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t in Dust'로 해석된 영화의 원제는 'Hell or High Water'이다. 이는 '지옥에 있더라도 또는 거친 파도가 몰아쳐도!'란 의미다. 영화 초고의 원제는 'Comancheria', 즉 '코만치의 땅'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제목을 나열하는 것은 영화의 흐름을 읽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이 되는 텍사스주의 역사를 알아야 했다. 연방국인 미국에서 텍사스주는 인디언들의 땅이었다. 그들은 땅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으나 백인 정복자의 총 칼에 무너진 뼈아픈 역사가 있다.

"나도 코만치다!"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포스터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포스터 ⓒ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이런 배경을 가진 텍사스주를 중심으로 영화는 긴박한 상황에 놓인 형제와 자신의 가족을 지켜내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을 관조적으로 그린다. 형제들의 답답한 상황과 같기도 한 황량하고 거대한 평원이 자주 보이지만 이 넓은 대지에 쫓기는 형제가 머무를 곳은 없어 보인다. 그 냉정함은 때론 잔혹하게 동떨어진 채 담담하게 담아낸다.

테너와 토비 형제의 엄마는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작은 농장 하나로 살아가기에는 팍팍한 시절을 겪었던 형제에게 남은 것은 역모기지론을 낀 농장뿐이다. 엄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대출 빚을 갚든지 아니면 농장을 고스란히 은행에 바치든지 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뜻밖에 그 농장에서 유전이 발견된 것이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인데 갚아야 할 빚의 만기일은 이번 주 금요일까지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4일뿐이고 금요일까지 대출금을 상환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였다.

농장에서 유전이 발견되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어떤 방법도 없는 형제에겐 최악의 경우의 수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단 4일이다. 이런 경우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영화 시작부터 은행강도가 등장한다. 인적이 드문 이른 아침은 일을 벌이기에 좋은 시간이다. 복면을 한 두 남자가 은행을 터는데 그들은 추적당하지 않으려 낱장 돈만 강탈해 간다. 토비와 그의 형 테너다. 이들이 감행한 결론은 그들에게 덫을 놓고 자신의 것을 빼앗아간 바로 그 은행을 터는 것이었다. 만일에 농장에 원유가 나오지 않았다면 많은 이들처럼 체념과 좌절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니 선택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한다. 영화 중반에 나오는 오래된 식당에서 메뉴 선택권이 없이 강요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뺏은 자, 빼앗긴 자 

 테너와 토비 형제

테너와 토비 형제 ⓒ 영화 로스트 인 다스트


 레인저 마커스와 알베르토

레인저 마커스와 알베르토 ⓒ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영화를 이끄는 시나리오의 인물 구성은 놀라울 정도로 탁월하다. 토비(동생)는 이혼할 때 법정에 간 것 이외는 어떤 범죄의 이력도 그럴 가능성도 없는 일반적으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을 대표한다. 그런 그가 절박한 상황에서 총을 들었다. 그의 모범적인 이력은 범죄를 덮어주는 덕목으로 작용한다.

형 테너는 39년 인생에서 10년을 교도소에서 보냈을 정도로 거친 삶을 삶았다. 그의 대사를 통해 그는 아버지도 죽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생이 가족을 이룬 것과 달리 그는 혼자다.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토비와는 달리 정이 많고 여리다. 순간순간 그의 눈에 비친 눈물은 보는 사람들의 속을 후빌 정도로 짠하다. 그런 그는 어느 곳에서도 정주하지 못한 채 결국 평원에서 삶을 마감한다. 자신의 터전에서 쫓겨나야 했던 코만치족의 비애는 백인의 테너와 이어져 있다.

테너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는 인디언 출신 레인저 알베르토는 지난날 조상들의 땅에 대한 회한을 영화 곳곳에서 무심한 대사로 드러낸다. 백인들에게 내몰려 살아온 인디언의 한이다. 이전 시대에 자행되었던 정복자에 의한 수탈의 역사는 백인 중심의 사회를 이룬 현재, 대다수 힘없는 시민과 은행, 금융자본의 착취로 대치된다. 그렇게 빼앗겼던 역사의 자리를 대표할 수 있는 알베르토는 구조적인 수탈을 유지하는 질서에 위배된 사람들을 추적하는 자리에 놓인다. 이러한 설정도 아이러니하지만 방황하는 테너의 총에 알베르토가 죽는다는 것은 놀랄 정도로 당혹스럽다. 왜 영화는 백인 노인 레인저인 마커스가 아닌 젊은 인디언 알베르토를 죽였을까? 그것도 내몰린 영혼, 코만치라고 할 수 있는 테너의 손에 말이다.

