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문라이트' 포스터 영화는 리틀, 샤이론, 블랙 세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각기 다른 배역이 연기를 한다. 서로 닮지 않았으나 포스터처럼 절묘하게 하나를 이룬다.

▲ 영화'문라이트' 포스터 영화는 리틀, 샤이론, 블랙 세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각기 다른 배역이 연기를 한다. 서로 닮지 않았으나 포스터처럼 절묘하게 하나를 이룬다. ⓒ 오드AUD

 
2017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문라이트>는 소외의 범주 중에서 가장 바깥세계에 있는 가난한 흑인 한부모가정의 현실을 밀도있게 펼친다. 주인공인 샤이론의 어린시절, 청소년시기, 청년의 시기를 직선적으로 전개하는 성장영화와 같은 형식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한 샤이론의 삶의 자리를 그려낼 뿐이다.

처음 <문라이트>를 보고 충격처럼 다가왔던 뭉클한 감흥은 섣불리 표현하는 것조차 결례가 되지 않을까했다. 어려움에 처한 타인의 삶을 들춰내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 블루시기에 다시 본 영화는 지쳐가는 한숨에 샤일론의 삶이 더욱 진하게 녹아 배어들어 왔다.
 
  '달빛아래서는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인다' 영화의 기본이 되는 이야기다. 영화 전반에 색채와 빛의 조화로 이야기를 응축한 컷이 많다.

'달빛아래서는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인다' 영화의 기본이 되는 이야기다. 영화 전반에 색채와 빛의 조화로 이야기를 응축한 컷이 많다. ⓒ 오드AUD


 
 
한 장의 사진이나 그림 한 점이 영화나 책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경우가 있다. 영화 <문라이트>는 전체에 걸쳐 이러한 컷의 연속이라 한다면 조금 설명이 될지 모르겠다. 한 컷 한 컷의 작품이 움직여 장면이 되고 극이 되었다. 그러니 몇 년 전 보았던 감동을 시간이 지났음에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독보적인 지점은 이미지와 조화로운 음악과의 앙상블이다. 서사만을 본다면 책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줄 수 있다.
 
영화 <문라이트>는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절제와 간결함 그리고 느린 호흡으로 소년 샤이론을 기다려준다. 겨우겨우 살아가는 샤이론의 형편에서 자신을 서슴없이 표현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이름 하나, 사는 곳 하나 툭툭 내뱉지 못하는 아이가 어떻게 살아왔을지 울컥해진다. 답답할 정도로 머뭇거리는 샤이론을 영화는 재촉하지 않는다. 삶의 척박함을 신파조로 또는 불굴의 의지로 어려운 상황을 뚫고나가는 계몽으로 빠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샤이론과 같이 담담하게 진행하는 영화가 오히려 특별한 작품이 되었다. 카메라에게서 연민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건 무엇일까?
 
동변상린 그것이었다. 연출을 맡은 베리젠킨스와 원작인 '달빛 아래서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를 쓴 티렐 앨빈메크레이니 두 사람은 영화의 주 무대인 마이애미의 가난한 흑인마을에 살았다. 이러한 배경은 영화 주인공인 샤이론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성장과정을 거쳐 왔기에 샤일론의 삶을 깊은 연민으로 그릴 수가 있었고 영화는 생생한 생명력을 가질 수가 있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많은 자본이 들어간 매끄러운 대작의 결보다는 좀 거친 듯한 <문라이트>와 같은 영화가 오히려 작품으로써 더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사실 평범할 수 있다. 그러나 저예산인 블랙시네마가 아카데미작품상을 받는 돌풍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만큼의 영화는 매우 훌륭하고 감동적이다. 샤이론이 처한 상황을 한 컷 한 컷에 응축되어 한편의 시(詩)가 된다. 더불어 애잔하게 흐르는 음악과 올드팝송은 샤일론의 삶의 자리를 들려주는 감동적인 시낭송이 되었다.
 
  
 후안과의 행복했던 어린시절의 사이론. 후안은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살아가며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들려준다.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돼!  그 결정을 남게게 맡기지 마!"

