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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결국', '화제', '논란', '충격', '감동', '공개', '근황', '경악', '들어보니', '이럴 수가'….

요즘 포털이나 SNS에서 흔히 등장하는 기사의 제목이다. 보통 이런 부류의 기사들은 격한 제목부터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그러니 호기심이 발동해 클릭을 안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막상 혹해서 클릭하면 충격적인 내용도 아니다. 그저 항간에 떠도는 검증되지 않은 소문을 나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목만 보면 분명 '기사'였는데, 열어보니 어느새 낚여버린 것이다. 그랬다. 인턴을 명 기자로 만들어주는 요술의 비법은 바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있었다. 기사의 십중팔구는 이렇게 시작한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OOOOO '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평소 OOO를 즐기는 OOO라고 소개한 글쓴이는…."

적당히 커뮤니티 사이트와 SNS를 서핑하여 화젯거리를 옮기거나 타사의 기사를 교묘하게 짜깁기하는 기사들이 그렇다. 그러나,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포털에서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간단한 몇 개의 단어만 조합하여 검색창에 넣어보시라. 엄청난 분량의 기사에 아마도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문제는 이 기사들이 기본적인 정보도 확인하지 않고 '복붙(Ctrl-C, Ctrl-V)'을 자행한다는 것이다.

특히 언제부터인가 대형 일간지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인턴기자의 기사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PC 앞에 죽치고 앉은 인턴기자들이 양산해 낸 '우라까이('베껴 쓰다 의미로 쓰는 언론계 속어)'나 '어뷰징(Abusing : 의도적으로 검색을 통한 클릭 수를 올리기 위해 동일 기사를 지속해서 전송)' 기사가 판을 치고 있다. 게다가 시선을 끌기 위해 더 자극적인 키워드를 추가하고 이런 기사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라고 경고문까지 넣고 있으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의료계를 뒤집을 신약의 대발견? 알고 보니 강력한 '뻥'

지난 6월, 한 대형신문의 국제면에는 '그동안 몰랐던 아스피린의 유용한 사용법 네 가지'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돼 누리꾼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신문은 한 미국 건강 매체의 인용을 전제로 보도를 이어 나간다. 해열제인 아스피린을 가루를 내 사용하면 각질(건선)은 물론 여드름, 비듬 제거에 얼룩진 옷의 원래 색깔 복원과 식물 수명연장 등에 탁월하다고 전한다. 아스피린은 어느새 만병통치약이 되었다. 내용만 보면 의료계를 뒤집을 신약의 대발견이 따로 없다.

☞ 관련기사 : 타이레놀은 만병통치약? "그건 강렬한 뻥입니다"

며칠 후, 어떤 이유인지 이 내용은 아스피린에서 타이레놀로 슬며시 둔갑했다. 이제는 '그동안 몰랐던 타이레놀의 유용한 사용법 네 가지'라는 제목의 기사가 만들어져 인터넷을 달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조회사는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아스피린과 타이레놀의 원래 효능 이외의 효과에 대해 따로 확인된 사항은 없으며, 표기된 효능 효과 이외에는 원칙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강렬한 뻥'임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지난 11월 9일, <오마이뉴스>는 박근혜 대통령의 성대모사 달인인 15세 중학생인 전종호 학생을 단독 인터뷰했다. 이 기사는 곧바로 인터넷을 달구기 시작했고, 지난 4월 유튜브에 올린 대통령 성대모사 동영상은 다시 전국을 강타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특히, 이 기사가 나간 후 화제의 인물로 부상한 이 학생은 각종 방송에 출연하며 일약 유명인 반열에 올랐다.

☞ 관련기사 : 박근혜 성대모사 달인이 15세 중학생?

대통령의 성대모사 달인인 중학생인 단독 인터뷰와 두 매체의 후속 기사. 인용 부분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옮겨 썼다.
 대통령의 성대모사 달인인 중학생인 단독 인터뷰와 두 매체의 후속 기사. 인용 부분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옮겨 썼다.
ⓒ 네이버 기사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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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두 곳의 매체는 이 소년의 단독인터뷰 기사를 그대로 활용하여 기사화했다. 하지만 보강 취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인용 부분은 제대로 밝히지도 않았다. 이른바 '우라까이' 기사였다.

그나마 사실 그대로를 베껴서 기사화한 것은 애교로 눈감아 줄 수 있다고 치자. 고질적인 베껴 쓰기 언론보도로 언론이 오타까지 똑같은 잘못된 설명을 반복하고 있는 현실은 웃고 넘기기엔 그 폐해가 너무도 크다.