영화에서 큰 고뇌가 없는 능숙한 사냥꾼인 마커스는 자기 일에 신념이 있는 사람이다. 알베르토를 시종일관 놀리고 인종차별적인 불쾌한 농담을 하지만 이 둘의 조합은 기본적인 신뢰를 깔고 있다. 안정적인 수입이 담보된 두 사람이지만 알베르토는 좀 더 역사적인 시선으로 사회를 관망할 줄 안다. 뼈아픈 역사를 아는 자는 자신의 위치에 대한 파악이 빠르다. 반면 통찰의 힘을 갖지 못한 마커스는 마지막 장면 테너의 이야기를 듣고 이제까지 자신을 지탱해준 신념에 혼란을 가져왔을까? 아니면 기어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합법으로 위장된 정복자의 수탈과 그것에 밟히지 않으려는 빼앗긴 자의 탈취는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지 고민스럽다. 빼앗긴 자가 선택한 방법은 빼앗은 자의 방법을 교묘히 활용한다. 금융자본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자신에게 이윤을 남기면 그만이다. 과정이 어떻든지 간에 관심 없다. 그것은 토비의 범죄 사실을 들춰내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 토비는 그들의 이익을 불러일으키는 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 일에 신념 넘치는 레인저 마커스의 궁금증은 별로 중요치 않다.

이러한 전체적인 카테고리 안에 토비 형제들의 고민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위해 애쓰는 많은 하층민으로 대치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토비형제에게는 농장에서 발견된 유전이 있었다. 그마저도 없는 다수의 사람은 참담한 결과만을 기다릴 뿐이다.

가난은 전염병 같은 것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평원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평원 ⓒ 로스트 인 더스트


토비의 말대로 가난은 전염병 같은 것이다. 그 가난의 유전자는 대물림될 것이기에 속 깊고 행동에 있어 심사숙고한 토비가 은행강도를 결행한 가장 큰 동인이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만났다. 배우들의 연기는 삶의 실체를 보였고 음악, 배경, 영상 모든 게 잘 맞아떨어졌다. 몇 번을 봐도 감동이 되살아나는 영화다. 역시 세계가 극찬할 만 하다. 특히 시나리오가 좋다.

다시 처음의 영화 제목에 관한 고민으로 되돌린다. 한국어로 의역된 '로스트 인 더스트'는 영화 전체를 포괄하기에는 조금 품이 적다. 체념과 좌절에 초점을 맞춰 힘없는 사람들의 허탈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었다면, 'Hell or High Water'는 코만치 역사를 대변할 수 있고 토비형제의 행동을 담을 수 있다.

잘 단련된 군대가 총칼을 앞세워 인디언을 몰아냈어도 알베르토는 지금의 텍사스 땅에 건재하고 있다. 또 토비가 유전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아이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것이다. 지옥에 있던지 거대한 파도가 휘몰아치는 한이 있어도 인간의 살아낼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슬픈 역사를 지닌 채 살아온 코만치인들의 삶의 연장이 무엇인지 조명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작가가 처음에 정했었다는 제목 'Comancheria'에 한 표를 주고 싶다.

시나리오를 쓴 작가는 텍사스 출신으로 그곳의 상황을 절절하고 탄탄한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현시점에서의 텍사스의 모습을 영화의 기본 배경으로 삼아 살린다. 광활한 자연환경과 몰락해가는 소도시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 대부분 노인들만 남아 있는 도시는 점점 심해지는 빈부 격차로 그곳에는 유전을 채굴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은행마저 폐쇄될 정도로 심각한 경제난은 길가에 서 있는 광고 팻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채무변제'
'신속대출'
'집 팝니다'

또 담벼락의 낙서다. '이라크에 세 번이나 갔다 왔어도 우리 같은 놈은 은행에서도 신경도 안 쓰더라' 이것은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고다. 빼앗긴 사람들을 탈탈 거덜 내야 직성이 풀리는 금융자본의 실체다. 그럼에도 살아갈 것이다. Hell or High Water.

로스트 인 더스트 영화 리뷰 크리스 파인 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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