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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7일 공무원연금 개혁법안 처리 실패에 대한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다. 어렵사리 진척시켰던 협상이 파국으로 치달은 만큼 서로를 향한 말도 험하다. "일부 세력들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깨겠다고 판단한 것 아니냐(조원진 새누리당 의원)"는 음모론부터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정치적 미성년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는 비난까지 오갔다.

청와대는 여야 모두에게 유감을 표했다. 특히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갑자기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시켜 국민에게 큰 부담을 주도록 하고자 한 것은 반드시 국민적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라며 '국민을 위한 정치'까지 거론했다.

그러나 이 같은 풍경은 역설적이다. 정작, 공무원연금 개혁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판'을 뒤흔든 건 청와대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합의 존중했던 여당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왼쪽 부터),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우윤근 원내대표가 2일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및 국민연금 강화를 위한 양당 대표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2015.5.2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왼쪽 부터),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우윤근 원내대표가 2일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및 국민연금 강화를 위한 양당 대표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20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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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실무기구의 공적연금 합의내용 중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명기 부분이었다.

당초 여당 쪽은 물론 반대했다. 새누리당 추천위원이자 실무기구 공동간사를 맡았던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7일 기자간담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법안에) 합의하기 1, 2일 전에 갑자기 이런 요구가 있었고 기본적인 입장은 '우리가 이 부분(국민연금 개혁)을 결정할 수 없다' 였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논의 결과는 '수용'이었다. 실무기구는 "국민의 노후빈곤 해소를 위해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50%로 한다"라고 합의했다. 이에 김 교수는 "이번 기회에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물어볼 때가 됐다, 선택 대안으로서 논의할 기회를 주자는 생각에서 '합의문'에 사인했다"라고 설명했다. 즉, 현재 40% 수준인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논의에 동의했다는 얘기다.

새누리당도 이를 수용했다. 김무성 당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는 지난 2일 새벽 "여야는 국민대타협기구 및 실무기구의 '공적연금 강화 합의문'을 존중한다"는 내용의 최종 합의문에 사인했다.

새누리당 공무원연금개혁특위 간사인 조원진 의원은 "'목표치'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를 위해 노력한다는 게 새누리당의 '워딩'"이라며 "불가능한 안이지만 저쪽에서 수용하지 않으면 공무원연금 개혁을 깨겠다고 하니 그것을 막기 위해 사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즉, 완벽하진 않으나 그래도 상황상 수용해야만 했다는 설명이다.

합의 이틀 만에 나온 '박심'에 친박 움직여

남미 순방 이후 건강 악화로 안정을 취해온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남미 순방 이후 건강 악화로 안정을 취해온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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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박 대통령이 이 부분을 비판하면서 시작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주재회의에서 이 부분을 콕 집어 "국민께 큰 부담을 지우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합의 다음날인 3일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인상 합의는) 분명한 월권"이라는 청와대 관계자 발언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국민연금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움직였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2일 합의문 발표 전 양당 지도부를 찾아가 국민연금 연계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항의했다. 복지부는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을 위해 보험료율을 당장 2배(현행 9%→18.8%)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즉, 국민들이 더 돈을 내야 한다는 '여론전'까지 펼친 셈이다.

복지부의 주장이 ▲ 소득대체율 50% 인상에 필요한 보험료 ▲ 기금고갈시점을 현행 2060년에서 2100년 이후로 연기하기 위한 보험료 ▲ 2083년에 17배의 적립배율을 확보하기 위한 보험료를 모두 합한 '뻥튀기 수치'임이 곧장 밝혀졌지만 효과는 있었다.

