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KBS <뉴스 9>는 <캄보디아에 한국인 18명 수감... "외교당국 방치">(이세연 기자)라는 제하의 뉴스를 보도했다. 한국인 18명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전화사기(보이스피싱) 등의 혐의로 캄보디아 수감시설에 수개월째 수감돼 있는데 대부분 변호사 도움도 없이 방치돼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 보기) 뉴스는 "현지 사법당국이 판단할 문제"라는 외교부의 입장을 전하며 "외교부가 고통받는 자국민을 외면한 채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가족들의 말을 보도했다.
뉴스가 나가자마자 주요 포털사이트 관련기사에 무려 2000여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질 정도로 누리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물론 외교당국의 대처방식을 두고 찬반양론으로 갈리기는 했지만, 대체적인 반응은 대사관을 비난하기보다는 '현지법에 따라 재판을 받은 것이 당연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 누리꾼(ato***)은 "나라 망신이다. 로마에 가면 당연 로마법을 따르는 것이 정상이 아니냐? 캄보디아라고 무시해선 안 된다. 어느 나라건 그 나라 법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또 다른 누리꾼(Jung-il S***) 역시 "미국인이 한국에서 사기 등 명백한 범법행위를 저질렀는데, 미국이 요구한다고 보낼 수 있는가? (캄보디아가 아닌) 미국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면 이런 뉴스가 나올 수 있었겠냐"라고 꼬집었다.
반대로 외교당국의 안일한 처사를 비난하는 댓글을 올린 한 누리꾼은 "자국민을 보호하는 게 대사관의 임무 아니냐? 아무리 죄인이라도 나라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누가 국가를 위해 충성하겠는가"라고 따졌다. "대사관이 언제는 그렇지 않았느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댓글도 있었다.
"일반 사회범죄 경우, 변호사 선임 조력 안 하는 게 상식"
뉴스를 접한 캄보디아 교민들도 대체로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교민 이성민씨(45)는 "아무리 후진국이라고 해도 그 나라의 법과 질서를 준수하고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교민 조윤진씨(39) 역시 "아무리 자국민을 보호하려고 한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보이스피싱' 같은 중대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국민의 세금으로 변호사를 선임해서 도와주는 것은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하는 일"이라고 질타했다.
KBS에 보도에 따르면,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변호인 조력은 영사 조력 범위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현지 법무법인 담당자들도 "일반 사회범죄로 구속된 경우에는 변호사 선임과 같은 조치는 외교공관 영사의 조력범위에서 벗어난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수감자 가족이 "진짜 죄가 있으면 남의 나라에 방치해 놓지 말고 한국에서 처벌받게 해달라"고 말한 KBS 보도 내용에 대해서도 현지 전문가들은 "범죄인 인도조약 규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와 캄보디아 양국이 2011년 범죄인인도조약을 체결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법 관행상 모든 범죄에 대해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국가이익에 중대한 피해를 준 경우나 수사상 조사가 필요한 경우, 현지 재판과정을 거친 후 상대국과의 협의를 통해 송환 요청이 가능하다. 하지만 일반 범죄자들에게는 이러한 조약이 적용될 수 없다는 해석이다.
현지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우리 외교당국이 주재국에서 일어난 일반 범죄에 지나치게 간섭할 경우, 오히려 재판결과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다. 빨리 빼주겠다며 금품을 요구하며 접근하는 브로커의 농간에 속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 외교당국이 섣불리 개입하는 일은 캄보디아 국민들의 정서를 자극할 수 있음은 물론 양국 외교관계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대사관 "인도적 대우와 신속·공정한 사건처리, 지속적으로 요청"
기자는 25일 오후(현지시각)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을 찾았다. 먼저 11월 12일 금융사기 등 보이스피싱 사건으로 20대 한국인 10명이 구속 수감된 사건에 대해 먼저 물었다. 담당 경찰영사는 "사건 발생 당일 주재국 경찰로부터 체포통지를 받은 직후 곧바로 영사면회를 실시했으며, 수감자들에게 주재국 법률과 향후 진행절차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고 답했다.
대사관의 협조를 얻어 직접 관련 기록을 확인했다. 수사 책임자 미팅 날짜와 내용, 수감자들과 면담 날짜와 내용 등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지난 한 달 동안 3번 면회한 사실을 확인했다. 기록에는 체포된 한국인들이 '범죄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부탁한 사실도 나와 있었다.
현행법상 캄보디아에서 현행범으로 체포·구속된 경우, 대체로 정식재판까지 4~5개월 정도 걸린다. "그동안 캄보디아에서 범죄를 일으킨 러시아, 미국 등 다른 외국인 범죄자들에게도 이 정도 기간이 적용된 것으로 안다"고 대사관 관계자는 밝혔다.
현재로서 수감자들에게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인권유린이나 금품갈취 등 교도소 측의 인권침해 가능성이다. 캄보디아 교도소는 교도관들의 부정부패와 인권침해가 심한 것으로 국제적으로도 악명이 높다. 수감환경 역시 매우 열악하다.
전문가들과 교민들 사이에서는 현재 우리나라 외교당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교도소 내에서 부당한 인권침해 사례는 없는지 감시하고, 비위생적인 교도소 환경을 감안해 수감자들의 건강상태 등을 챙기는 것이다. 그리고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관계당국과 긴밀히 협조하는 한편,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수시 면담을 통해 한국의 가족들이 안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 측도 캄보디아 정부 측에 "우리 국민에게 인도적 대우를 해줄 것과 신속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사건을 처리해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11월 12일 한국인 10명이 보이스피싱 사기사건으로 캄보디아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현지 경찰의 현장급습을 통해 구속 수감된 10명 모두 20대 대학생 등 젊은 남녀(각 5명)로 알려져 교민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증거물로 압수된 전화기 수십 대와 노트북 등, 수갑을 찬 체포 당시 상황을 담은 사진까지 현지 신문에 실렸다.
이외에도 온라인 도박 개장 혐의 등으로 총 한국인 18명이 현지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대사관 측에 확인한 결과, 프놈펜 외곽 프레이 쏘 교도소에 17명이 수감돼 있고, 나머지 1명은 문서위조 혐의로 프놈펜 경찰청 교도소에 수감돼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박정연 기자는 캄보디아에 사는 <오마이뉴스> 해외통신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