후안과의 행복했던 어린시절의 사이론. 후안은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살아가며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들려준다.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돼! 그 결정을 남게게 맡기지 마!" ⓒ 오드AUD

 

태어났을 때부터 불행한 삶, 아무리 몸부림 쳐도 바뀌지 않는 아니, 몸부림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불행이라는 악이 있다. 주인공인 샤이론의 삶이 그렇다. 가난한 흑인가정에, 아버지도 없이 마약에 의존하는 엄마는 아이를 양육하기 버거웠고, 왜소한 체격은 친구들로부터 늘 놀림을 당한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은 자신의 것을 형성하며 성장하는 것을 아예 허락하지 않는다. 표현하는 것조차도 힘든 그는 이름을 물어봐도 사는 곳을 물어봐도 묵묵부답이다. 아니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입 밖으로 내 뱉는 것이 학습되지 않아 힘들다. 그건 건장한 청년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짓누르는 삶은 숨통을 틀어막는다. 이처럼 절박한 샤이론에게 기적과 같은 행운이 찾아온다. 친구들에게 쫓기어 숨어 들어간 마약창고 주인인 후안과의 만남이다. 어둠을 뜯어내며 눈부신 햇살과 함께 등장하는 후안과의 만나는 신이 무척 인상 깊다. 후안은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경험하지 못했던 따뜻한 관계로 샤이론에게 존재하기 시작한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을 후안과의 만남은 애석하게도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후안은 죽는다.
 
성장 시기에 따라 세부분(리틀, 샤이론, 블랙)으로 나눈 영화는 각각 다른 배역이 연기한다. 서로 닮지 않았지만 경계하고 두려움에 가득 찬 큰 눈동자는 동일하다. 10대를 그린 둘째부분에서 친구들의 끊임없는 집단 따돌림과 폭력에 여전히 시달리지만, 그에게 호의적인 친구 케빈에게서 동성애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폭력사건으로 샤이론은 소년원으로 가게 되면서 고향 마이애비 해변을 떠나게 된다.

청년이 된 샤이론은 후안과 같은 마약상이 된다. 경제적인 안정을 찾았지만 여전히 눈빛은 불안하다. 뜻밖에 걸려온 친구 캐빈의 전화에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게 되고 그를 만나기 위해 애틀란타 조지아에서 마이애비까지 먼 길을 떠난다. 그에게 캐빈의 존재는 영화 전체에 같이 등장할 정도로 중요하다. 캐빈을 만나러 가는 것은 굉장히 의미있는 행동이다. 어릴적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한다는 후안의 가르침이 있었지만. 샤이론의 억눌린 삶은 이름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머뭇거림이었다. 
 
'모두가 파랗게 보이는 달빛은 어디에'
 
영화 문라이트에서 한 장면을 꼽는다면 후안이 샤이론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는 시퀀스일 것이다. 불안한 세상에 든든한 존재로 함께하는 후안은 샤이론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달빛 아래서 흑인은 모두 파랗다."

보통 블랙으로 살아야하지만, 달빛아래서 만큼은 '블랙'이라는 편견에 놓이지 않고 모두 '블루'로 보이는 차이 없는 세계다. 심지어 샤일론은 흑인들의 속에서 조차 늘 쫓기고 혼자이어야 하는 혹독한 처지였다. 그를 감싸주는 달빛은 어디에 있는가!
 
자신을 받아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일생에 행운이다. 답답하기만 하던 샤이론에게 후안과 테레사(후안의 여자친구)는 그런 존재였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치 않는 샤이론이지만 후안을 만난 뒤, 다시 후안의 집을 찾는 선택을 한 적이 있다. 비슷하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캐빈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난다. 이 결정은 혹독한 상황에 이끌려 살아왔던 샤이론이 자신을 위한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된다.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돼."
 
 고등학교에서 폭력사건으로 헤어진 뒤 오랜시간이 지나 만난 샤이론과 캐빈.   캐빈은 샤이론에게 중요한 존재로 영화 세 챕터 모두 등장한다.

고등학교에서 폭력사건으로 헤어진 뒤 오랜시간이 지나 만난 샤이론과 캐빈. 캐빈은 샤이론에게 중요한 존재로 영화 세 챕터 모두 등장한다. ⓒ 오드AUD

 
친구 캐빈을 만나러 가는 길은 반듯했고 이제까지 흘렀던 음악과는 달리 경괘하고 밝은 노래 '꾸꾸루꾸꾸'가 흘러나온다(왕가위 감독에 대한 오마주라고 한다).

이 시퀀스는 해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어린 시절 후안과 함께했던 마이애미해변이다. 샤이론에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의 장소다. 10여년 만에 만난 캐빈과의 재회는 블루로 보이는 달빛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캐빈의 어깨에 기댄 샤일론의 모습과 이어지는 앤딩은 달빛아래 파랗게 보이는 샤일론의 어린시절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과연 샤일론은 파랗게 보이는 달빛을 찾았을지.
영화문라이트 아카데미작품상 배리젠켄스 마허살라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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