1명이 낸 오타, 오타까지 베껴 쓴 기사는 수만 건으로...

지난 5일, 정재훈 약사는 "음식의 약효를 내세우는 기사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자료 조사를 제대로 안 하고 헐렁한 것들이 대다수다"라며 "확인도 안 하고 서로 베껴, 어떤 것은 잘못된 구글 검색 결과가 무려 6만 개가 넘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실상은 이랬다. 열기를 내려주고 몸의 나쁜 피와 독소를 없애준다는 '케티오닌'이라고 알려진 성분은 그 자체가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이라는 것이다. 결론은, 누군가 '메티오닌(Methionine, 황을 함유하는 α-아미노산의 일종으로 필수아미노산 중 하나)'이라는 성분을 자판의 'ㅁ'과 'ㅋ'을 잘못 입력해 오타를 낸 것이었다.

‘케티오닌’은 ‘메티오닌’의 오타였으나, 오타까지 그대로 6만 건이나 검색됐다. 심지어 건강칼럼에서조차도 '케티오닌'이라고 썼다.
 ‘케티오닌’은 ‘메티오닌’의 오타였으나, 오타까지 그대로 6만 건이나 검색됐다. 심지어 건강칼럼에서조차도 '케티오닌'이라고 썼다.
ⓒ 구글, 네이버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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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모든 매체가 그걸 서로 베껴 쓴 것이었다. 한때 콩이나 팥의 건강효능을 강조하는 시기, 한 매체의 보도를 다른 매체들이 잇따라 따라 쓰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오타는 1명이 냈지만, 그 오타까지 그대로 베껴 쓴 기사나 콘텐츠는 수만 건이 된 것이었다.

가을철이면 어김없이 '단감 다이어트' 기사가 올라온다. 매년 매체들이 이 시기에 내놓는 기사에 따르면 단감의 칼로리는 '100kg당 44kcal' 라 전한다. 특히 단감은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 좋을 뿐만 아니라 비타민C도 풍부해 항암효과가 뛰어나다는 설명도 잊지 않는다.

단감 칼로리가 100kg에 44kcal? 다이어트의 황제가 따로 없다.
 단감 칼로리가 100kg에 44kcal? 다이어트의 황제가 따로 없다.
ⓒ 네이버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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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단감이 100kg이라면 25kg들이로 4포인데, 고작 칼로리가 44kcal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진정한 과일 다이어트의 갑이다. 역시 이 기사들이 언급한 100kg은 100g의 오타였다. 오히려 향토문화사전에서는 "칼로리 함량이 높아 문화병 예방에 도움이 되며 숙취 제거 및 감기 예방에도 좋다"고 적고 있다. 이 기사 역시 오타까지 그대로 베껴 쓴 대표적인 사례다.

잊었는가, 세월호 오보 사태를?

기자는 발로 기사를 써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기자가 제대로 된 기사를 쓰려면 반드시 현장을 찾아가 직접 취재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고질적인 베껴 쓰기 관행이 만들어낸 세월호 침몰사고 오보의 안타까운 악몽이 또 떠오른다.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시 언론이 낸 최대 오보는 '학생 전원 구조' 보도였다. 해당 보도는 구조 활동에 혼선을 빚게 했고 온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큰 비난을 받았지만, 누구 하나 사과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소문'에 의한 첫 오보, 이 사실을 확인했어야 할 교육청과 해양경찰청의 '언론 보도를 근거로 한' 발표, 이 발표로 인해 또 다른 오보를 키웠다는 점을 볼 때 열 번 양보해도 이들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 사태는 '복붙'에 의지하는 언론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치명적 오류였지만 아직도 누구도 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 아직도 많은 언론은 과거 기사를 검증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따라 쓰면서 결국 오보가 오보를 만들어내고 많은 잘못된 사실들이 '이미 언론이 검증했을'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언론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철저한 자기반성이다. 자기반성의 토대 위에서만이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인턴들이여, 이제는 기사를 주문하는 데스크에 '우라까이'를 안 하고 싶다고 분명히 말하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이러려고 기자가 되었는지, 자괴감이 들지는 않는가?

"이 직업에서 잘못을 발견했을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최대한 빨리 잘못을 정정하는 것이다." (2003년 NYT '허위·표절기사 사과합니다.' 중에서)



태그:#우라까이, #어뷰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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