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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이 되고 싶은 파나마

한 여름의 파나마는 정말이지 지독하게 무덥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여태껏 느낄 수 없었던 덥고 습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느껴지는 땀은 마치 피부 속으로 흐르는 것 마냥 진득하다. 넓게 펼쳐진 바다 저편으로는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솟아난 빌딩들이 겨루기 중이다. 홍콩이나 두바이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앙 아메리카의 시작이자 끝인,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 시티의 이야기다.

신시가지의 빌딩 숲과 구시가지의 공원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 파나마시티 신시가지의 빌딩 숲과 구시가지의 공원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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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에 위치한 숙소에 밤이 되어서야 짐을 풀고 다음 날 아침, 나는 숙소 로비에 아무렇게나 매달려 있는 많은 양의 바나나 줄기를 보고 파나마가 어떤 곳인지를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파나마에서 바나나는 그저 길가에 피는 들꽃과도 같은 존재다. 아무도 돈을 주고 바나나를 사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적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파나마인 셈이다.

1671년 영국 해적 헨리 모건의 습격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이를 재건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파나마시티의 구시가 1671년 영국 해적 헨리 모건의 습격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이를 재건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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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 하는 소나기 때문에 언제나 축축하게 젖은 거리를 따라 구시가지를 둘러본다. 폐허나 다름없는 그 모습에서 많은 사연이 느껴졌다. 오래 전 영국 해적의 습격으로 폐허가 되고, 이후 스페인과 콜롬비아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두 번의 독립 후에야 지금에 이른 파나마의 구시가지는 관광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애잔하다. 고층건물은 찾아볼 수도 없고 아스팔트 대신 자리잡은 울퉁불퉁한 블록으로 된 길바닥과 폐허에 가까운 건물들. 파나마시티의 구시가지는 남미에서 느낄 수 있던 향수와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거리 이름도 제대로 표시가 안 된 길을 헤매다 총을 든 경찰에게 길을 물으니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참을 내 얼굴을 들여다 봤다. 그는 아마도 오랜만에 혼자가 된 여행자의 불안함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짧지만 강하게, 이곳은 썩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는 주의를 준 후에야 그들은 내가 가야 할 길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실 파나마시티의 구시가지는 위험하기보다는 무질서하고 지저분했다. 여유로움이나 미소에는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집앞의 거리에 나와 무표정하고 무료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담배를 태워댄다. 그런 골목을 지나쳐 프란시아 광장(Plaza de Francia)에 들어서니 돌로 포장된 도로와 오래된 성당과 저택, 레스토랑과 갤러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겨우 몇 발자국 차이로 다른 세계로 온 듯한 그곳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유를 즐기는 여행자을 보니 그제서야 나는 다시 여유를 찾았다.

파나마시티의 경제와 새로운 문화의 중심인 신시가지. 홍콩이나 싱가폴의 빌딩숲과 매우 닮은 이 풍경은 구시가지 에스테반 우에르타스 공원에서 감상해야 제격이다.
▲ 신시가지 파나마시티의 경제와 새로운 문화의 중심인 신시가지. 홍콩이나 싱가폴의 빌딩숲과 매우 닮은 이 풍경은 구시가지 에스테반 우에르타스 공원에서 감상해야 제격이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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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카페들을 지나쳐 에스테반 우에르타스 공원(Parque Esteban Huertas)에 들어서니 마침내 태평양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닷가의 노점에는 전통복장을 갖춘 인디오들이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손님을 기다리면서도 투박한 두 손은 계속해서 수를 놓거나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바닷가 깊숙히 뻗어나온 만 저 멀리에는 거짓말 같은 마천루가 위용을 뽐내는 신도시가 보였다.

어느 세상이나 빈부의 차가 있기 마련이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운운하며 보존해야할 것들이 과연 폐허나 다름없는 이곳의 사람들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폐허가 되어버린 건물을 보수하기 위해 여기저기 펜스로 둘러쳐진 공사현장이 가득한 구시가지와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를 메우기 위한 흙을 가득 실은 트럭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는 신시가지의 모습을 이들은 어떤 느낌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구시가지에서부터 신시가지까지는 해안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왼쪽의 건물이 파나마시티의 랜드마크가 되어 버린 또르니요.
 구시가지에서부터 신시가지까지는 해안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왼쪽의 건물이 파나마시티의 랜드마크가 되어 버린 또르니요.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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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를 통해 신시가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이제는 파나마 시티의 랜드마크가 되어버린 또르니요(Tornillo, 나사라는 뜻) 다. 마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듯한 모습의 건물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주눅이 들게 만든다. 가까이서 본 신시가지의 모습은 그만큼 이질적이다.

엄청난 규모로 지어진 쇼핑센터와 전방의 시야를 전부 가려 버리는 높은 건물들. 폐허가 된 구시가지를 버리고 땅을 메워 만들어 낸 새로운 땅의 대부분을 차지한 국제적인 금융회사들의 모습은 저절로 홍콩을 떠올리게 한다. 아직까지도 제 3세계로 불리는 중앙 아메리카의 파나마 시티. 홍콩이 되고 싶은 그들의 꿈은 이루어질까? 5년 후에 가보면 알게 될 것이다.

간략여행정보
국토의 대부분이 정글로 이루어져 일년 내내 열대 기후를 보이는 파나마의 수도인 파나마 시티는 우리에게는 '파나마 운하' 로 유명하다. 미국의 원조를 많이 받은 덕분에 북미에서 남미로 가는 대부분의 항공사는 중간 기점으로 파나마시티를 거친다. 남미의 콜럼비아와도 국경을 접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글지대로 길이 막혀 육로로는 남미로의 이동이 불가능하다. 3박 4일 크루즈 여행이나 비행기를 타는 수 밖에 없으며 북미로 가는 경우에는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온두라스, 과테말라, 멕시코를 거치면 미국까지도 육로로 닿을 수 있다.

양대 관광지인 구시가지는 카스코 비에호(Casco Viejo), 신시가지는 비아 에스파냐(Via Espana) 를 찾으면 된다.

그 외 상세한 파나마 여행후기는(세계일주) 아래링크 참고.
http://blog.naver.com/saladinx/30154002371



태그:#파나마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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