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군은 물도 좋고 산도 좋은 풍광의 고을이다. 예부터 흘러 다니는 말에 '부안三絶'이 있다. 조선이 낳은 천하의 여류 시인 매창 이계생, 촌은 유희경과 직소폭포를 흔히 '부안삼절'이라 일컫는 것이다.
촌은 유희경(1545 ~ 1636)은 천민시인으로 유명하다. 본명은 향금이고 호가 매창, 계생인 매창(1573 ~ 1610)은 어머니가 관비로서 노래와 춤을 잘 하고 시를 잘 지어 58편의 시(개암사 목판본)가 전해지고 있다. 유희경과 매창의 28살이란 나이를 뛰어넘은 낭만적 사랑이 야사에 전해지고 있다.
"남쪽 지방 계랑의 이름을 일찍이 들었는데시와 노래 솜씨가 서울에까지 울리더군오늘 그 진면목을 보고 나니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듯하구나." - 증계낭(贈癸娘), <촌은집>
두 사람이 내변산 직소폭포에 직접 가서 사랑을 나누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후세 사람들은 '부안삼절'이라고 부른다. 2015년 8월에 가볼만한 폭포로 한국관광공사는 전북 부안의 직소폭포, 강원도 동해 무릉계곡 쌍폭, 포항 내연산 12폭포 등을 선정했다.
부안에는 직소폭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격포의 채석강, 변산해수욕장, 곰소항구, 줄포만 갯벌 남사르습지 보호구역, 부안 영상테마파크, 내소사, 새만금 방조제, 반계 유형원 선생 유적지, 매창공원 등 볼 거리가 매우 많다.
"~ 왕래할 적에 채석강 태백과 적벽강 소자첨이 예 와서 살았으면 이 세상에 있더란 말이냐."수궁가의 한 대목이다.
이태백이 달을 잡으려 뛰어내린 그 강을 닮았다
당나라의 시선(詩仙) 이태백이 채석강에서 술을 마시며 놀다가 강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는 전설의 강이 '채석강'이다. 그 강과 닮았다고 하여 전북 부안의 채석강은 여름만 되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격포항 닭이봉 밑에 위치한 채석강은 선캄브리아대의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 층으로 하고 중생대의 백악기(약 7000만 년 전)에 퇴적한 해식단애가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 와층을 이루고 있어 영화장면처럼 환상적인 신비감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낙조 무렵 바다 빛이 붉게 물들 때 푸른 봉우리를 가진 퇴적바위 덩어리의 채석강은 마치 <구운몽>의 양소유인양 묘한 분위기에 젖게 만든다.
격포해수욕장에는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 보트에 올라 속도감에 젖어드는 청춘남녀, 모래사장에서 조개, 갯가재를 캐는 아이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자연의 쾌락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래도 가장 재미있는 것은 바다의 물살을 가르며 먼 등대를 돌아오는 바다보트의 쾌속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격포항 주차장을 벗어나서 작열하는 태양을 등에 진채 변산 해수욕장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작년부터 변산 비치는 공사에 들어가서 한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고 더위를 식힌 후 운동화로 갈아 신고 갯벌을 지나 바닷가 해수욕장으로 한참을 걸어들어갔다.
가벼운 물살이 만들어낸 물톱을 밟으며 잔잔한 해풍에 간지러움을 타는 파도를 향해 맨발로 나아갔다. 이십여 명에 지나지 않는 피서객보다 훨씬 많은 물새들이 조갯살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다니는 모습이 더욱 신기했다.
부안에서 군산으로 이어지는 새만금방조제는 80km 제한 속도로 하염없이 달려보았으나 전혀 속도감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풍력발전을 위해 돌고 있는 프로펠러 날개가 거리감과 속도감을 순간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코발트 빛의 남해바다와 달리, 서해바다는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느낄 수 없게 거무스럼한 블루의 색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초록도 아니고 푸른빛도 아닌 어두운 연초록에 가까운 빛은 색감의 아름다움을 혼돈스럽게 만들었다.
부안 여행의 묘미, 여기에서 찾아라
다시 격포항 쪽으로 와서 부안영상테마파크를 방문했다. 문경새재 영상테마파크, 용인과 남양주 드라마세트장, 제주의 태왕사신기 촬영장 등 수많은 영상테마파크를 이미 접해봐서 그런지 그리 감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영상테마파크 안에 있는 부채박물관이 아기자기해서 예술적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지나는 길에 들른 곰소항구는 '철지난 바닷가' 같은 느낌을 주었다. TV뉴스에 나오는 중국 어선들의 융단폭격 같은 싹쓸이 고기잡이로 인해서 우리의 서해 고기잡이 배들은 출입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다만 관광객들이 곰소항 주변에 널려있는 젓갈 상점에 몰려들고 있었다.
역시 부안의 여행묘미는 내소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절로 진입하는 길의 전나무 숲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안식처였다. 35~36도의 폭염만 아니었다면, 내변산분소에서 내려오는 하산 길로 '직소폭포'를 가고 싶었지만, 마음과 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2시간의 둘레길 산책을 포기했다. 단풍철에 다시 직소폭포를 찾기로 하고 내소사 탐방에 몰입했다.
내소사 입구에는 700년 되었다는 거목 느티나무가 각양각색의 무당색천으로 둘러싸인 채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내소사 당산제를 주도하는 신령스런 나무인데, 민간신앙과 불교신앙으로 접합을 상징해준다. 당산제 나무를 지나서 절입구로 접어들어 3분을 걸으면 천왕문이 눈에 들어온다.
남방 증장천왕, 서방 광목천왕, 동방 지국천왕, 북방 다문천왕의 네 천왕이 우리부리한 눈으로 관람객들의 속마음을 훑어보는 듯 겁박 지르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속세의 인간은 죄를 짓지 않아야 연옥으로 빠지지 않고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법리를 설명해주는 것이리라. 내소사의 보물은 모두 세 가지인데, 보물 제278호 법화경절본사본만 전주시립박술관에 위탁보관하고 있고, 나머지는 직접 볼 수 있다. 대웅보전과 고려동종이 보물이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을 좌우로 모시고 있다. 천장의 화려한 장식과 연꽃, 국화꽃을 가득 수놓아 화사한 꽃반을 생각나게 하는 문살이 눈길을 끈다. 보물 제277호인 고려동종은 원래 내변산에 있는 청림사에서 고려 고종 9년에 만든 것으로, 조선 철종 원년인 1850년에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종을 매다는 고리에는 용을 새겼고, 종 가운데에 세 분의 불상을 조각하였다. 표면의 묘사수법이 정교하고 사실적이라는 점이 고려범종의 특징을 보여준다.
내변산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을 받은 약수터에서 입을 해갈하고 전나무 숲을 걸어내려와 주차장으로 갔다. 막상 부안을 떠나 김제로 향하려고 하니 마음이 횡한 것이 무엇인가를 잃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시간이 없어서 <반계수록>의 저자 실학자 반계 유형원 선생 유적지를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