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협동조합 연구회를 준비하며 읽은 책들이다. 이중 네권을 골라서 연구회 모임을 진행중에 있다.
▲ 협동조합 관련 책들 협동조합 연구회를 준비하며 읽은 책들이다. 이중 네권을 골라서 연구회 모임을 진행중에 있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한 소년이 있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소년을 위해 고통을 감내했던 어미를 보며, 소년은 성공을 다짐했다. 행여 어미에게 걱정이라도 끼칠까 봐 또래 사내아이들처럼 그 흔한 주먹다짐조차 없이 성장했다. 소년은 마침내 사회에서 인정받을 만한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깨달았다. 저 혼자 잘나서가 아닌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 자리까지 오게 되었음을.

반평생 남의 집 셋방살이를 전전하던 어미에게 작은 집을 사주던 그날, 어미는 참으로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어미는 소년에게 늘 가르쳤다.

"남을 속이지 마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된다. 베풀면 언젠가 돌아온다."

그 말들은 짧은 배움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어미의 삶 전체를 우려낸 말이었다. 소년은 그 가르침을 물려받았다.

이제 그 소년은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잠들기 전까지 곁에 누워 괴물들로부터 지켜주는 그런 자상한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났을 때의 세상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잠든 아이들의 얼굴에는 천사가 깃들여져 있다. 그 모습 그대로 평생을 살아가게 할 수는 없을까? 모든 아빠의 화두일 것이다.

두 아들을 둔 아버지의 고민... 다른사람과 어울려 돕고 사는 세상

고민은 거기에서 출발했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은 재산이나 인맥이 아닌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이었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지만 살아남는 승자 독식의 세계에 아이들을 던져 넣고 싶지 않았다. 무한경쟁의 터널을 지나 피땀 흘려 만든 스펙으로 대기업 입사를 위해 줄 서는 세상에 아이들의 등을 떠밀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손잡고 함께 어울려 돕고 사는 세상, 그 속에서 행복을 찾길 바랐다.

하지만 막막했다. 한 사람의 힘으로 바꾸기에는 세상은 이미 너무 왜곡되어 있었다. 자본주의와 적자생존에 반기를 드는 행위는 그저 무모한 치기에 불과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협동조합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 지역 내의 생활협동조합에서 의료생협에 대한 소개를 부탁 받은 것이다. 그전까지 협동조합이라고는 아이쿱의 조합원 정도였던 내게, 운 좋게도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협동조합을 공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예상보다 그 열기가 대단했다.
▲ 협동조합 연구회 첫 모임 협동조합을 공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예상보다 그 열기가 대단했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의료생협에 대한 공부와 더불어 이번 기회에 협동조합을 자세히 알아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책과 인터넷을 뒤지며, 매력적인 협동조합의 실체에 한걸음 다가서면서 일종의 전율을 느꼈다. '내가 찾던 세상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세상, 자유와 책임이 있고, 누구나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데 협동조합 만한 방법론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레카'를 외치며 주변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실은 내 꿈과는 너무도 달랐다. 협동조합에 대해 아는 수준은 대부분 농협과 신협을 넘지 못했으며, 혹시 내용을 알더라도 직접 나서서 일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협동과 동업은 같은 개념이었고, 동업이라 하면 사돈의 팔촌까지 도시락 싸서 말린다고 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협동조합의 가장 핵심인 사람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협동조합,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뼈저리게 느끼던 무렵, 한 사람이 구세주처럼 다가왔다. 사람은 결코 멀리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성당의 신부님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생각의 결이 비슷했다. 그 후로 몇 차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협동조합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신 걸 알았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된다면 용기와 실천력은 몇 배가 된다.

"우선 협동조합을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협동조합 연구회의 주춧돌은 마련되었다. 성당의 주보를 통해 협동조합 연구회의 시작을 홍보하고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당연히 쉽게 모일 리 없었다.

"사무실에 협동조합 연구회 신청서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형제님도 신청해 주세요."

사무실 구석에 놓인 신청서에는 3일 동안 신부님과 나를 포함 총 세 명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렇다고 기가 죽진 않았다. 다섯 명만 모이면 만들 수 있는 게 협동조합이라 하지 않던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나는 연구회 준비를 위해 협동조합과 관련된 책을 탐독했다. 여섯 권 가량의 책을 읽고 연구회의 세부 일정을 다듬을 때 즈음, 신부님께 연락이 왔다.

"협동조합 연구회 신청자 수가 스무 명을 넘겼습니다. 이제 시작해 봅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원이었다. 기대감만큼이나 부담감도 밀려왔다. 대여섯 명쯤 모여서 책이나 함께 읽으며 기초부터 차근차근 공부해 볼까 했었는데, 스무 명이면 당장 협동조합을 만들 정도의 인원이 아닌가? 그렇다고 내가 협동조합의 실무자도 아니고,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두 번 매장을 이용하는 일개 조합원에 불과한데. 잠이 오지 않았다. 책 몇 권짜리 이론만 가지고 그 많은 사람들을 끌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허나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협동조합의 기본인 사람에서 시작하자. 재미있는 모임을 만들고 서로 친해지다 보면 협동조합은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첫 모임을 공지했다. 그리고 그 첫 모임을 시작으로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 두 달을 넘기며 흥미진진하게 이어지고 있다.

다음 회부터 차근차근 협동조합 연구회의 항해 과정을 기록할 것이다. 순탄하지만은 않은 과정이었고, 앞으로도 많은 풍랑과 파도가 예상되지만, 배를 띄우지 않고서는 경험해볼 수 없는 일이다. 연구회의 최종 목적은 당연히 협동조합의 결성이다. 하지만 실무경험이 전혀 없고, 주변에 사람들을 모아내는 일은 엄두조차 못 낼 소시민이라면, 그 시작은 협동조합 연구회의 형태가 어떠할까? 함께 공부해 나가는 과정에서 협동의 진정한 의미를 배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태그:#협동조합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