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조별 예선에서 가장 중요했던 이스라엘과의 경기에서 부진한 경기력 끝에 2:1로 패배하면서 다음 라운드 진출에 초비상이 걸렸다. 서울 라운드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대만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이변을 기대하거나, 대한민국이 남은 2경기를 모두 잡아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네덜란드에서는 밴덴헐크를 선발투수로 예고했다. 현재 상황만 놓고 봤을 때는 2연속 조별 예선 탈락이 유력한 상황이다.

오늘 경기의 패인은 7안타 6볼넷을 얻어내고선 1득점에 그친 타선과 아쉬운 부분이 많이 남았던 벤치의 용병술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김태균과 이대호로 이뤄진 중심타선은 합 8타수 무안타 1볼넷으로 침묵했으며, 1번 이용규도 4타수 무안타에 1볼넷에 그쳤고, 특히 7회의 치명적인 병살타와 9회의 도루사로 공격을 맥을 끊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간간이 찾아온 찬스에서 침묵한 타선의 집중력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벤치의 판단도 상당히 아쉬웠다. 일단 임창용을 투입한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42세의 노장에다가 작년 성적도 그리 좋지 않았던 투수를 왜 이런 중요한 상황에 투입한 것일까? 게다가 임창용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박희수로 교체하지 않은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박희수가 불펜에서 계속 몸을 풀고 있었던 것을 보면 투입할 생각은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왜 박희수를 투입하지 않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타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은 것도 상당히 아쉬웠다. 벤치에는 최형우, 박건우, 박석민, 김하성 같은 강타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대타 자원들의 장타력을 고려해 봤을 때, 9회 말 허경민 타석이나 10회 말 오재원 타석에서는 대타를 쓰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물론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얘기며 대타를 썼어도 득점했을 거란 보장은 없으나 이런저런 시도라도 해야 하는 것이 코치진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6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개막전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의 경기. 8회초 투수 오승환이 역투하고 있다.

6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개막전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의 경기. 8회초 투수 오승환이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특히 오승환으로 계속 밀고 나가지 않은 것이 결정적인 판단 미스였다. 오승환은 메이저리그 정상급 마무리라는 명성에 걸맞은 압도적인 피칭을 보여주었다. 오승환의 구위를 보았을 때 10회까지는 던질 여력이 있었다. 물론 선수 보호 차원의 문제도 있고 규정상 투구 수 30개를 넘으면 1일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을 고려 해봐도 이번 경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그만큼 이번 경기가 2위 결정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중요한 경기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코치진들이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본 결정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종합해보면 또다시 방심과 자만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2013년 타이중 참사에서 무엇을 배운 것인가? 당시에도 상대 팀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네덜란드에 5:0 패배를 겪으며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의 야구 리그는 제대로 활성화돼있지도 않고, 전현직 메이저리거들이 참가했지만 모두가 알 만한 유명한 선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많은 언론에서도 이스라엘을 그렇게 위협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전력 역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고려했어야 했다. 추신수, 김현수, 강정호, 박병호와 같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해외파 타자들도 불참하였고, 국가대표 경험이 풍부한 강민호나 정근우도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이스라엘과의 승부를 절대 장담할 수 없었다. 네덜란드의 강한 전력을 생각해본다면 이스라엘과의 경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옳았으나, 결국 대표팀은 패배를 맞이하게 되었다.

프로야구가 암흑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06 WBC 4강,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09 WBC 준우승에 이르는 국제대회에서의 좋은 성적이었다. 당시의 야구 열풍에 힘입어 지금도 야구는 국내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리그 발전을 위해서는 꾸준히 국제대회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경기는 졸전 끝에 패한 것이라 아쉬움이 더 크게 남는다.

그래도 아직 1경기가 끝났을 뿐이다, 분명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아직 두 경기가 남아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 하는 것이 야구의 매력 아니겠는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오늘의 패배를 교훈 삼아 최선을 다해 남은 경기에 임해야 한다. 설령 탈락하더라도 팬들에게 국가대표라는 이름에 걸맞은 멋진 경기력을 보여주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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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이스라엘 대한민국 서울 라운드 졸전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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