 한 가지 작물을 대량생산하지 않고 다품종소량생산을 통해 도심 속에서 먹거리를 바로 만들어 소비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런 방식의 농업을 하면 생산성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궁금해졌다.

- 농약을 안 치면 어쩐지 농작물 수확량이 적을 것 같아요. 환경을 생각하는 농업은 돈을 벌기도 어려울 것 같고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퍼머컬처를 한다고 해서 먹거리 생산량이 줄지는 않아요. 전환마을은평에서 작년 퍼머컬처로 재배한 농작물로 김장을 했는데, 모두 가져가고도 남을 정도로 양이 많았거든요. 생산량이 많아서 자급하기에 좋죠. 다만 지금은 한 작물을 대량 생산해야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잖아요. 다른 나라는 퍼머컬처 농부들이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사례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유통구조 때문에 그런 사례가 많지 않아요."
서울혁신파크 청년허브 카페에서 인터뷰 중인 소란 님
 서울혁신파크 청년허브 카페에서 인터뷰 중인 소란 님
ⓒ 서울혁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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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크의 공동체 텃밭이 경제적인 의미가 담긴 사회적인 공간이라고 하셨는데요. 텃밭이 어떻게 그런 공간이 될 수 있을까요?
​"다른 나라 전환마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번 팬데믹 때문에 지역 슈퍼마켓이 셧다운 되면서 동네 곳곳에 있던 프리 텃밭이 주목을 받게 되었어요. 지역민들이 텃밭의 작물을 수확해 먹는 경험을 쌓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공유지에 대한 정책이 만들어진 거죠. 그 경험이 우리에게는 없잖아요. 서울혁신파크 공동체텃밭을 통해 그걸 보여주고 싶어요. 사례를 만들고 싶었달까요.

농사 짓는 분들이 잉여 작물을 나누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 지역에서 생산된 작물을 지역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먹어볼 수 있는 기후밥상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지역에서 먹거리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 대가 없이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보신다면 좋겠어요."

퍼머컬처가 단순히 자연농법을 활용한 농사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디자인하는 것이라는 말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의존적인 소비자에서 책임감 있는 생산자로 변모하는 일, 자본 중심의 세계에서 대안적인 경제를 실험하는 일, 시민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일이기도 했고 전환마을운동으로 이어지는 개념이기도 했다. 소란은 전환마을운동을 한국에서 처음 시작한 사람이다. 문득 소란이 언제부터 퍼머컬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어떤 계기로 전환마을운동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도망치듯 떠난 곳에서 만난 새로운 가능성

- 소란님이 퍼머컬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 여성 운동을 했었어요. 2002년에는 여성해방연대도 만들었죠. 이후에 성폭력 가해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2~3년 정도 했었어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회의가 들더라고요. 제가 상담을 한다고 해서 그들이 바뀌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도망치듯 집을 정리하고 해외로 나가기로 결심했죠. 살기 좋은 마을을 검색했더니 영국 토트네스가 나오더라고요. 잘 모르고 갔는데 도착해서 보니 그곳이 전환마을이었어요. 퍼머컬처도 그래서 알게 되었죠."

- 어쩌다 토트네스에서 오래 머물게 되셨나요?
​"처음에는 그냥 놀았죠. 사람들이 정이 많고 마치 고향집에 온듯한 느낌인데 묘하게 개인적이기도 해서 참 자유로우면서도 돌봄을 받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마을이 너무 좋아서 더 있고 싶어졌는데, 그러려면 학생 비자가 필요했고요. 마침 그곳의 슈마허 대학에 전환마을경제학 활동가 과정 같은 게 있어서 다니다가 전환마을 관련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은 거죠. (그런데 왜 한국으로 돌아오셨어요?) 제 비전은 한국에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한국에서 전환마을운동을 해보고 싶었어요. 생태적인 일을요. 개인적인 가족사도 있었고요. 2012년 말에 들어와서 2014년에 퍼머컬처학교를 열었어요. 왔죠. 제가 뭘 하고 싶으면 학교부터 열거든요. 자연스럽게 퍼머컬처를 기반으로 한 전환마을을 만들었고, 2015년 '전환마을 은평'을 선언하게 됐죠.

소란은 한국에 돌아와 퍼머컬처학교와 자립자족학교, 잡초라도충분한풀학교 등을 만들었다. 작은 땅과 텃밭에 농사를 짓고, 풀을 뜯어 잔치를 열었다. 퍼머컬처학교는 충남 금산 남이와 경기도 남양주 두물머리 등으로 확산되었다."

