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데스트랩>에서 헬가를 연기하는 정다희.

연극 <데스트랩>에서 헬가를 연기하는 정다희. ⓒ 아시아브릿지컨텐츠(주)


연극 <데스트랩>에서 정다희가 연기하는 헬가는 심각해보이기만 한 스릴러 연극에 한줄기 단비 같은 웃음을 선사하는 코믹한 캐릭터다. 헬가는 <고스트>의 오다메처럼 심령술사로서의 자질이 없는 게 아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영적 능력이 떨어져가는 심령술사인데, 남을 웃기는 데 더욱 일가견이 있으니 심령술사라는 직업보다는 개그우먼의 자질이 탁월한 캐릭터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연기가 아니라 그냥 너네"라는 평가를 받는 정다희는 알고 보면 전작에서 남다른 아픔을 갖고 있는 배우이기도 하다. 웃음 뒤에 숨겨진 아픔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이는 어쩌면 그의 연기 내공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인동초 같은 '보약'으로 작용하고 있었는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무대 위 사고 후 트라우마..."<데스트랩> 덕분에 버텼다"

- 헬가는 겉보기와는 달리 유머러스한 캐릭터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고스트>의 오다메를 많이 생각했다. 이미지는 오다메를 참고했지만 대학로의 어느 음식점 아주머니도 많이 참조했다. 실제 저의 성격이 유쾌하고 밝은 헬가의 모습과 비슷하다. 연습할 때에는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제 연기를 보고 다른 배우들이 너무 크게 웃어서 애를 먹은 적이 많다.

그동안 제가 웃기는 연기를 한 적이 별로 없다. 웃기는 연기를 처음 보니 다른 배우들이 박장대소할 수밖에 없었다. 저조차도 웃음을 참는 게 가장 큰 고역이었다. 무대에서도 웃음을 참는 게 어려웠다. 헬가가 처음 등장할 때 파카를 입고 등장한다. '왜 이렇게 덥지?' 하고 너스레를 떨 때 빵빵 터진다.

<데스트랩>은 배우가 심드렁하게 대본을 읽어도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헬가가 '엄청난 폭풍우가 올 거에요'라고 날씨를 예언하는 장면이 있다. 상대방이 '정말로요?' 할 때 헬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라디오에서 그러더군요' 하고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이런 장면은 연기를 하지 않고 대본만 읽어도 빵빵 터진다. 처음에는 관객을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었는데, 헬가라는 캐릭터가 재미를 선사해야 하는 캐릭터라는 걸 알고부터 연기가 어렵게 느껴졌다."

 연극 <데스트랩>에서 헬가를 연기하는 정다희.

연극 <데스트랩>에서 헬가를 연기하는 정다희. ⓒ 아시아브릿지컨텐츠(주)


- 헬가는 등장할 때마다 관객이 즐거워한다.
"대본에 모든 해답이 있다. '잊지 말아요, 목요일 밤' 같은 대사를 처음 할 때에는 과연 이 대사로 웃음이 터질까 걱정했다. 애드리브를 더 넣어야 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대본을 믿기로 마음먹었다. 애드리브 없이 대사만 가도 웃음이 터질 거라고 확신하고 대사대로 갔다. 역시 빵빵 터졌다. 연기하면서 코믹과 스릴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잇다는 걸 실감하게 만들어준 작품이다."

- 이전에는 헬가처럼 밝은 캐릭터가 아니라 심각한 역할을 맡아왔다.
"(뮤지컬 <셜록홈즈2>에서) 올리비아를 연기했다. 올리비아는 2막에서 잭 더 리퍼에게 살해당하는 여성 정치인이다. 잭 더 리퍼가 사용하는 소품용 칼이 실제 칼과 소재가 비슷하다. 소품용 칼을 내리찍는 장면에서 실제로 머리를 맞았다. 너무 아프다고 느꼈다.

잭 더 리퍼에게 칼을 맞고 죽는 시늉을 하는 중에 슬라이딩을 하려고 눈을 뜨니 머리에서 흘린 피로 의상이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제 피를 제가 보고 놀라서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그대로 응급실로 실려 갔다.

당시 올리비아는 대역이 없는 원캐스팅이었다. 공연이 없거나 끝났으면 머리를 밀고 꿰매면 되는데, 공연을 계속 해야만 해서 다친 곳에 스테이플러를 박고 다음날 무대에 올라야만 했다. 맨살에 스테이플러를 박는 거라 굉장히 아팠다. 다음날 무대에 오르기 위해 무대 의상을 입었을 때 피만 지우고 드라이크리닝을 맡기지 못해서 제가 흘린 피 냄새가 확 났다.

이전 작품에서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무대에서 떨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고를 당한 다음부터는 어떡하면 무대에서 안 다칠까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고 후 보름 동안 무대에서 벌벌 떨며 연기했다. 당시 무대감독님이 와일드한 분이었는데 그런 분이 제 손을 꼭 잡으며 정말로 고생했다고 다독여줄 정도였다. 무대에서 너무 많이 떨어서 공연 마칠 때마다 많이 울었다. '다치지 않으면 돼' 하고 저 자신을 추스르고 올랐으니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무서웠다.

부모님과 분가해서 산다. 사고가 났을 때 딸이 다친 걸로 부모님이 염려하는 걸 바라지 않았다. 지금도 부모님은 딸이 크게 다친 줄 모르시고 조금 찢어진 줄로만 아신다. 아버지가 심근경색 수술을 세 번 했다. 아버지가 걱정할 만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제가 다친 것도 떨리지만 아버지가 놀라서 위급한 상황을 맞이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응급실에서 부모님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고 전화로 이야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아프고 힘들어서 전화를 끊고는 응급실에서 돌아와서 펑펑 울었다.

정다희 "<데스트랩>을 하면서 무대에서 좀 더 버티고 싶었다. 무대에 올라가 제가 연기하는 걸 보며 관객이 스트레스를 풀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제 연기를 보며 즐거움을 가지고 가길 바라는 사명감이 컸다."

▲ 정다희 "<데스트랩>을 하면서 무대에서 좀 더 버티고 싶었다. 무대에 올라가 제가 연기하는 걸 보며 관객이 스트레스를 풀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제 연기를 보며 즐거움을 가지고 가길 바라는 사명감이 컸다." ⓒ 아시아브릿지컨텐츠(주)


당시 다쳤던 기억 때문에 <데스트랩> 속 '죽음의 덫'이라는 제목 때문에 망설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학교 다닐 때부터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연극을 해보고 싶어서 도전했는데, 연극을 하면서 재미있는 요소 때문에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 <데스트랩>을 하면서 무대에서 좀 더 버티고 싶었다. 무대에 올라가 제가 연기하는 걸 보며 관객이 스트레스를 풀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제 연기를 보며 즐거움을 가지고 가길 바라는 사명감이 컸다.

이번 작품은 뮤지컬이 아닌 연극이다. 음악이 배제된 연극이 어렵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음악이 없으면 배우가 해결해야 할 게 너무나도 많다. 뮤지컬은 음악이 있는 가운데서 연기와 춤으로 표현해야 한다. 음악이 흐르니 어쩌다가 실수를 해도 자연스럽게 음악에 맞춰 흘러갈 수 있다. 하지만 연극은 시간과 공간, 시청각적으로 들리는 모든 걸 스스로가 해결해야만 한다. 무대에서 버티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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