당내 반발이 발생한 것이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문제를 거론하며 "지뢰를 밟았다"라고 표현했다. 새누리당 공무원연금개혁 TF팀장이었던 이한구 의원은 같은 날 MBC라디오에 출연,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은) 세금을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반발'은 공무원연금 개혁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던 지난 6일 본회의 직전 '내홍'으로 폭발했다.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합의안을 즉각 철회하고 (지도부는) 당과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라며 "저 자신도 모든 직을 걸고 (합의안을) 철회시켜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4선 중진인 심재철 의원도 "마땅히 (합의를) 취소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김무성 대표는 "이번 개혁 덕분에 6년 뒤에는 하루 200억 원 들어갈 게 100억 원씩 들어간다는 것을 제대로 알고 지적하시길 바란다"라고 발끈했다. 김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청와대에 대한 서운함도 토로했다.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명기에 대한 협상 내용을 청와대도 알고 있었는데 막판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는 얘기였다. 유승민 원내대표도 "협상 과정에 청와대 수석이 참석하는 등 다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문제를 제기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며 "나중에 청와대와 따져보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친박 의원들은 더욱 공세적으로 나섰다. 김태흠 의원은 "원내대표가 무조건 청와대에 각을 세우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국민연금 연계는 주먹만 한 혹을 떼려다 머리만 한 혹을 붙인 꼴"이라고 혹평했다. 이장우 의원은 "원내대표가 협상해 놓고 왜 청와대를 공격하느냐"라고 반발했다.

'박심(박 대통령의 의중)'을 알게 된 친박 의원들이 합의안 자체를 흔들고 나섰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유승민 원내대표와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가 6일 오후 '공무원연금 실무기구 합의문'을 공적 연금 사회적 기구 구성을 위한 국회 규칙의 부칙에 별첨하도록 잠정 합의한 것도 통하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최고위와 의원총회를 거쳐 이를 거부했다.

유 원내대표는 "(최고위원 중) 2명이 강력 반대했다"라며 "난 의총서 (표결로) 끝까지 하려 했지만 당대표가 청와대와의 관계, 당 화합 등을 고려해 안 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친박의 반발에 대한 불쾌감을 표한 셈이다.

더 어려워진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

공무원연금개혁안 처리가 무산된 가운데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공무원연금개혁특위 기자간담회에서 조원진 여당 간사가 실무기구 합의문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주호영 공무원연금개혁특위 위원장.
 공무원연금개혁안 처리가 무산된 가운데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공무원연금개혁특위 기자간담회에서 조원진 여당 간사가 실무기구 합의문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주호영 공무원연금개혁특위 위원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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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은 공무원연금 개혁과 관계 없는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을 요구한 야당부터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공무원단체들이 정부·여당의 공무원연금 개혁 추진에 '공적연금 강화'로 맞서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인상 요구를 주장한 것은 그간 자신들이 펼쳤던 논리의 귀결점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새정치연합이 '명시'를 강하게 요구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이유가 청와대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와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는 당초 '명시'에 큰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표와 강기정 정책위의장은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을 명기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협상에 참여한 새정치연합 핵심관계자는 7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청와대에서 뭐라고 하니까 친박계들이 난리를 친 것 아니냐"라며 "그래서 이걸 명문화하지 않으면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을) 안 지키려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혔다.

즉, 여당에 분란의 단초를 던진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야당에게는 협상 파트너에 대한 '불신의 씨앗'으로 작용한 셈이다.

당 지도부 역시 청와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1, 2일 협상 당시 상황을 충분히 전달한 데다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에 대한 협상권을 사실상 위임 받았는데 뒤늦게 문제를 삼고 나섰다는 인식이다. "실무기구 최종합의안에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가 명기될 것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청와대의 주장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7일 기자들과 만나 "(김무성) 대표도 언짢을 수밖에 없다"라며 "(합의문) 내용에 대해서는 1일 밤에 다 브리핑이 됐다, 그래서 김 대표가 '이거 잘 들었으니까 청와대 가서 잘 보고하라'고 정확히 말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우리가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를) '목표로 한다'고 할지, 아니면 '한다'로 할지는 협상 해봐야 하니깐 답 못한다라고 했는데 그에 대해서 청와대 측에서 별 말 없었다"라고 말했다. 즉, 청와대가 협상 직전 상황을 알면서도 별 다른 얘기를 않다가 합의 직후 '월권'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는 얘기다.

결국 청와대부터 이 사단이 시작된 셈이지만 그 후폭풍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무엇보다 향후 공무원연금 개혁 관련 여야 협상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한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스스로 문제를 더 꼬아버린 격이다.

현재 새누리당은 '존중한다'로 봉합한 5월 2일 합의를 기본으로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을 명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7일 새로 선출된 이종걸 신임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합의된 국민연금 공공성 문제는 같이 논의하고 연계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선언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박근혜, #김무성, #공무원연금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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