- 퍼머컬처가 전환마을운동으로 이어지는군요.
​"퍼머컬처를 하던 사람들이 기후위기를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던 때가 있었어요. 마을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퍼머컬처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마을 전체가 그 가치에 동의하면서 전환마을이라는 개념이 생긴 거죠. 그 전환마을을 가장 먼저 본받아서 들여온 마을이 토트네스이고요. 영국은 그런 선언이 있은 후 2~3년 만에 500개 마을이 전환마을을 선언할 정도로 확산 속도가 빨랐어요. 곧이어 독일이나 프랑스 등 50여 나라로 확장되었죠. 21세기에 들어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운동이에요."

-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우리나라에서도 금산 간디학교, 대안학교들 중심으로 전환마을 선언이 이루어졌어요. (잘 되나요?) 공유지가 없어서 힘들고, 공공기관하고 일하다 보면 행정이 자꾸 바뀌어서 어려울 때도 있어요. 우리나라는 실제로 공유지라고 할 만한 곳이 거의 없거든요. 서울혁신파크가 그래서 더 중요해요. 기후대응위기의 모델이 될 수 있으니까요."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 서울혁신파크에서 하는 퍼머컬처가 외부의 퍼머컬처 학교와 차별점이 있나요?
​"파크 안의 퍼머컬처는 좀 더 로컬리티가 있어요. 기후농부들이 밭까지 걸어서 올 수 있거든요. 원래 자기가 산책하던 길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가까이 사시는 분들, 직장이 주변이신 분들이 많이 오셔서 특이하다고 생각했어요."

퍼머컬처의 매력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쉽사리 해볼 수 없는 실습을 통해 일상과 퍼머컬처를 연결하고 있는 소란은 앞으로도 서울혁신파크에서 이런 기획이 지속되어야 '지역성'이 살아있는 퍼머컬처의 문화가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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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혁신파크에서 오디세이학교 학생들과 수업 중인 소란 님. 퍼머컬처 키친가든에서 얻은 수확물을 확용해 부침개 레시피를 개발한다.
 서울혁신파크에서 오디세이학교 학생들과 수업 중인 소란 님. 퍼머컬처 키친가든에서 얻은 수확물을 확용해 부침개 레시피를 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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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크 안에서 하는 프로그램 중에 오디세이학교학생들과 하는 부침개연구소 같은 것도 있다고 들었어요.
​"네. 오디세이학교는 학교 밖 학교거든요. 일 년 정도 과정을 밟는 대안학교 같은 곳인데요. 교육 프로그램 중 농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퍼머컬처와 연관된 교육을 하게 된 거죠. 교육과정 이름은 '부침개 연구소'인데요. 농사를 지어서 그 작물로 부침개를 만들어요. 최상의 레시피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떤 부침개를 만들겠다든지, 각 나라의 부침개를 연구해보겠다든지, 로컬푸드로 만들어보겠다든지 하는 디자인도 직접 해보고요."

- 퍼머컬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요?
​"다년생 작물을 키우는 농지를 만들어보시길 권하고 싶어요. 혼자 작게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도 일년생 농사에 치중하시거든요. 다년생 작물을 다양하게 키워 봐도 생각보다 수확량이 좋을 거예요. (밭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죠?) 그래서 저희는 공유지 운동을 해요. 공유지를 만들고, 농업학교를 세우고, 일 년 정도 공동체 실험을 해보려고요. 퍼머컬처농장이 생기면 결국 그 마을은 전환마을이 되거든요."

- 좀 더 작게 시도해볼 수 있는 활동은 뭐가 있을까요?
​"삼시세끼 중 다만 하루 한 끼만이라도 내가 기른 작물로 식탁을 채워보라고 권해보고 싶어요. 이것만 해도 굉장히 건강해집니다. 집에 상자 하나만 활용해서 채소, 야채류 같은 작물을 키울 수 있거든요. 인간은 유일하게 폐기물을 만드는 종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요새 저희는 '폐기물 없는 존재가 되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활동도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같이 했을 때 지속적으로 하게 되거든요. 결국 관계를 통해 사람이 바뀌는 거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 곁에 있으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관계를 확장하며 배우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방법도 고민할 수 있고 관계 속에서 평안함도 얻을 수 있거든요."

소란은 앞으로 로컬푸드가 도시에서 실현 가능하다는 경험을 사람들에게 많이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 자본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공동체를 만들어보고도 싶다고,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 퍼머컬처를 통해 밭에서 수확하는 작물들로 공동체 사람들과 거나한 파티를 열어보고 싶다고도 말했다.

꼭 퍼머컬처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하루 한 끼를 내가 만든 작물로 채워보는 것. 그건 작은 도전이지만 어쩌면 지속가능한 삶, 공동체와 함께 하는 삶의 첫걸음이자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오늘부터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서울혁신파크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태그:#퍼머컬처, #도시농업, #지속가능한문화, #서울혁신파크, #도시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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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혁신파크는 도시의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국내 최초의 사회혁신 플랫폼입니다.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곳으로 250여 혁신 그룹, 1300여 명의 혁신가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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