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용팝 초아 의 뮤지컬 데뷔작 <덕혜옹주>

▲ 크레용팝 초아 의 뮤지컬 데뷔작 <덕혜옹주> ⓒ 문화아이콘


아이돌이 뮤지컬에 데뷔할 때에는 자신이 부르는 노래의 정서와 맞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부담감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에프엑스의 루나가 <금발이 너무해>를 택하거나 AOA 초아(박초아)가 <하이스쿨뮤지컬>을 택하는 것, 슈퍼주니어의 규현이 <삼총사>를 택하는 것 모두 그들의 노래 성향에 맞는 발랄한 정서의 작품을 선택한 셈 아니겠는가.

그런데 크레용팝 초아(본명: 허민진)는 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매우 서정적인 장르의 뮤지컬, 그것도 역사 뮤지컬인 <덕혜옹주>로 출사표를 던졌다. 평소 재치발랄한 노래로 사랑을 받아오던 크레용팝의 음악적인 색깔과는 많이 다르다. <광화문 연가>로 뮤지컬 무대에 데뷔한 양요섭의 행보와 가까워 보인다.

익숙하지 않은 정서의 노래도 도전이지만 초아는 이번 작품에서 덕혜옹주와 그의 딸 정혜를 연기하는 1인 2역 연기도 소화해야 했다. 쉬운 길을 버리고 어려운 코스로만 골라 간 셈이다.

배를 타고 떠나는 듯한 영상과 함께 뮤지컬의 서두는, 초아가 연기하는 정혜를 찾기 위해 그의 아버지 다케유키가 전단지를 뿌리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덕혜옹주는 한국인 남자와 결혼한 게 아니라 일본인 다케유키와 결혼한다. 그런데 이 남자, 의외로 소극적이다. 아니, 젠틀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듯하다. 아내가 된 덕혜옹주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는 걸 서슴지 않고 맨발로 산책한 아내의 발을 손수건으로 닦아줄 줄 아는 자상한 남편이다.

자상한 남편이지만 연애 결혼이 아니었기에 처음에는 남편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남편의 눈을 한 번도 마주치지 않던 덕혜옹주는 속으로는 남편의 자상함에 매료되어 간다. 초아는 이런 점진적인 감정을 눈 깜빡임과 같은 표정 연기를 통해 능숙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크레용팝 초아 의 뮤지컬 데뷔작 <덕혜옹주>

▲ 크레용팝 초아 의 뮤지컬 데뷔작 <덕혜옹주> ⓒ 문화아이콘


남편과 한없이 좋은 감정만 나누진 않는다. 덕혜옹주는 조발성치매증이라는 정신 이상에 시달린다. 미친 듯이 웃거나 하는 이상 증세를 보이는 덕혜옹주를 남편 다케유키가 극진히 간호하며 그의 정성이 더욱 빛나게 된다.

또한 조선제국이 일본에 합병되고 일본에 있어야만 했던 덕혜옹주가 기모노를 입지 않겠다고 선언했음에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기모노를 입는 장면은 그녀의 애처러움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충분했다.

덕혜옹주의 딸 정혜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한 캐릭터다. 정혜가 어릴 적부터 엄마인 덕혜옹주가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기에 엄마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랐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어려서부터 간직한 인물이라는 이야기다. 문간 너머에 있는 어머니와 정서적인 공유를 나누기 위해 어머니가 반응을 하건 안 하건 안간힘을 쓰는 초아의 모습에, 혹은 서편제의 송화처럼 가슴을 두드리며 오열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손수건을 눈물로 적실 수밖에 없다.

초아는 표정 연기만 능수능란한 게 아니었다. 덕혜의 감정을 노래할 때에는 장엄하고 비장하게 노래를 불러야 덕혜의 나라 잃은 설움을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사령관의 행진곡이라는 일본 노래를 불러야 할 때에는 설움에 억눌리지 않고 조선의 노래를 부름으로 일본에 기죽지 않는 꼿꼿한 기개도 다채롭게 선사하고 있었다.

반면 정혜를 연기할 때에는 장엄함으로 승부하면 안 된다. 어린 나이의 발랄함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크레용팝처럼 한없이 맑은 정서로 노래를 소화해야 한다. 동시에 무조건 밝은 정서 하나로만 표현하면 안 된다. 정혜가 조선 사람이라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을 당할 때에는 비극의 정서, 구슬픈 정서로 노래하고 연기해야만 했다. 캐릭터는 하나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정서로 자유자재로 오가야 가능한 일이다.

크레용팝 초아 의 뮤지컬 데뷔작 <덕혜옹주>

▲ 크레용팝 초아 의 뮤지컬 데뷔작 <덕혜옹주> ⓒ 문화아이콘


가장 극적인 감정이 돋보이는 장면은 실종된 딸이 돌아오기만을 한없이 기다리는 엄마 덕혜옹주의 절절한 가사가 나올 때다. "울지 마라, 엄마는 여기에 있다. 여기에서 널 기다린단다" 하는 장면에서는 가창력이 필수인데, 초아는 뮤지컬 데뷔라고는 믿기 힘든 실력으로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었다.

불가사의다. 크레용팝이 쉬는 기간이라면 초아가 연습하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초아가 데뷔한 시기는 크레용팝이 신보 앨범을 발매한 시기다. 신보를 준비하는 가운데서 뮤지컬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놀라운 다양한 연기와 노래 폭을 선보였다.

덕혜와 정혜라는 1인 2역도 무리 없이 훌륭하게 해냈다. 이렇게 놀라운 아이돌의 뮤지컬 데뷔는 처음인 듯 싶었다. 초아의 다음 뮤지컬 행보가 기대된다. 다만 덕혜옹주와 정혜에게 한없이 따스한 다케유키는 실제 인물상이라기보다는 판타지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 역사를 보면 정혜가 결혼하기 전에 엄마 덕혜옹주와 아빠 다케유키는 이혼해서 남남인 상태가 되고 만다.


크레용팝 초아 덕혜옹주 규현 양요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